‘국민 변호사’로 통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타나 줄거라는 믿음을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2016년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횡단보도 건너편, 멀리서부터 걸음을 재촉하는 그가 보였다. 그는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을 흔들었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길을 건너오면서도 인사를 몇 차례 더 하더니, 거리가 가까워지자 손을 내밀었다. 박준영 변호사만의 인사법이다. 그는 누굴 만나든, 어떤 자리든 늘 한결같다.
그는 이날 헌법재판소에서 ‘2016년 모범 국선대리인’ 표창을 받았다. 헌재는 선정 이유로 “박 변호사는 교도소 수형자가 형이 확정되지 않은 또 다른 사건의 형사재판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할 때, 사복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 ‘형집행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재 결정을 이끌어 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제가 이 상을 받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더 좋은 활동을 하라고 주신 것 같습니다”라면서도 “(겸손이 아니라) 근거가 있어요. 그동안 헌재는 매년 세 명의 변호사에게 표창을 수여해 왔는데, 2016년만 네 명을 줬거든요”라며 웃었다.
# 무거운 질문
“그런데 변호사님, 일 안 하세요?”
자리에 앉은 박 변호사에게 물었다. 근황을 묻기 위해 가볍게 던진 첫 질문이면서도, 요즘 그를 향한 일부 시선에 대한 지적이기도 했다. 줄곧 너털웃음을 짓던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그는 “그 질문도, 지금 상황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안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일 해야죠”라고 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박 변호사는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는 삼례 3인조, 약촌 오거리 사건 등 2016년만 두 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공익 변론에 집중하다 ‘파산’ 위기에 이르렀다는 사연을 알리면서 이름이 더욱 알려졌고, 3개월 만에 목표 후원금액이 5억 7000여 만 원이 모이면서 또 한 번 관심이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사와 방송사 등은 연말이 되자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 인터뷰를 요청하는가 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출연 요청을 하고 있다. 전국을 돌며 열었던 토크 콘서트는 지난달 마무리됐지만, 강연 일정은 오는 1월까지 빼곡히 채워져 있다.
‘국민 변호사’ ‘공익 변호사’ 등 그를 응원하는 수식어가 생겨난 만큼, 동시에 그를 비난하는 시선도 나타났다. 돈, 유명세 등과 관련된 지적도 뒤따랐다. 박 변호사는 “앞으로 진행해야 할, 제게 맡겨진 몇 건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걸 진행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활동하는 건 잘못됐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 목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당연히 받아야 할 비판과 지적들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가 페이스북과 방송, 강연 등을 통해 알리고 있는 내용은 ‘영웅담’이나 어려움 호소와는 거리가 멀다. 공익변론, 무료변론을 하다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박 변호사가 알린 ‘사연’ 중 일부에 불과하다. 수원노숙소녀사건, 삼례3인조, 약촌 오거리 등 재심 사건이 알려지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모이고 있다. 박 변호사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온다.
박 변호사는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모든 사건을 맡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분명하거든요”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구가 이미 존재하는데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왜 저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지, 문제점과 개선방안이 논의됐으면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이를 공권적(公權的)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도 알려야죠. 다만 경찰과 검찰, 법원 등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전제되는 게 아니라는, 불필요한 오해도 없어야 하고요”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스토리펀딩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당초 목표는 93일 동안 후원금 1억 원이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목표액을 훌쩍 넘긴 5억 6700만 원이 모였다. 박 변호사는 “거액의 후원금도 의미가 있지만 참여해주신 분들이 1만 8000여 명이라는 점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해주시고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니까요”라고 말했다.
후원 금액은 스토리펀딩에 앞서 공개한 대로 쓰여졌다. 스토리펀딩 플랫폼에 지급하는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하고 약속했던 ‘파산 콘서트’ 경비에 사용됐다. 파산에 이를 지경까지 커졌던 빚은 급한 부분만 갚았다. 나머지는 2017년부터 새롭게 시작될 재심사건 활동비로 남겨뒀다. 그동안 함께한 사건 관계자들에게도 일부 전달되고 있다.
실제로 박 변호사는 인터뷰 중간,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돈을 보냈다. 삼례 3인조였다. 박 변호사는 빚이 산더미만큼 쌓여가면서도 이들의 생활비를 보태왔다. 이들은 2016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생활은 그대로다. 삼례 3인조 중 한 명인 강인구 씨는 최근 AI(조류독감바이러스) 사태가 불거진 이후 살처분 현장 인부로 일하며 전국을 돌고 있다. 박 변호사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을 해야 사니까. 그런데 인구 씨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는 동안 피부병이 생겼는데, 걱정이에요”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선한 연대’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jhlee@ilyo.co.kr
일각에선 그가 요즘 세상에선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그가 언급해왔듯, 고졸출신에 국선 변호사가 유명 세력가들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이름이 크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용’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용이라는게 꼭 유명세나 경제적인 측면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역할을 하는, 의미를 가져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도 누구든지,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다리의 개념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는, 비바람을 겪고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2017년에는 앞서와 같은 의미의 ‘용’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2016년은 운명 같은 한 해였습니다. 처음엔 무모하게 달려들었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진범이 나타나 법정에서 결정적인 증언도 해주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운명처럼 만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었습니다”라며 “‘선한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진지하게 우리 사회의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듣는 활동을 지속하면, 고마운 사람들이 더 많이 나타나 줄거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박 변호사와 그가 맡았던 사건들, 함께 한 박상규 기자와의 이야기를 다룬 책 <지연된 정의>, <우리들의 변호사>가 출간됐다. 박 변호사의 솔직한 이야기부터 그동안 페이스북과 방송, 강연 등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모두 실려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