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오후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응답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해왔다. 삼성의 ‘이재용 시대’가 열린 것. 이 부회장 다음의 삼성 2인자는 2012년 6월 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취임한 최지성 부회장이다. 이들은 나란히 박영수 특검의 잠재적인 수사 대상에 올랐다.
앞서 이 부회장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정유라 승마 지원’ 관련 보고를 최 부회장에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최 부회장의 직속 부하인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지난 12월 20일 뇌물 공여 혐의 등으로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 부회장과 장 차장의 연결고리는 최 부회장이다. 만약 최 부회장이 향후 특검 조사에서 최순실·정유라 모녀 특혜 지원 사실을 ‘몰랐다’거나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면 이 부회장의 방어논리가 강해진다.
삼성 내부에서도 ‘최선은 장충기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이지만 차선은 최지성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 그룹 2인자였던 이학수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모든 혐의를 떠안은 바 있다. 삼성그룹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장 차장도 알고 있겠지만 그 자리가 원래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다 안고 가는 자리”라며 “최악의 경우라도 미래전략실 선에서 끝내야 하고, 이재용 부회장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벌을) 막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은 장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늦추면서 이 부회장의 소환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장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특검이 사실상 ‘공범’으로 보고 있는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특검은 지난 12월 18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과 비공개 면담 후 승마협회 등을 통한 최순실 모녀 특혜 지원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반면 이 부회장에겐 일찌감치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며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부하 임원보다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삼성 안팎에선 이번 특검 수사가 삼성 비자금 특검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 특검에 참여했던 사정기관 관계자는 “3세 경영권 승계를 준비 중인 JY(이 부회장)에겐 최대 위기로 보인다”라며 “섣불리 예측하긴 어렵지만 장충기 차장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되면 과연 (그 결과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옥.
당초 모든 혐의를 부인하던 문 이사장은 기존 진술을 번복하며 ‘삼성물산 합병 찬성 지시’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이사장에 앞서 특검 조사를 받은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입장을 바꿔 ‘보건복지부의 외압으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7월 홍 본부장은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하기 3일 전 이 부회장과 회동한 사실이 있다.
또 이날 이 부회장의 처남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은 중요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돼 밤샘 조사를 받았다. 김 사장은 최순실 일가인 장시호 씨가 운영하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여 원을 후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과정에 이 부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특검은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수사가 이처럼 이 부회장을 겨냥한 데는 구속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진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이 자신이 아는 것을 특검에 털어 놓고 일종의 ‘딜’을 시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검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독대하기 전 박상진 사장과 만나 최순실 일가 지원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부회장이 “최근까지 최순실을 몰랐다”는 증언과 배치되는 정황이다.
또 특검은 삼성 고위 관계자 등과 접촉해 그룹 일부 임원들이 이 부회장에게 정유라 승마 지원과 관련한 사전 보고를 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면담 후 직접 관련 현안을 챙긴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특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문자 메시지 등 특검이 확보한 정황 증거만 3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울러 특검은 삼성으로부터 승마 특혜 지원을 받은 정유라에 대한 신병 확보도 눈앞에 두고 있다. 정유라는 삼성 측의 승마 지원 사전 협약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어 소환된다면 이 부회장에게 큰 타격이 갈 수 있다.
삼성은 현재 검사 출신 임원들을 앞세워 수사를 방어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검찰·특검 관계자들과 접촉 지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믿었던 ‘키맨’들이 줄줄이 말을 바꾸면서 조금씩 이 부회장의 숨통을 죄고 있다. 풍전등화에 놓인 삼성의 선택지에 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