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처럼 한국 말을 잘하는 스무 살 디디에겐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디디는 5세 때 부모님과 함께 만달레이로 이주했습니다. 이 도시는 미얀마 제2의 도시입니다. 인구가 200만 명이 넘는 교육도시입니다. 부모님이 크게 사업을 하시고 또 막내딸이라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이 도시에도 언젠가부터 한류가 밀려들었습니다. 디디도 한류문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 드라마, 한국 노래를 들으며 소녀시절을 거친 것입니다. 그 소녀는 어느 날 한국노래를 사랑하게 되고 한 그룹을 좋아하다 한 가수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남성그룹 ‘엑소’와 리드래퍼 ‘카이’입니다. 어느 날 좋아하는 이 가수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그날부터 디디의 한국어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2년간은 학원을 다녔고 약 3년간은 한국의 영상자료를 구해 혼자 공부를 했습니다. 디디는 집에서도 한국말을 썼다고 합니다. 가족들도 이젠 대강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이젠 한국의 청년처럼 말하니 한국인인 제가 보기에도 신기합니다. 한류를 좋아한 덕분에 생긴 열정입니다.
숲속의 농장에 굵은 열매의 파파야가 매달려 있다. 열매 안에는 씨앗이 알알이 박혀 있다. 덜 익은 초록의 열매는 채를 썰어 요리를 한다.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속의 무이. 영화는 스무 살의 시와 노래를 담아냈다.
10살인 어린 소녀 무이는 부잣집의 종으로 들어갑니다. 그 집의 마님은 어린 무이를 자신의 죽은 딸처럼 여기며 사랑합니다. 10년 후 주인집의 가세가 기울자 스무 살의 무이는 주인집 큰아들의 친구인 쿠엔의 집 하녀로 들어가게 됩니다. 무이는 예전부터 주인집에 놀러온 음악가 쿠엔을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겐 멋진 약혼녀가 있습니다. 때로는 약혼녀의 립스틱을 몰래 살짝 발라보기도 하지만 갈 수 없는 나라, 자신이 속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정갈한 식탁을 차리는 무이. 흐르는 드뷔시의 곡 ‘달빛’이 무이의 순진무구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약혼녀가 냉랭한 쿠엔을 떠난 어느 날, 쿠엔은 무이에게 글을 가르칩니다. 쿠엔이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 속에서 무이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글자를 읽어나갑니다. “우리집 정원에는 열매가 많이 달린 파파야 나무가 있다. 잘 익은 파파야는 옅은 노란색이고 잘 익은 파파야는 설탕처럼 달다.”
이제 우리도 파파야 농장에서 노란 파파야를 먹고 있습니다. 파파야 열매 안에는 알알이 박힌 씨앗들이 있습니다. 마치 억누를 수 없는 무이의 마음조각처럼 오롯이 박혀 있습니다. 외로움, 절망, 연민, 슬픔, 기쁨 등. 디디의 스무 살도 그럴 것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아름다운 해피엔딩입니다. 하지만 디디의 소박한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디디는 내일이면 또 시골에서 온 청년들에게 한국어 기초를 열심히 가르칠 것입니다.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은 꿈을 가진 청년들입니다. 한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디디가 쓰는 스무 살의 시와 사랑의 노래는 한국을 향해 계속될 것입니다. 파파야 향기처럼.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