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한체육회의 인정단체로 스포츠에 발을 디딘 바둑은 2005년 대한바둑협회 창설, 2006년 준가맹단체, 2009년에는 정가맹단체로 스포츠로의 길을 착실히 걸어왔다. 그리고 2015년 1월 27일 대한체육회 제12차 정기이사회에서 바둑의 스포츠화를 위한 가장 실천적인 목표였던 소년체전(2015년부터)과 전국체전(2016년부터)의 정식종목 채택이 마침내 승인됐다.
예(藝)와 도(道)로서의 가치를 표방하던 바둑이 지난 15년 동안 이룬 성과는 많다면 많고 양에 차지 않는다면 또 그런 것일 것이다. 대한바둑협회 최종준 부회장(65)은 바둑은 국민스포츠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종목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가 바둑이 인기 스포츠로 갈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 대한바둑협회에 몸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최종준 대한바둑협회 부회장
“1990년까지 6년 간 LG상사에서 뉴욕 주재원을 하다가 90년 LG에서 MBC청룡을 인수해 LG트윈스를 창단하면서 단장을 맡았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지만 야구단 운영은 처음이어서 당시 고생 좀 했었다. 스포츠 마케팅에 대해 공부하려 했지만 국내에 전문서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게 생각난다. 나중에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94년 LG 트윈스의 우승할 때의 장면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또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재직 시에 열렸던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피겨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은 서구에서 인기가 있으면서 현대적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왔다는 점에서 가치가 컸다. 이는 우리 체육이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후 여러 경기단체의 참여 권유를 고사했던 알고 있는데 굳이 바둑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둑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둑은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아니 우월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미 두 개의 대학교(명지대, 세한대)에 바둑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바둑 고등학교도 운영 중이며 전국적으로 학교 바둑부의 창단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또 스포츠마케팅의 필수 파트너인 언론과 기업체의 바둑에 대한 관심과 지원 의지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개의 바둑전문 케이블TV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고 유수의 게임 사이트 넷마블, 한게임과 사이버오로, 타이젬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바둑사이트도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국민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는 요건은 모두 갖췄다고 생각한다. 다만 바둑계 내에 아직 스포츠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스포츠적 비전 설정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쪽에서 내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진석 9단, 박정상 9단, 홍민표 9단 등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를 방문한 최종준 부회장.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 두 단체가 제 역할을 한다면 바둑이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의 협력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대한바둑협회 회장선거에서 신상철 회장이 당선되면서 양 기구가 행정적으로 분리된 이후에 전임 집행부와의 인수인계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갈등관계라는 소문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축구나 야구 등 다른 단체를 보더라도 프로와 아마 기구의 사이가 각별한 곳은 거의 없다. 사안에 따라서는 경쟁도 벌여야 하니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나는 굳이 분리독립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양 단체가 얼마나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느냐다. 대한바둑협회는 스포츠로서의 바둑의 체제, 즉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한국기원은 스포츠로서의 바둑의 고도화, 프로선수의 양성과 리그의 활성화, 기전의 확대 등에 매진하면 된다. 양 기구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신상철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바둑계의 소통과 화합, 전문화를 강조했다. 나 역시 임명 직후 한국기원의 신임 유창혁 사무총장과 목진석 국가대표 감독, 양건 프로기사 회장을 만나 공동협력 및 전문성 강화방안을 심도 있게 협의했다. 양 단체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서로 도우면서 각자의 역할을 정립할 수 있다고 본다.“
―바둑이 국민적 스포츠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나.
“바둑이 이미 스포츠의 길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둑계에서는 이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자리 잡지 못한 것 같다. 앞서 말한 대로 바둑은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종목이다. 현재 국가정책은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 학원스포츠로 이동하는 중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생활체육으로 바둑을 접하고 청소년들이 학원스포츠로 바둑을 즐기면서 바둑의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지원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여기에 현재 바둑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토토 편입, 바둑진흥법 제정 등으로 스포츠바둑으로서의 체제를 확실하게 정비한다면 바둑이 국내 대표적인 프로스포츠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