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가 내놓은 ‘대한민국 출산지도’. 가임기 여성 분포도를 표시한 수치와 지역별 순위가 매겨져 있어 ‘여혐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
최근 행정자치부가 저출산 극복대책으로 내놓은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공개와 동시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해당 출산지도의 ‘가임기(15세부터 49세 여성) 여성 수’에는 전국 시·군·구 별 가임기 여성 분포도를 표시한 수치가 나와 있었으며, 지역별로 순위가 매겨져 있었다.
가임기 여성이 많을수록 진한 분홍색으로 표시된 해당 지도는 성범죄 발생률이 높을수록 진한 보라색으로 표시되는 ‘성범죄 발생 분포 지도’와 거의 일치한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여성들은 “우리나라가 강간 독려 국가가 다 됐다” “여성이 걸어 다니는 자궁이냐” “국민을 개돼지로 보던 이들이 여성을 가축으로 본다”며 분개했다.
해당 지도가 공개되자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를 비롯한 일부 남초 사이트에는 구글 지도를 활용한 AR기반 모바일게임 ‘포켓몬 GO’를 여성의 음부에 빗댄 ‘XX몬 GO’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해당 지도가 있으면) 연령 구분해서 납치 및 강간 같은 게 가능한 거냐? 인신매매나 성범죄자한테 꿀 아이템일 듯” “지도 보니까 수확할 XX년들 여기저기 널렸네” “강간해서 임신시키면 무죄 맞나요?” 등의 반응을 보이며 가임기 여성 지도를 성범죄 등과 연관 지어 성폭력적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공개되자 일부 남초 사이트에서는 이를 성범죄 등과 연관 지어 성폭력적 발언을 일삼았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 캡처.
논란이 불거지자 행자부는 하루 만에 사이트를 폐쇄했다. 현재 대한민국 출산지도 사이트(birth.korea.go.kr)를 접속하면 수정 공지문만이 게재돼 있다. 행자부는 논란에 대한 사과 없이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국민에게 지역별 출산통계를 알리고 지역별로 출산 관련 지원 혜택이 무엇이 있는지 알리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해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하겠다”는 해명만 남겨 비판은 여전히 거센 상황이다.
여성계에서는 정부가 내놓는 인구·출산정책이 여성인권을 외면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미혼모나 임산부,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지원이 선행되어야 마땅할 정부의 인구·출산정책이 ‘여성의 출산 의무’만 강요한다는 이유다. 여초 사이트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에서는 그간 정부 기관이 내놓은 공익광고와 게시물 등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특히 보건복지부의 2011년 ‘인공임신중절 예방 포스터’와 2014년 ‘피임 캠페인 포스터’는 SNS와 온라인커뮤니티에 확산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예방 포스터’는 ‘안녕, 엄마…’라는 문구와 함께 아기의 붉은 손도장이 찍혀 있다.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한해 34만 건의 낙태 시술, 34만 명의 새 생명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처음 나온 세상 나들이, 우리 손으로 지켜줘야 합니다’라고 적혀있다. 해당 포스터는 낙태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의 ‘피임 캠페인 포스터’는 여성을 핸드백을 포함해 쇼핑백으로 추정되는 짐들을 가득 짊어진 남성의 뒷모습과 아무 짐도 들지 않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표현됐다. 사진 옆에는 ‘다 맡기더라도 피임까진 맡기지 마세요’ ‘피임은 셀프입니다’ ‘피임은 남자 혹은 여자만의 의무가 아닙니다. 함께 신경 써야 할 소중한 약속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혔다. 해당 포스터는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의 모든 짐을 맡기고, 피임까지 남성에게만 맡기고 있는 것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인공임신중절 예방 포스터’. 낙태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건복지부 측은 “두 포스터는 과거 이미 한차례 이슈가 된 바 있다. 외부 업체에 위탁해 제작한 2014년도 ‘피임 캠페인 포스터’의 경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게재를 중단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공모전을 통해 시상한 2011년 ‘인공임신중절 예방 포스터’의 경우 심사를 언론사 및 홍보 전문가들로 이뤄진 외부위원들이 진행했다. 외부위원들이 심사했기에 그것이 그대로 선정됐고, 수상 당시에는 논란이 일지 않았으나 최근 그와 관련한 비판이 나왔다. 앞으로 공모전을 진행하게 된다면 그런 의견들을 충분히 듣고 반영해 심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익광고 포스터와 함께 문제가 된 것은 보건복지부가 총괄 운영한 ‘국가건강정보포털’ 홈페이지의 ‘아름다운 가슴이란’ 제목의 글이다. 게시물에서 여성의 가슴은 ‘아기에게는 생명의 정수를 물려주는 곳이요, 남편에게는 애정을 나누어 주는 곳이며, 여성 본인에게는 자신의 미적 가치를 표현하는 곳’이라고 설명돼 있으며, ‘아름다운 가슴의 모식도’ 그림까지 포함돼 있었다.
더불어 같은 포털에서 카테고리별로 건강/질병 정보를 설명한 게시물에서 ‘여성’ 카테고리에는 ‘피임’ 게시물이 게재돼 있으나 ‘남성’ 카테고리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는 점도 비판을 받았다. 당시의 게시물들을 캡처한 네티즌들은 “여자는 아름다운 가슴도 가져야 하고 임신도, 피임도 해야 한다. 국가에서 여자의 역할을 정해준다”고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측은 “당시 이슈가 나온 직후 건강정보 콘텐츠 가운데 문제의 소지가 있거나 국민들이 보시기에 불편한 것들을 선정해 삭제했다. 이후 여러 번 콘텐츠를 전반적으로 검토했으며, 1300개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콘텐츠를 검토해 이슈가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삭제했다”고 전했다.
현재 해당 포털에는 ‘아름다운 가슴이란’ 게시물이 지난해 8월 삭제된 상태이며, 건강/질병을 설명한 카테고리별 콘텐츠에도 ‘남성’과 ‘여성’ 카테고리 모두에 ‘피임’이 게재돼 있다.
임신중절 수술 합법화 운동을 벌이는 BWAVE팀은 최근 행자부의 ‘대한민국 출산 지도’와 관련해 ‘아기자판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 = BWAVE팀 제공.
이미 과거 쟁점이 돼 수정 및 삭제된 게시물들이 다시금 비판을 받는 것은 정부의 일관된 ‘젠더(gender) 의식의 결여’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9월 불법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하고 수술을 한 의사에 최대 12개월의 자격정지를 내리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시작된 여성계의 ‘검은 시위’도 장기화될 조짐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의 입법 예고에 현행법상 인공임신중절 수술 조건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여성계는 여성 인권과 자기결정권 등을 주장하며 ‘검은 시위’를 연 바 있다.
‘블랙선데이 코리아’를 주최하는 BWAVE(Black wave)팀은 “개정안은 표면적으로는 ‘불법 낙태 수술의에 대한 처벌강화’였으나 결과적으로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더욱 억압하는 것이 자명했다. 거센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혀 낙태 수술에 대한 제재를 12개월로 강화하겠다는 부분은 폐기됐으나 이는 개악을 막은 것에 불과하며, 언제든 새로운 개정안이 발표돼 여성인권이 퇴보할 위험이 존재한다”며 “당시 시위를 주최했던 여성들은 장기적인 활동을 위해 BWAVE라는 프로젝트팀을 결성했다. 시위와 서명운동 등의 방식으로 법률 개정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BWAVE팀은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을 통해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에 대한 117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낙태가 불법인 한국에서 섹스는 방사능보다 위험하다’며 섹스중단선언에 나섰다. 더불어 오는 6일 행자부 앞에서 ‘대한민국 출산 지도’와 관련해 가임거부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BWAVE 측은 행자부의 ‘대한민국 출산 지도’ 논란에 대해 “대한민국에서는 출산율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지만, 외국에서는 출생률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출산과 양육을 사회의 책임이 아닌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단어에 반영돼 있다. ‘저출생 문제’라는 단어에서는 단지 신생아가 적은 현상이 연상되지만, ‘저출산 문제’는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아서 문제라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