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의회에서 전주-김제 통합론이 공론화 됐다. 전주시내 전경. 사진제공=전주시
[일요신문] 전북 전주시와 김제시간 행정권역 통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주-완주 통합작업이 무산된 지 3년여 만에 지역 정치권에서 전주-김제 통합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사담에서 오간 것으로 알려졌던 주장이 전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공식 제기된 것이다. ‘뜬금없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지만 ‘통합 시너지가 충분해 검토해 볼만하다’는 입장도 심심찮은 상태다.
당초 전주-김제 통합론에 불을 지핀 것은 정동영 국회의원(국민의당, 전주 병)과 이건식 김제시장이다. 두 사람이 지난 8월 13일 사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이날 이 시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전주·김제 통합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 “아직 구체적 로드맵이 있는 것은 아니고 추후 전주·김제 통합론이 거론된다면 공론화 절차를 거쳐야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잠잠하던 전주-김제 통합론은 지난해 11월 4일 김제시내 모처에서 열린 한 문학행사장에서 정 의원이 “전주-김제를 묶어 새 황해시대를 열자”며 공개적으로 입장으로 표명했고 김제발 통합론은 전주시의회에서 바통을 이으며 수면 아래에서 공론의 장으로 나왔다.
전주시의회 강동화 의원은 지난해 11월 정례회 본회의에서 “새만금 시대를 맞아 전주시와 김제시의 행정권역 통합을 제안한다”면서 “새만금 시대를 견인할 중심지역으로 발돋움할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중국 허브로서 성장해 100만 광역도시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통합논리는 자본과 기술, 우수한 도시기반시설을 갖춘 전주시와 도로, 철도, 항만, 항공 교통중심지로 새만금지구를 낀 김제시와의 통합은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전주와 김제의 통합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새만금국제공항 부지 선정 과정에서 후보지 중 하나인 김제 화포 지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김제 통합론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주시청 전경. 사진제공=전주시
그는 “양 지역이 하나로 통합되면 전북 혁신도시 역사 설립도 가능해져 현재 김제역에 정차하지 않는 KTX 고속열차를 김제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 의원은 “김제시 백구면과 용지면 등 김제시민 상당수가 이미 전주를 생활권역으로 하고 있다”면서 “전주-김제 통합은 도농 복합도시개발을 가능하게 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통합 대상인 양 지자체의 입장에는 온도차가 난다. 김제시 측은 새만금을 낀 김제시가 입지적으로 좋은 여건 갖추고 있어 전주시와 통합할 때 상호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며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주병을 지역구로 둔 정동영 국회의원 측 관계자도 “장기적으로 통합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혀 향후 의제 설정과 공감대 형성 여부에 따라 전주-김제 통합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에 정치권 주도로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뜬금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통합론 자체가 상승효과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주완주 통합보다 훨씬 명분도 약하고 현실화 가능성도 없는 전주김제통합론이 왜 이 시점에서 거론되는지 의아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양 지역의 역사성과 생활권이 통합에 이를 만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느냐에선 회의적이다.
기본적으로 시군 통합은 공동체의식이 중요한데 전주시의 광역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본래 한 권역이던 양 지역은 20여 년 가깝게 통합논의를 벌이고 지방의회의 동의를 거쳐 2013년 6월 주민투표까지 갔지만 완주군 유권자 55%가 반대해 통합이 무산된 바 있다.
반대 측인 한 지역 인사는 “전주와 김제는 역사가 다르고 김제시의 생활권만 해도 전주권과 익산권으로 나눠졌다. 같은 뿌리의 김제시와 김제군 통합만 해도 통합 이후 도농 간 갈등으로 많은 후유증을 겪었다. 도농 통합시 농촌 발전의 구심력이 상실된다는 것도 농촌 지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역사성과 생활권을 무시한 채 검증되지도 않은 추상적 효과만을 내세운 전주김제통합론은 주민들 간 갈등만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김제시는 전주시와의 통합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제시청 전경. 사진제공=김제시
김승수 전주시장도 전주 김제 통합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주시의회가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한 지 약 보름 만에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었다. 김 시장은 시의회에 출석해 “전주는 인구대비 면적이 좁아 시군 간 통합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지금은 그런 통합보단 전주의 내실화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통합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시장은 우선, 시군 간 통합이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시했다. “전주 김제, 나아가 전주 김제 진안 통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은 시정질문에 대해 “현재 세계적인 도시들은 도시 규모를 키우기보단 인접 도시들과 유기적인 네트워킹을 강화해 동반 성장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그런 측면에서 전주 또한 다른 발전전략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에서 공론화가 시작된 점도 우려했다. 김 시장은 “앞서 무산된 전주 완주 사례를 살펴보면 작은 도시가 적극적일 때 그 가능성은 훨씬 더 높다고 본다”며 “자칫 전주시가 주도하면 패권주의로 인식돼 지역사회에 큰 분열과 상처만 남길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경계했다.
공공기관 주도형 통합론도 걱정했다. 김 시장은 이를 놓고 “시군간 통합은 행정의 일방적 주도나 정치적 필요성에 성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 주도로 진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기성도 문제 삼았다. 김 시장은 “통합을 논의할 시점은 시민 대부분이 통합을 원하고 전폭적인 찬성이 있어야만 공론화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행정 주도의 통합 논의보단 실질적인 연대를 통해 규모의 제한을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주시와 완주군은 2013년 논의를 거쳐 통합에 합의했으나 같은 해 6월 치러진 완주군 지역 유권자 중 55%가 반대하는 바람에 통합이 무산된 바 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