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 23일 만인 지난 1일 청와대 상춘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후 박 대통령은 그동안 대국민담화, 검찰중간수사 논평,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무죄’를 주장해 왔다. 지난 1일에는 신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세월호 7시간 의혹, 삼성합병 뇌물 의혹, 최순실과의 관계 등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20여 일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너무나 많은 왜곡, 오보, 허위 남발로 굉장히 혼란을 주면서 오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한도 끝도 없는 일이 벌어져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다”며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실현된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취재용 노트북, 카메라는 물론 스마트폰조차 소지하지 못하도록 했다. 수첩과 볼펜 정도만 허용됐다. 대신 행사를 마친 후 청와대가 자체 촬영한 6장의 사진과 영상이 기자단에 배포됐다. 공개된 사진도 청와대의 평소 촬영방식인 근접촬영이 아니었다. 보통 청와대가 공개했던 사진들만 봐도 망원렌즈를 이용해 촬영된 근접 사진이었던 모습과 차이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현재 피부시술 의혹 등 논란이 일고 있는 대통령 얼굴을 근접 촬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국회 측 탄핵 소추위원인 권성동 법사위원장(개혁보수신당)은 지난 3일 피청구인인 박 대통령이 탄핵 법정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재판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야당 측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 ‘정지되는 직무 행위는 각종 단체·산업 현장 등 방문 행위, 방송에 출연하여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행위, 기자회견에 응하는 행위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했기 때문에 직무가 정지된 박 대통령은 헌법 위반 행위를 또 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12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직무정지 기간은 어땠을까.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63일 만인 5월 14일 헌재로부터 탄핵 기각 판정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2개월의 시간은 학습에 초점을 맞춘 정적인 생활로 집약할 수 있다. 윤태영 당시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독서와 산책, 주말 등산 등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두 달여 동안의 직무정지 기간 동안 ‘칼의 노래’, ‘마거릿 대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이제는 지역이다’ 등 참모들이 추천한 책을 정독했다.
노 전 대통령도 직무정지 기간 동안 기자들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 후 한 달째를 맞이한 2004년 4월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등산에 나섰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 기자가 직무정지 후 한 달간의 관저 생활을 묻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봄이 왔지만 진정한 봄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은 “봄을 맞으려면 심판을 두 개 더 거쳐야 한다”며 “요새는 정치적 연금상태이자 재판을 앞둔 피고인의 심정”이라고 심경을 전한 바 있다. 이는 당시 4·15 총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으로 헌재의 탄핵심판과 총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공세 전환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헌재 탄핵심판의 변론기일 시작과 특검 수사 본격화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함으로써 여론전을 펼치겠다는 포석을 깔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각 언론사에서 발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 기각 의견이 14~17%를 기록, 지난해 말 한국갤럽이 실시한 박 대통령 여론조사 지지율인 4%에 비해 소폭 상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탄핵 기각 여론을 30~40%대까지 끌어올린다면 헌재가 부담을 느끼지 않겠냐는 게 청와대 내부 판단인 만큼 박 대통령의 여론 대응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실망해 모습을 감춘 ‘샤이 박근혜’(박 대통령의 숨은 지지자)를 다시 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 유력하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시무식에서 ‘한 개의 화살은 부러뜨리기 쉽지만 여러 개의 화살이 모이면 부러뜨리기 힘들다’는 뜻의 고사성어 ‘절전지훈(折箭之訓)’을 인용, “여러 사람이 마음과 뜻을 합한다면 그 어떠한 난관도 해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지지층 결집을 겨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청와대 측은 야당 등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겠다는 의지 또한 흘려 앞으로 박 대통령이 보일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