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일부 유통업체와 냉동창고업체가 같은 담보를 두고 여러 금융사에 중복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육류담보대출은 유통업자가 냉동창고에 보관된 고기를 담보로 받는 대출이다. 냉동창고업체가 담보 확인증을 발급하고 금융사는 확인증을 바탕으로 유통업체에 대출하는 식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동양생명의 육류담보대출금액이 3803억 원으로 제일 많고 화인파트너스(676억 원), HK저축은행(354억 원), 효성캐피탈(268억 원), 한화저축은행(178억 원), 신한캐피탈(170억 원), 한국캐피탈(113억 원) 등이 육류를 담보로 100억 원 이상의 금액을 대출해준 상태다.
피해 금융사들은 채권단협의회를 구성해 담보물 확인에 착수했다. 육류의 상태를 확인하고 처리할 방법을 공동으로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현재 회계법인을 통해 담보 가치 평가를 하고 있다”며 “1월 말까지 담보에 대한 실사가 끝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동양생명은 채권단협의회에 참여하지 않고 법률대리인으로 김앤장을 선임해 독자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동양생명은 담보물에 대한 우선권이 있어 채권단과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동양생명이 승인한 육류담보대출 가운데 후순위대출은 없으며 동양생명이 최초로 담보설정을 한 경우에만 돈을 빌려줬다”며 “다른 금융사가 담보 우선권을 주장한다면 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양생명이 채권단협의회에 참여하면 다른 피해 금융사들과 담보물을 나눠 가질 가능성이 높다. 동양생명은 피해액이 압도적으로 많고 선순위에 대한 자신도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담보물을 가져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육류는 유통 기간이 짧아 등기 의무가 없는 양도담보대출로 분류된다. 담보에 대한 등기가 없어 대출 선후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고, 동양생명이 최초로 담보설정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없다. 설령 가장 먼저 대출한 점이 확인되더라도 등기가 없으면 선순위 채권 자격이 인정되지 않는다.
채권단협의회 내부에서는 동양생명을 향해 불만의 목소리를 내뱉는다. 담보에 대한 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아 동양생명과 다른 피해 금융사 간 소송을 통해 담보 주인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동양생명에 선순위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 금융사 간 협의도 힘들어졌다”며 “동양생명이 단독으로 담보에 대한 권리 행사에 나선다면 협의회 측도 법적 대응을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동양생명은 당장 질권 설정은 하지 않을 계획이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금감원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동양생명 본사 건물.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일부에서는 동양생명이 이미 육류담보대출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했다고 보고 있다. 동양생명에 따르면 연체된 금액 2837억 원 중 1~3개월 연체액이 2543억 원이다. 적어도 1개월 전부터는 거액의 연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금융사는 금융사고를 인지 또는 발견한 즉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또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관련 조사에 나섰으나 동양생명은 28일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연체 사실을 공시했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연체액에 대한 피해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고 공시하느라 늦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동양생명의 늑장 보고에 대해 주주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육류담보대출이 등기가 없는 리스크 상품임을 감안했을 때 동양생명은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주주들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피해는 동양생명의 실적에 큰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승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50%의 대손충당금을 반영하면 동양생명은 2016년 4분기에 962억 원 수준의 예상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