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3일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다. 서금원은 기존에 흩어져 운영되던 서민금융과 정책을 하나로 통합·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23일 서민금융생활지원법(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됐다.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을 두고 박근혜 정부의 치적 세우기 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제공=청와대
정부가 이처럼 서민금융을 한 곳에서 전부 관리하게 한 이유는 그동안 각 영역별로 처리하는 기관과 회사가 달라 실제 서민들이 대출을 받거나 채무이행, 신용회복 등을 원할 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을 뿐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서금원을 통해 서민금융정책의 혜택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서금원은 대출상품을 소개해주거나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고 취업상담, 복지제도 안내까지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서금원은 각 지역에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33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직원은 총 100여 명이다. 각 센터장은 서금원과 신복위, 캠코 등 관련 유관기관의 협의로 결정된다. 서금원 관계자는 “서금원을 통해 소비자는 더욱 편리한 서민금융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현재까지 22만 명이 상담을 받았고 앞으로 더욱 서민 살림살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서금원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해 여러 논란에 시달리는가 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년간 논의 끝에 설립했지만 조직 체계나 역할이 불분명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우선, 일부 금융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서금원이 각각 이질적인 기능을 억지로 한 곳에 통합한 탓에 구조가 기이할 뿐 아니라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서민금융정책이나 제도를 담고 있기보다 기존의 서민금융을 담당하던 기구를 한데 모은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원스톱 서민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면 이미 갖춰진 틀에서 그것들을 제대로 안내해주는 창구 역할을 하는 기구만 만들면 되는데 굳이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관리·감독을 받는 정부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이명박 서민금융 브랜드 지우기’, ‘금융당국 퇴직자들의 은퇴 후 자리 마련용’이라는 비난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5년 6월 국회에서 열린 ‘서민금융 활성화와 서민 과중채무 해결방향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국적 중앙기구인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은 금융위 퇴직자 일자리 마련용”이며 “지자체에서는 금융감독원 퇴직자 다수가 자율협약 형식으로 지방 조직을 준비 중”이라고 비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3일 “서금원은 금융위·금감원 퇴직자 재취업 창구”라고 주장했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주식회사 형태의 특수법인이지만 금융위원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요신문 DB
서금원의 형태와 운영, 인사 구조를 살펴보면 이러한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먼저, 서금원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부원장과 이사는 서금원장의 제청으로 금융위가 임명한다. 사실상 금융위가 서금원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또 서금원은 주식회사 형태의 특수법인으로 상법상 주식회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지만 경영상 중요한 사안은 이사회가 아닌 운영위원회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출자를 한 주주가 이사회를 통해 경영상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보다 상위의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위원장 포함 10명 정도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은 금융위는 물론 대부분 정부부처에서 추천한다. 백주선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는 “금융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정부 부처에서 위원을 추천하기 때문에 사실상 금융위가 운영위원 다수를 위촉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서금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채무자보다 채권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쉬운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채무자의 채무조정을 담당하는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은 15명으로 구성되는데, 과반인 8명이 전국은행연합회장, 생명보험회사협회장, 여신전문금융업협회장 등 채권자인 금융기관이나 금융기관과 가까운 인사다.
이들이 과연 채무 부담을 지고 있는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할지 의문이다. 서민들의 채무이행·조정과 신용회복을 도와야 할 서금원이 자칫 무거운 채무로 고통 받는 서민들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짙을 수밖에 없다. 전성인 교수는 “위원 구성만 봐도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며 “채무자 처지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민간자금 걷어 정책금융 생색…이곳도 ‘갹출’ 있었나 서민금융진흥원의 자본금은 200억 원이다. 그런데 이중 상당수가 민간 금융사들의 자금으로 채워졌다. 하나·국민·우리·신한·NH농협은행 이 5개 시중은행이 각각 25억 원, 생명보험사가 17억 원, 손해보험사가 11억 원 등을 서금원에 출자했다. 정책금융공사 등 정부기관도 서금원에 출자하긴 했으나 자본금의 대부분이 민간 금융사들의 출자로 마련된 것이다. 즉 민간자금으로 정책금융을 생색낼 뿐 아니라 인사권과 경영 구조까지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서금원은 주식회사 형식의 특수법인이지만 그 설립근거인 서민금융생활지원법에 따라 이익이 발생해도 배당을 하지 않고 그 이익금을 쌓아 둔다. 서금원에 출자한 민간 금융사 입장에서는 수십억 원의 돈을 내고도 주주로서 이익을 얻지 못한다. 서금원에 출자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감독기관에서 (돈을) 내라니까 따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민간은행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리 있겠느냐”며 ‘강압’에 따른 것임을 암시했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사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안다”며 ‘강제모금’ 의혹을 부인했다. 서금원은 설립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벌써 낙하산 인사 논란에도 휘말리고 있다. 안상정 전 새누리당 안성시 당협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서금원 감사로 재직하고 있는 것이 밝혀진 것. 안 감사는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친박조직인 안성희망포럼 대표와 박사모 중앙상임고문을 맡았던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서금원의 연봉 수준은 금융 공공기관의 75% 수준이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