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요구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A가 기자에게 자신이 이대호(35)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스카우트란 신분 때문에 소속팀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이대호에 대해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메이저리그 몇몇 구단이 이대호 영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은 지난 12월 3일 ‘야구야 고맙다’ 저자 공동사인회에 참석한 이대호.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A 씨는 지난 11월,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대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재계약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에서 그동안 A 씨의 파일에 담긴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이대호의 2017 시즌을 예상한 보고서였다고 한다.
“이대호를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대호가 야구장에서, 또 야구장 밖에서 보여준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메이저리그 도전을 감행했고, 시애틀에서 플래툰이란 제한적 출전 기회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잘 해냈다. 그리고 시애틀 팬들이 이대호를 향해 보인 뜨거운 반응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팬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경기 전 일부러 일찍 더그아웃에 나와 홈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장면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만약 저런 형태의 선수가 우리 팀에 온다면 어떨까 싶었다. 한인 팬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팀이라 이대호의 영입은 팀에도 큰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대호의 기록 분석뿐만 아니라 마케팅 수익 등을 숫자로 분석해 보고서에 담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대호에 대해 나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아니었다.”
A 씨는 같은 리그(A 씨가 속한 팀이 아메리칸 리그인지, 내셔널 리그인지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금세 노출이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의 다른 팀 스카우트 2명이 2016 시즌 내내 이대호를 줄곧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선수가 뛰고 있지 않는 팀들 중 두 팀이 이대호를 영입 대상에 올려놓고 검토 중이라고 들었다. 나 또한 조급한 마음에 보스한테 계속 결과를 재촉하고 있지만 대형 선수 계약을 마무리 지은 후에나 진행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해서 지금은 기다리는 중이다.”
이대호는 2016 시즌 104경기에 나서 타율 0.253(294타수 74안타), 14홈런, 49타점을 기록했다. A 씨는 올해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 성적을 타율 0.270과 홈런 20개 이상으로 예상했다.
“이대호는 이미 메이저리그 적응이 끝난 선수이다. 지난해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야구를 하게 된다면 분명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제시한 예상 성적은 ‘최소한’이다.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는 상황이라면 성적은 더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대호가 원하는 대로 주전으로 뛰긴 어려울 것이다. 어떤 팀의 제안을 받는다고 해도 그 내용은 붙박이 주전이 아닌 옵션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A 씨는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활용도에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만약 팀에 확실한 1루수가 없다면 주전으로 이대호를 세우고, 오른손 투수를 주로 상대하는 팀 내 유망주를 백업 멤버로 올릴 것이다(지난 시즌 막판 시애틀이 아담 린드 대신 유망주 다니엘 보겔백을 시카고 컵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후 이대호와 같이 1루수를 보게 한 일이 있다). 붙박이 1루수가 있다면 시애틀에서처럼 투수 유형에 따라 출전이 달라지는 플래툰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A 씨는 다른 팀 스카우트로부터 들은 내용이라고 밝히고선 이대호가 1루수로 매력적이지 않은 체형을 갖고 있는 점이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가 지적하는 ‘매력적이지 않은 체형’이란 건 이대호의 큰 체격이다. 그러나 이건 이대호가 지난 시즌 남다른 수비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체형이 수비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노력으로 입증해 보였다. A 씨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그래서 보고서를 제출할 때 수비 부분의 ‘우려’가 있었지만 선수의 노력으로 인정받았다고 서술했는데 다른 팀 스카우트들은 여전히 이대호의 수비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A 씨는 이대호가 한국, 일본 팀과 계약하지 않는다면 메이저리그는 1, 2월 중에나 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말한 것처럼 대형 계약들이 모두 이뤄진 후에야 협상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대호가 어느 정도의 몸값을 원하는지 기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이대호는 이미 지난 시즌을 마치면서 “더 이상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도전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다음엔 제대로 된 대우와 출전 기회를 보장받고 싶다”는 게 이대호가 내세운 가이드라인이다.
A 씨는 이대호 영입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계약 기간을 1+1년으로 명시했다고 밝혔다. 몸값은 400만 달러를 넘지 않고, ‘현실적인 금액’을 적어놓았다고만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이대호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면서 중요한 내용은 구단에 메일로 보고한다면서 최근 이대호가 사이판으로 개인 훈련을 떠날 예정이라는 내용이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최근 강정호 사건 등으로 메이저리그 내에서 한국 선수를 보는 시각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면서 “이럴수록 이대호 같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재진출해서 보란 듯이 성공해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대호 영입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에선 최근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 킹>이 지바롯데 마린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이대호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팀으로 꼽았다. 반면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에선 마이애미 말린스와 탬파베이 레이스가 이대호 영입에 관심을 나타낼 만하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예상일 뿐 적극적으로 영입전에 뛰어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대호는 장기전에 돌입하게 될 자신의 거취에 대한 관심을 잠시 내려놓고 개인 훈련에 몰두하면서 WBC대회를 준비하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림’뿐이기 때문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