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5~8일(현지시간)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7’에 참석한 한 인사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을 만나 후반전을 시작했는데, 한국은 혼자서 전반전을 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열린 세계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중국의 1인용 유인드론 EHANG(이항)184가 선보이고 있다. 무게 200㎏의 EHANG 유인드론은 2~4시간여 충전을 하면 23분 동안 비행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CES에서는 가전기술의 진보를 체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AI와 사물인터넷(IoT)이 자동차와 생활가전,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등을 만나 과거에 없던 생활의 편의성을 선사할 것임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최근 가장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고 있는 스마트카·자율주행차는 이번 CES의 주인공이었다. 이젠 자동차를 모터쇼가 아닌 가전쇼에서 관람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글로벌 메이저들이 대거 참여했다.
BMW와 닛산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타나 시스템을 탑재했다. 아우디도 엔비디아와 손잡고 자율주행차를 선보였고, 혼다는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AI ‘페퍼’를 탑재해 차와 운전자가 교감할 수 있는 자율주행 전기차 ‘뉴브이(NeuV)’를 공개했다. 토요타도 인공지능(AI) 자동차 ‘유이(愛i)’도 참가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약진이 두드러졌다. 올해 3800여 개의 CES 참가 기업 중 중국 기업은 1300여 곳에 달했다. 샤오미·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하이얼·화웨이·레노버·DJI·하이센스·창훙·스카이워스 등 중국 유명 기업들이 총출동했다.
자율주행차는 물론 AI와 IoT·가상현실·빅데이터·드론·3D 프린터 등 신기술 분야에서 첨단 기술로 무장,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모습이었다. 중국 최대 포탈 바이두는 현지 자동차 회사들과 손잡고 자율주행차를 개발했고, 제2의 테슬라를 자처하는 ‘패러데이 퓨처(Faraday Future)’는 첫 전기차 ‘FF91’을 내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드론 분야에서도 가장 큰 전시관을 차지한 DJI는 신제품을 대거 선보이며 글로벌 1위의 저력을 드러냈고, 알리바바는 얼굴을 인식해 결제하는 ‘스마일 투 페이’와 ‘VR 투 페이’ 등의 신기술을 선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에게 주어지는 CES 기조연설에는 화웨이의 소비자가전 부문 리처드 유 대표가 한 자리를 차지해 달라진 중국 기업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한 미국계 미디어 파트너사 관계자는 “상부로부터 중국 업체를 집중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질 정도로 미국의 관심도 높다”며 “해가 갈수록 그 비중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CES 전시장의 가장 노른자위 자리인 센트럴홀은 올해 중국 기업들이 독식했다. 센트럴홀은 가장 방문객이 많아 임대료도 가장 비싸다. 물론 센트럴홀의 가장 앞줄은 글로벌 IT 산업을 선도하는 삼성·LG전자·소니·파나소닉 등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차지했다. 그러나 그 뒷줄은 세대교체를 기다리는 듯 모조리 중국 기업의 차지였다. 돈을 많이 낸다고 센트럴홀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ES 집행부로부터 기술력과 비전을 인정받아야 전시할 수 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은 TV를 제외하고는 뾰족한 관심을 얻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 TV시장의 강자로서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W’가 최고상(Best of the Best)을 받는가 하면 퀀텀닷 기술을 적용한 삼성의 ‘QLED TV’가 한 단계 앞선 기술을 과시했다. 그러나 TV는 올해 CES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CES 참석자는 “일부 관람객은 하이얼 제품을 가리켜 삼성과 LG를 베꼈다고 비판하지만 단기간의 성장세에 혀를 내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삼성이 소니를 밀어냈듯 한국 기업이 언제 중국기업에 역전 당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지적했다.
CES와 같은 기간 열리는 스타트업 박람회 ‘샌즈 엑스포’에도 중국 기업은 509개나 참가한 데 비해 한국은 145개에 불과했다. 프랑스(357곳)보다도 적었다. 샌즈 엑스포 참석자는 “샌즈 엑스포의 경우 기업들 크기가 대개 비슷하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기술의 수준을 비교할 수 있다”며 “최근 성장세 때문인지 중국 기업에 대한 관심이 미국이나 유럽 출신 기업만큼 높았다”고 전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