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OECD 1위라는 순위 뒤에는 갈수록 위축되어 가는 투자 현실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투자 규모 하락 속도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고, 투자 총액은 중국의 11분의 1에 불과하다. 이것이 한국이 여전히 ‘캐치 업(1등 따라하기)’ 전략을 펼치는 국가에 머물고,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이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순위 뒤에는 갈수록 위축되어 가는 투자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지난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무인이동체 및 엔지니어링 산업 발전전략 보고회’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지난해 12월 정부는 ‘2017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미래형 자동차 등 11개 신산업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R&D) 세액 공제를 최고 수준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OECD 35개 회원국 중에서 1위인 만큼 정부 투자 확대보다는 기업 투자 지원을 위한 세액 공제가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의 투자 상황을 들여다보면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생산능력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R&D나 설비에 투자하는 금액을 모두 합쳐 ‘총고정자본형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총고정자본형성의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투자 수준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 비율은 2015년 기준으로 29.3%를 기록해 OECD 35개 회원국 중에 가장 높았다. 이는 경제규모와 비교할 경우 투자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흐름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 비율이 매년 빠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비율은 20년 전인 1996년에는 43.5%였다. 20년 사이에 경제규모 대비 투자 비율이 14.2%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이는 OECD 35개국 중에서 가장 큰 하락 폭이다. 같은 기간에 미국과 프랑스 등 18개국은 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비율이 상승했다.
지난해에도 이러한 하락세는 지속됐다. 지난해 3분기까지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 비율은 29.0%로 떨어졌다. 1996년 압도적 1위였던 투자 비율이 현재는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는 20%대로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투자가 위축되는 속도가 가장 빠를 뿐 아니라 총액 자체도 선진국이나 경쟁 상대국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총고정자본형성액은 2015년에 3920억9800만 달러(국가별·연차별 비교를 위한 불변 환율 기준)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총고정자본형성액인 3조 5766억 30000만 달러의 9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또 우리나라와 같이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를 가진 일본과 비교하면 3분의 1, 독일에 비하면 2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최근 기술 경쟁력을 높이며 우리나라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욱 크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총고정자본형성에 쓰는 금액이 11배나 많다.
이러한 투자 격차는 현실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6년 기업 혁신 능력 순위’를 보면 한국은 조사대상 61개국 중 33위에 그쳤다. 미국이 2위였고, 중국은 한국 바로 아래인 34위였다. 중국이 2025년까지 제조업 수준을 독일과 일본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2049년에는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중국 제조 2025’를 내세우고 대규모 투자에 나선 상황이어서 중국의 추월은 시간문제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한 국가의 투자 의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수치는 GDP 대비 투자 비율이 아니라 투자 총액이다. 투자 총액이 미국과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인데 정부와 기업은 GDP 대비 투자비율이 높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는 세계를 선도할 기술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투자를 과감하게 늘려나가지 않으면 조만간 중국에도 뒤쳐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