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호남 민심 쟁탈전이 뜨겁다. 유력 대권주자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새해 첫날 광주 무등산에서 시민들과 함께 등산을 했다. 문 전 대표 아내인 김정숙 씨는 지난 추석부터 매주 광주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지도부도 새해가 밝자마자 호남에서 각종 일정을 소화하며 민심 잡기에 열을 올렸다.
호남은 전통적인 야권의 텃밭이지만 지난 4월 총선을 기점으로 민주당과 국민의당 세력으로 크게 양분됐다. 양측 모두 올해 치러지는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호남의 지지가 절실하다. 총선 이후 호남의 민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시시각각 변화해온 호남의 민심을 그간 발표된 여론조사들을 토대로 분석해봤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 민심이 대선에서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악수하고 있는 장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유무선 자동응답 방식. 최종응답 2536명. 조사기간 2016년 4월 4일~8일까지.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를 살펴보면 민주당의 호남 참패가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호남 지역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44.4%였지만 민주당은 24.6%로 절반 수준이었다. 당시 민주당의 전국 지지율은 27.6%였는데 야권 텃밭에서 전국 지지율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전 대표 역시 전국 평균 지지율은 20.1%였지만 호남에서는 15.9%에 그쳤다. 호남에서 반친노, 반문재인 정서가 팽배했음을 엿볼 수 있다.
호남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제3당으로 떠오른 국민의당은 총선 직후 불거진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직격탄을 맞고 흔들렸다. 국민의당과 안 전 대표에게 새정치를 기대했던 호남의 민심은 차갑게 식어갔다.
당시 리얼미터 여론조사(유무선 자동응답 방식. 최종응답 1528명. 조사기간 2016년 6월 13일~15일까지.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호남 지역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39.9%로 총선 직전과 비교해 5% 가량 하락했고, 민주당 지지율은 28.7%로 4%가량 상승했다.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도 20.5%로 올라 안 전 대표를 0.1% 차로 바짝 쫓기 시작했다.
위기에 빠진 국민의당은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동반 사퇴하고 박지원 비대위 체제를 꾸리면서 호남 지지층 재결집에 나섰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유무선 자동응답 방식. 최종응답 2542명. 조사기간 2016년 6월 27일~7월 1일까지.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2.5%)를 보면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 이후 호남에서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던 민주당 지지율은 박지원 비대위 출범 이후 37.2%에서 28.2%로 하락했다. 호남에서 민주당에게 역전당했던 국민의당은 24.9%에서 37.8%로 지지율을 회복하며 호남 맹주 자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안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이 시기 안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16.5%에 그쳤다. 반면 문 전 대표는 20.7%로 1위를 차지했다.
한동안 변동이 없던 호남의 민심은 최순실 게이트로 크게 요동쳤다. 리얼미터가 2016년 11월 28∼30일 전국 성인 15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2.5%포인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가파른 상승세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호남에서 3%대 지지율을 기록했던 이 시장은 촛불정국 이후 지지율이 16.4%까지 치솟았다.
반면 안 전 대표는 촛불정국에서 지지율이 전혀 오르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호남 지지율 27.7%를 기록하며 20%대 박스권을 서서히 탈출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호남에서 반문재인 정서가 서서히 누그러진 셈이다. 이는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면서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로 표가 쏠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리베이트 파동으로 안 전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한 후 안 전 대표의 언론노출이 급감했고, 안 전 대표는 총선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본인이 주창한 새정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안 전 대표에게 실망한 호남 민심이 문 전 대표나 이 시장에게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문 전 대표가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굉장히 공을 들인 것도 있겠지만 호남은 예전부터 전략적인 투표를 해왔던 지역이다. 전국 지지율을 살펴볼 때 안 전 대표보다 문 전 대표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니까 문 전 대표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문 전 대표가 싫고 친노가 싫어도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의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새해 들어서는 안 전 대표의 상황이 더욱 암울해졌다.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15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조사기간 2017년 1월 2일~4일. 유무선 RDD방식. 95% 신뢰수준에 ±2.5%p)를 살펴보면 안 전 대표는 지지층이 급격히 이탈, 호남에서 대선후보 지지율 6위까지 밀려나는 굴욕을 당했다.
문 전 대표는 호남에서 20%대 박스권을 완전히 벗어나 33.4%를 기록했다. 이재명 시장 12.4%,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10.4%, 안희정 충남지사 8.3%, 박원순 서울시장 8.2%, 안 전 대표 7.9% 순이었다. 문 전 대표는 대구경북(TK)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지지율 선두를 차지했다. 전국 평균 지지율은 문 전 대표 28.5%, 반 총장 20.4%, 이 시장 10.2%, 안 전 대표 6.7% 순이었다. 촛불정국에서 일명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며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던 이 시장은 문 전 대표를 겨냥해 ‘반문연대’를 연상시키는 주장을 했다가 지지율이 급속도로 빠졌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호남 지지율 38.6%를 기록하며 25.0%의 지지를 얻는 데 그친 국민의당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민주당은 호남에서 19주째 국민의당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호남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민주당으로선 여전히 숙제가 남아있다. 여전히 25%의 유권자가 국민의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경우 대선판도가 요동칠 것으로 점쳐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