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연합뉴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연임이 유력했다. 실적이 나쁘지 않은 데다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라는 빅 이벤트들을 앞두고 있어 그룹 수뇌부에서 변화보다 안정을 택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개입한 정황들이 잇달아 불거진 데다 금융사들이 자금 지원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게이트에 연루되며 실추된 그룹 이미지를 인적 쇄신을 통해 바꾸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기에 김창수 사장과 안민수 사장, 원기찬 사장이 모두 한 차례씩 연임했다는 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세 사람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안민수 사장이다. 안 사장은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8000억 원대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유지하며 자산을 70조 원으로 늘리는 등 꾸준히 실적을 끌어올려 양호한 성적표를 받았다. 취임 당시인 2014년 초 삼성화재의 총 자산은 48조 원, 당기순이익은 7000억 원 수준이었다. 또 적자에 시달렸던 자동차보험 부문을 손해율 개선을 통해 흑자전환시키는 등 경영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듯 안 사장은 한 차례 더 연임하는 데 별다른 걸림돌이 없는 상태지만 보험업계에서는 그가 친정인 삼성생명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안 사장의 삼성생명 복귀설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렇다. 안 사장은 2014년 초 삼성화재 사장에 오르기 전까지 삼성생명에서만 20년가량 근무해온 정통 삼성생명맨 출신이다. 게다가 안 사장은 2010~2013년 삼성 금융사장단협의회 사무국장을 담당하면서 그룹 금융계열사 전략 수립에 핵심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 등으로 전환을 추진할 경우 안 사장이 이를 진두지휘할 적임자라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사 전환에 관한 밑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안 사장이라는 시각이 많다”며 “그룹 내에서 삼성생명을 가장 잘 아는 CEO 중 한 사람이기도 한 만큼 금융지주사 전환을 시도할 경우 그에게 지휘봉을 맡기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연합뉴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의 경우 취임 초기 2년 동안 화려한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1조 원의 벽을 넘지 못하던 삼성생명의 당기순이익을 부임 첫해 1조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저력을 보였다.
다만 지난해 아쉬운 성적을 냈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저금리 장기화 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사옥 이전 등 굵직한 현안을 큰 탈 없이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연임에는 무리가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최근 안민수 사장의 삼성생명 이동설이 확대되면서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그가 지난 연말 갑작스럽게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처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김창수 사장은 지난해 12월 15~16일 보유 중이던 삼성생명 주식 7000주를 모두 팔았다. 매각대금은 7억 8900만 원으로, 매입가였던 7억 원과 비교하면 8000만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산됐다. 삼성생명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금융권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김 사장의 자사주 매입과 매각 시기가 의문이다. 김 사장이 주식을 사들인 것은 불과 5개월 전인 지난해 7월 말이다. 삼성생명이라는 거대 금융사의 사장이 그리 크지 않은 시세차익 때문에 몇 달 만에 주식을 팔아야 할 ‘개인 사정’이 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게다가 삼성은 통상 임원이 퇴임할 경우 갖고 있던 자사주를 파는 관행이 있다는 점도 뒷말이 무성한 이유가 됐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연합뉴스
하지만 그 역시 최순실 게이트의 후폭풍에서 완전히 비켜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적 쇄신의 대상이 금융계열사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원 사장 역시 ‘리스트’에 이름이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금융지주 소속 한 고위 관계자는 “지주사 계열 금융사 CEO 인사가 정치권 눈치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면 대기업 계열 금융사 CEO 인사는 대부분 오너의 결심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올해 삼성그룹 인사의 경우 정치와 오너십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특검 일정 등을 감안할 때 삼성그룹 금융사 CEO 인사는 빨라야 3월, 늦으면 하반기까지 미뤄질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