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지원 배제를 명목으로 한 블랙리스트의 반대 개념인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도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일요신문DB
문화예술 인사를 적극 지원·추천하는 것으로 알려진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는 특검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연극인 김경익 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김 씨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인들이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특검에 처음으로 소환된 인물이다.
특검은 김 씨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 배경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 서명’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 특검의 소환 연락을 받았을 때는 2014년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억울하게 죽은 왕으로 묘사한 ‘바보햄릿’이 문제가 되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 서명에 이름을 남긴 것 때문이라고 (특검에) 들었다”고 말했다.
특검 조사 과정에서 김 씨는 블랙리스트 말고도 문화계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추천하라고 표시된 화이트리스트 존재도 알게 됐다. 블랙리스트 명단과 별개로 명단 옆에 ‘추천’이라고 표시된 문서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지난 2014년 말 자신이 이끄는 극단 ‘진일보’의 연극 ‘아리랑 랩소디’를 정부지원 사업에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는 ‘소외계층 문화순회사업’으로 연극, 문학, 음악, 시각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단체가 신청할 수 있다. 전체 지원금이 4000만 원에 달하는 사업이다.
김 씨는 “1차 심사에서 2차 심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연극 4개, 문학 4개, 음악 4개 팀을 ‘배제시킴’이라고 돼 있었다. 배제시키는 데 이유는 없고 이게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특검에)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특검은 ‘배제시킴’으로 표시된 단체들을 이상하게 여겨 공연계 원로 인사에 자문한 결과, 김 씨가 이끄는 극단 ‘진일보’가 배제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 김 씨를 소환해 심문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10여 개의 팀들에 한해 ‘~ 추천’이라 표시돼 있는 명단을 봤다. 김 씨는 “2차 심사에는 ‘추천’ 표시가 된 팀들이 들어가 있었다”며 “보통 2차 심사로 넘어갈 때는 1차 심사에서 어느 정도 필터링이 되기 때문에 정산해야 할 것을 안했거나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95% 정도는 2차 심사로 넘어가기 마련이라 이상하다 느꼈다”고 설명했다. 추천이라 표시된 팀들에 대해서도 김 씨는 “생소한 이름이 많았고, 특검에서 문건을 봤을 때 ‘~의원 추천’ 표시를 봐서 국회의원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특혜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실 김 씨는 지난 2014년 지원한 ‘소외계층 문화순회사업’에 탈락하자 다음해 지원할 시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문예위에 탈락 이유를 문의한 바 있다. 당시 문예위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지역 형평성’이었다. 김 씨는 이에 대해 “그때는 서울 팀이 그동안 많이 선정돼 지역마다 ‘나눠먹기’ 식으로 지역기반 문화단체에 공연기회를 주나보다 생각했다”며 “하지만 그건 이 사업의 순회공연 개념하고도 맞지 않고 ‘~의 추천’이라 표시된 걸 보니 지역 무언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특검은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어떤 경로와 이유로 정해졌는지 수사 중이다. 특검 관계자는 “특검팀이 확보한 명단에 ‘추천’이란 표현이 나온다”면서도 “문화계 지원배제 명단 내에서 분류되는 개념으로 화이트리스트 명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추천’하는 것은 화이트리스트로 이야기하고 그에 반대되는 건 블랙리스트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적군리스트’도 등장…진보든 보수든 찍히면 ‘OUT!’ 적군리스트는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도로 작성됐으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와는 별도로 이 리스트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DB 지난 9일 한 매체에 따르면 특검팀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적군리스트는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도로 작성됐으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와는 별도로 이 리스트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군리스트는 블랙리스트가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 인사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킨 것과 달리 여당 성향의 문화예술 인사라도 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면 적군리스트에 올려 지원 배제시키고 자신들의 편만 지원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야권은 이날 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을 일제히 비판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진보성향이든 보수성향이든 정권에 찍소리만 하면 블랙리스트, 적군리스트라는 ‘데스노트’에 올려 예산 지원을 끊어낸 것은 권력의 사유화와 직권남용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고연호 수석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조윤선 장관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심각한 불법적 개입사건을 특검이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며 “이번만큼은 법꾸라지 김기춘 전 실장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를 넘어 적군리스트 존재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현 정권과 보수 집단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 교수는 “아군 속 적군마저 색출·관리하려는 것은 자의적인 배제와 권력의 활용을 통해 통치하려는 현 정권의 DNA, 즉 속성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은 마치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모른 채 오직 반대편만 존재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와도 같은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