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청 온누리관에서 열린 더불박원순 서울시장이 포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 시장은 1월 8일 전북 지역 언론인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청산돼야 할 낡은 기득권 세력이다. 문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 친문 인사를 줄 세우며 분당이라는 폐해를 낳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시장은 이틀 뒤 “재벌개혁에 실패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참여정부를 재현하는 ‘참여정부 시즌2’로는 촛불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박 시장 측 대리인은 민주당이 마련한 대선 경선을 위한 룰 협상 테이블(당헌당규강령정책위원회)에 유일하게 불참했다. 박 시장은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개헌 저지 문건을 거론하며 연일 당 지도부의 편향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박 시장 최측근은 “우리도 지지율 1등을 해봤다. 야구로 예를 들면 박 시장은 한국 시리즈 선발투수로 등판해서 진짜 승부를 걸고 싶어 한다. 박 시장은 경쟁력이 있는 후보이고 자신의 경쟁력이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순간까지 완주할 의지가 있다. 당이 국민 여론과 다른 사람을 선발하면 어떡하나. 문 전 대표가 나서면 정권교체에 실패할 우려가 있다. 박 시장의 행보에 절박함이 묻어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반문 전선에 뛰어든 박 시장을 향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룰 협상에 왜 빠지나. 계속 문 전 대표를 비난하는 방법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1등을 물고 늘어져서 관심이라도 받겠다는 전략이다. 비문 표라도 받겠다는 심산인데 비문 진영도 박 시장의 편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발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계속 지지율이 폭락하니까 박 시장이 난데없이 문재인 때리기에 돌입했다”는 추측도 들린다. 박 시장은 한때 문 전 대표와 호각을 다툰 대선주자였지만 최근 극심한 하락세를 겪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에 따르면 2015년 1월 1주차 여야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박 시장은 문 전 대표와 함께 공동 1위(15.0%)를 차지했다. 서울시의 재정건전성 향상을 내건 박 시장의 승부수가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다는 관측이 일었다. 당시 박 시장은 야권의 대표 주자였다.
하지만 2017년 1월 1주차 조사에선 문 전 대표(28.5%)가 1위를 기록한 반면 박 시장(4.7%)은 6위로 밀려났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20.4%)과 이재명 성남시장(10.2%)이 문 전 대표의 뒤를 이었다. 2017년 1월 1주차 주중동향 조사는 2017년 1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152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였다(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http://www.nesdc.go.kr) 참조).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공약 베끼기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 시장은 최근 청와대 이전론을 꺼냈다. 그는 “청와대 밀실 통치 시대를 마감해야 한다. 현재의 청와대를 국민시설로 개방하는 대신 집무실을 정부종합청사 쪽으로 옮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청와대 이전론은 문 전 대표가 18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발표한 핵심 공약이었다.
박 시장의 서울대 폐지론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 시장은 1월 12일 오전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교육 개혁 방안으로 “서울대학교를 폐지하고 대학서열화를 해소해야 한다. 국공립대학교 통합 캠퍼스를 구축해 전국 광역시도에서 서울대와 동일한 교육 서비스를 받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민주통합당은 2012년 7월경 서울대 학부과정 폐지와 국공립대 통합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서울대 폐지론과 청와대 이전론을 전매특허 공약으로 강조한 일은 없다. 청와대 이전론이 문 전 대표의 대선 공약인 줄은 몰랐지만 공약은 얼마든지 겹칠 수 있다. 지방교육 활성화를 위한 좋은 방법이 서울대 폐지론이다. 공약을 베낀 것은 아니다. 여러 학자들이 주장해온 것과 후보의 철학이 맞으면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다. 박 시장이 공약 현실화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친문 진영이 박 시장 측 핵심 인사를 빼앗아간 것 때문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경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영입했다. 임 전 부시장은 대표적인 ‘박원순 라인’으로 꼽힌다. 제16·17대 국회의원(성동을)을 지낸 그가 1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휩싸여 정치적 휴식기에 들어갔을 때 손을 내민 이가 박 시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비서는 “박 시장이 화가 날 만하다. 문 전 대표 측이 임 전 부시장 등 핵심참모들을 빼갔다. 친문 진영이 인재만 쏙쏙 골라서 데려간 것도 모자라 최근 서울시청에서 나온 사람들 중 일부가 문 전 대표 쪽으로 합류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친문 인사들이 박 시장 보좌진들을 계속 포섭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전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인재 빼가기 논란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임 전 부시장 외에 우리 쪽으로 합류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임 전 부시장은 2012년 대선 때 정무특보를 했기 때문에 박 시장의 사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대선 당시 문 전 대표의 정책을 총괄했던 김수현 교수는 서울시 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김 교수가 박 시장 캠프로 가서 너무 아쉬웠다. 만약 박 시장 주변에 인재 빼가기 논란을 제기해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박 시장을 망치는 길”이다고 밝혔다. 박 시장 측도 “정치적 선택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임 전 부시장이 갔다고 해서 박 시장이 서운한 마음을 드러낼 만큼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다”고 보탰다.
야권에서 돌고 있는 서울시장 내정설이 박 시장의 분노를 부채질했다는 관측도 일고 있다. 박 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친문세력이 차기 서울시장 후보를 정해놨다는 이야기를 확실히 들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저는 파악을 못하고 있었지만 시장이 직접 들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야권의 한 인사는 “임 전 부시장이 저쪽 캠프로 가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를 이미 정해놨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니 격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박 시장의 반문 드라이브 전략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박 시장이 문 전 대표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쟁상대와의 정치적 경쟁이 신사적인 모습일 수는 없다. 다만 박 시장은 서울시정으로 쌓은 성과를 국민들에게 국가 비전으로 보여줘야 한다. 즉 ‘포지티브’ 전략이 필요한데 문 전 대표를 무작정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 걱정된다. 박 시장이 자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대권주자로서 면모를 강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