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진 전북도지사(사진)가 이병국 새만금개발청장의 퇴진을 촉구하는가 하면 ‘새만금개발청을 개조하자’고 외치고 있다.
[일요신문]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송하진 전북도지사.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 아들로 거친 말과는 거리가 먼 그가 새만금개발청과 이병국 청장을 향해 연일 독설을 퍼붓고 있다. 이 청장의 퇴진을 촉구하는가 하면 ‘새만금개발청을 개조하자’고 외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새만금 개발의 ‘양대 축’으로 호흡을 맞춘 사이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당장 전북도는 새해 벽두부터 새만금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을 반대하며 새만금개발청과 맞붙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송 지사가 새만금개발청 때리기에 나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4월 착공하는 새만금 해상풍력발전단지는 총 사업비 4400억 원을 들여 내년 하반기에 완공될 예정이다. 99.2㎿는 연간 6만 2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새만금방조제 군산 비응~신시 구간에서 내측 1㎞ 거리에 들어서는 발전소에는 날개(블레이드) 65m, 높이 103m 크기의 풍력발전기 28기가 설치된다. 새만금개발청은 발전단지 건설을 위해 지난 6일 새만금해상풍력주식회사와 ‘해상풍력발전사업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새만금개발청은 발전소가 설치되면 직·간접적으로 6500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새만금개발청의 기대와는 달리 전북도와 군산시는 이날 MOA 체결식에 불참하며 반대 의사를 밝혀 새만금개발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풍력단지 조성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따진 정책적 판단의 결과이지만 새만금개발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선 양 기관의 갈등 배후를 두고 그동안 행해졌던 개발청의 일방 통행식 정책운영이 자초한 결과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송하진 지사는 9일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사업의 주체도 아닌 전북도와 군산시를 합의각서에 끼워 넣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이 사업이 도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주고 지역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 국내의 많은 땅 중에 왜 새만금이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 없이 새만금개발청이 때를 만났다는 듯 사업을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송 지사의 새만금개발청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전북도와 개발청 간 갈등은 지난 연말 이미 불이 지펴졌다. 송하진 도지사가 이병국 새만금개발청장을 향해 퇴진 촉구의 ‘선방’을 날리면서다. 송 지사는 이 청장의 매너리즘을 타박하며 생각의 발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청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도지사가 중앙부처의 차관급 장의 거취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이 이 청장과 새만금 관계를 고려하면 쉽사리 나올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이 청장은 2009년부터 초대 국무총리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장을 맡아 새만금 방조제 준공, 새만금종합개발계획 수립 등에 기여한 공로로 전북명예도민증까지 받았다. 새만금개발청 개청과 함께 2013년 초대 청장을 맡은 인물이다. 새만금만 놓고 보면 송 지사보다 더 깊숙이 관련된 셈이다.
새만금 간척지 항공촬영 모습. 사진제공=전북도
송 지사가 그런 이 청장을 왜 내치고 싶어 할까. 송 지사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한 지역인사는 손사래를 친다. 송 지사와 이 청장 간 지연, 학연 등을 따져보면 앙금이 쌓일 만한 ‘겹치는 게 없다’는 것이다. 행정고시로 따져 송 지사가 4년 선배 정도의 연줄이 있다. 이 청장이 줄곧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고 송 지사는 행정자치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력과 경력으로 볼 때 사적인 앙금이 쌓일 만한 계기가 없어 보인다.
굳이 흠을 잡자면 이 청장에 특별한 과오가 없을 만큼 무색무취한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 투자와 관련해서 삼성을 대변한 듯한 자세, 지역 건설업체의 새만금사업 참여 확대에 대한 외면 등의 문제가 불신의 계기가 됐다는 게 지역 관가 주변의 해석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 청장은 전형적인 중앙공무원으로서 한계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총리실에서 잔뼈가 굵은 까닭에 ‘기획’ 쪽에 분명 강점이 있어 보인다. 새만금추진기획단장 재직 때는 이런 강점이 빛을 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만금 개발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새만금개발청장의 역할이 기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인사는 “단적으로 청장 부임 후 몇 개 기업이나 유치했는지, 예산을 얼마나 따왔는지 돌아볼 일”이라고 일갈했다.
송 지사는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국무총리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장을 역임한 이병국 청장은 7년이나 새만금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전북에 이익이 되는 새만금사업에는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송 지사의 이 청장에 대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새만금개발청 이외에도 소극적인 행정을 펼친 중앙행정기관은 많았다. 그럼에도 송 지사가 유독 ‘새만금개발청 때리기’에만 집중하는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지부진한 새만금 사업 자체에 대한 전북 도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새만금 개발이 시작된 지 올해로 만 30년이 됐다지만 개발에 대한 피로감만 커지고 있다. 새만금 1단계 사업의 목표 사업비는 국비와 지방비를 합해 13조 2000억 원이다. 2016년 말까지 집행된 금액은 4조 1900억 원으로 36%밖에 투입하지 못했다. 다섯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대통령들의 약속은 눈사람처럼 커졌지만 실제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하늘에서 바라본 새만금 배수갑문. 사진제공=전북도
송 지사가 이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얘기다. “국가 프로젝트임에도 전북도의 사업으로 취급받는 새만금개발을 도와달라고 언제까지 정부에 애걸복걸해야 하냐. 정부가 새만금사업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새만금개발청도 힘있는 기관으로 만들어서 전북도민에게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는 새만금 사업과 새만금 개발청과 새만금사업 전반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국책사업인 새만금 개발이 컨트롤타워 실종으로 표류하면서 기업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도 송 지사로선 불만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공공기관 기능조정으로 새만금 산업단지 조성사업은 기존 3공구 개발까지만 농어촌공사가 맡고 나머지 공구는 민자를 유치해 진행을 촉진하기로 바뀌었다. 문제는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농어촌공사는 새만금 개발에 사실상 손을 놨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새만금개발청이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새만금 개발 컨트롤타워가 실종되다 보니 기업 투자 유치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새만금에 실제 투자하고 있는 기업은 5곳에 불과하다. 앞서 삼성그룹은 새만금 투자를 백지화했다.
송하진 지사의 강공 드라이브는 또한 올해 화두로 제시한 ‘전북 몫 찾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의 목표는 올해 대선에서 전북 몫을 챙기는 것이다. 송 지사는 10일 간부회의에서 “전북의 이익을 위해서는 겸손을 떨지 마라”고 주문했다. 송 지사의 강공 행보가 지역 개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지 주목된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