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부산 고객센터 내부 모습.
[일요신문] 노동행위를 기본적인 삶의 방법으로 택한 이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감정·육체·두뇌 등이 그것이다. 셋 모두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특히 감정노동의 경우 타인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애로사항이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업무수행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특정 감정을 표현하도록 요구되는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통칭해 ‘감정노동자’라고 칭한다. 콜센터 상담 직원, 백화점 상담 직원, 승무원, 금융인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사회 전반에 걸쳐 작용하는 이른바 ‘갑을관계’ 때문에 모든 업종에서 직장인 대부분이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감정노동자가 11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와 주목된다. 더군다나 최근 발생한 ‘여객기 안 승무원 폭행’, ‘백화점 갑질 고객’을 비롯해 ‘콜센터 폭언’ 등은 상당수의 감정노동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콜센터 상담직원의 경우 하루에 수십 통씩 악성 전화에 시달리다 우울증에 걸려 삶을 비관하거나 실제로 자살까지 시도하는 사건도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해 1월 현재 강원도 원주에 본부 고객센터를 둔 것을 비롯해 서울·경기·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지역본부별로 각각 지역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센터에는 12개 협력사가 참여하고 있고 1495명의 상담사가 전화 상담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부산지역본부 고객센터는 2개 협력사 220명이 1인당 하루 평균 110건의 건강보험 관련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이들은 보험료 납부고지서가 발송되는 시점인 25일부터 납부마감일인 다음달 10일까지는 상담 집중기로 하루 평균 130 건 이상의 전화 상담을 소화해야 한다.
상담사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평균 근무 37개월, 평균 연령 35세로 여성이 92%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미혼이 63%에 달한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전체 상담 전화 1800만 건 중 중 부산은 257만 건의 전화를 상담해 전체 전화 중 약 14%를 맡았다.
부산지역본부 고객센터 김인혜 매니저는 “고지서가 가정에 도달되는 전화 집중기에는 쉴 틈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진이 빠질 정도로 힘이 든다. 친절하게 응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가끔 걸려오는 악성 민원 상담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원들이 상담해야 하는 업무 분야는 무려 1030종에 달한다. 그만큼 건보공단 업무분량이 많고, 수시로 변경되는 규정은 교육 등을 통해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므로 고충 또한 매우 크다.
상담 전화 내용을 분류해 보면 보험료 납부확인서 등 각종 증명서 발급 전화가 약 38%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으며 자격문의나 보험료 같은 징수 문의가 각각 20% 정도를 차지한다.
부산지역본부 이영준 고객상담부장은 “최근 들어 은행권 대출, 아파트 분양 등에 제출하기 위한 각종 증명서 발급 관련 전화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업무 외적인 부분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공단은 IT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 홈페이지 발급을 유도하거나 직접 지사에 방문해 발급할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량도 문제이지만 역시 심각한 건 폭언이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최순실국정농단사태’까지 언급하면서 상담사들을 향해 “최순실에게 돈을 갖다 바칠 수 없으니 내가 낸 돈 다 내놔라”, “너희가 최순실하고 다를 게 뭐냐”라는 식의 비방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객센터 직원 A 씨는 “악성 민원의 강도가 강해지면 우리도 감정 조절이 어려워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 고객들의 힘든 부분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우리들을 가족 또는 친구로 생각해주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공단은 이런 상담사들을 위해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화 상담 품질을 향상을 위해서도 CS 리더를 양성하는 등 교육도 다양화하고 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업무시간 선택제 등도 마련해 상담사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센터 내에는 휴게실과 온돌방도 설치해 상담과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영준 고객상담부장은 “2017년 새해에는 상담을 원하는 국민이나 상담사 모두가 매우 만족하는 해가 될 수 있도록 고객센터를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며 “상담사들이 좀 더 친절하게 국민인 고객을 상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등 상담품격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도 상담사들의 애환을 잘 이해하고 협력해 주길 바란다. 공단이 추구하는 ‘국민행복’의 비전을 달성해 나가는 데 땀방울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