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용인시 수지구의 한 호프집에서 폭행사건에 휘말린 배우 이태곤(40). KBS 뉴스광장 화면 캡처
이미지가 중요한 직업군인 연예인의 경우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폭행 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할 사안이다. 특히 술을 마시던 중 시비가 걸려 폭행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폭행 사건이 그날 누구와 술자리를 가졌는지 등의 사적인 영역까지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폭행사건에 휘말혔지만 결국 무혐의로 사건이 마무리 될지라도 “술버릇이 나쁘다”거나 “깡패”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연예인들은 아예 다른 손님과 접촉이 거의 없는 업소에만 출입하는 경우가 흔하고 일반 술집에서 손님들과 시비가 벌어졌을 경우 일체 대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한 연예인은 방송에서 “나는 사람이 많은 유명 맛집이나 술집은 안 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라고 언급한 바 있고, 개그맨 김준호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국밥집에서 밥을 먹던 중 취객이 갑자기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먹고 있던 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는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때 김준호는 화내거나 대응하지 않고, KBS <개그콘서트>에서 유행하던 자신의 유행어를 이용해 “젖었잖아~”라고 상황을 넘겼다고 했다. 일반인과 시비가 붙을 경우 혐의가 있건 없건 연예인들에게 큰 손해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배우 이태곤(40)의 폭행 사건도 연예인의 이런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태곤은 지난 7일 새벽 1시경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한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일반인들에게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 이태곤과 현장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이날 이태곤은 호프집에서 처음 본 이 아무개 씨(33)와 신 아무개 씨(33)로부터 악수 요청을 받았다. 이태곤이 거절하자 기분이 상한 이들은 그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 이내 주먹을 휘둘러 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이 현재까지 밝혀진 사건의 전말이다.
수사를 맡고 있는 용인서부경찰서는 이태곤을 포함해 사건 관계자 3명과 목격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사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태곤과 목격자가 “일방 폭행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의자인 이 씨와 신 씨는 변호사를 고용해 “쌍방폭행이었다. 우리도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이태곤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는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과정에서 대응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방어만을 했을 뿐인데 졸지에 쌍방 폭행 피의자로 몰리게 된 것이다. 더욱이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CCTV가 없어 이태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피의자들이 계속해서 쌍방폭행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태곤이 이번 사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대 1의 불리한 상황이었고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기 때문에 이태곤이 일방적으로 폭행당하지 않고 맞섰더라도 정당방위로서의 요건이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법조계에선 현행법상 폭행 사건에서의 증거 없는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범위가 매우 좁다고 설명한다. 형법에 따르면 폭행을 당하는 사람이 소극적인 방어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공격 행위에까지 이를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심하게 폭행을 당하던 중 몸을 피하기 위해 웅크리다가 상대방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폭행하려는 상대방을 공격할 경우는 쌍방폭행으로 판단하지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사사건 전문 로펌의 한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 정당방위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나 증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법원에서 수사기관의 의견과 같은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실제로 재판에서는 ‘피할 수 있었는데도 피하지 않고 상대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했다’거나 ‘상대방이 가한 공격에 비등하거나 그에 비해 더 중대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정당방위가 아니라 쌍방 폭행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실제로 자신을 심하게 폭행하던 남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의 다리를 입으로 물고 넘어뜨려 상해를 입힌 여성이 쌍방 폭행으로 인정됐던 사례가 있다. 사건 기록에 따르면 “사건이 대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행인들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도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인 방어를 넘어 적극적인 공격 행위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아니라 쌍방폭행이 된 것이다.
특히 ‘폭행’이 아니라 ‘싸움’의 영역으로 사건을 해석할 경우 정당방위 인정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해진다. 싸움은 사건 관계자 쌍방이 상대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 의사를 가진 상태로 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먼저 폭행을 시작했건 아니건 상대방에게 물리적 행위를 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는 방어인 동시에 공격의 성격을 가지므로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연예매니지먼트의 한 관계자는 “폭행 사건은 합의를 보고 종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상대가 연예인일 경우에는 합의금을 더 높게 부르거나 상해에 대한 고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일이 종종 있다”라며 “상대방을 정말 한 대도 폭행하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방어 차원에서 대응한 것도 폭행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연예인은 폭행 사건에 휘말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위기다. 사실상 취객이 때리는 대로 그냥 맞을 수밖에 없는 서글픈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태곤 폭행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신 씨는 중소기업 오너 2세로 알려져 “또 다른 금수저 갑질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경찰은 조만간 이태곤과 피의자들의 대질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