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견 영화 제작자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그가 더욱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그만큼 이 영화의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홍 감독 영화의 작품성을 높게 평가한다는 그는 지난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물이 올랐다고 봤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한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감독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보 스틸 컷.
게다가 이번 영화에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급으로 출연한 부분에도 의미를 뒀다. 이번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은 세계적인 거장 폴 버호벤 감독으로 그는 지난해 영화 <엘르>를 선보이며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었다. 바로 그 작품의 여주인공도 이자벨 위페르였다. 이런 인연도 분명 호재라면 호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정재영, <아가씨>로 빼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김민희 등의 수상 가능성도 충분하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돼 수상의 영광을 누린다면 이는 분명 기쁜 일이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개봉한 홍 감독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공식 일정인 언론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를 생략했다. 뭔가로 구설수에 오른 주연급 배우가 행사에 불참하는 사례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영화는 감독 개인의 구설로 인해 아예 공식 행사 자체가 취소됐다. 여전히 홍 감독과 김민희는 불륜설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공식 행사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고 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이라는 쾌거를 품에 안게 될지라도 현지 공식행사만 참석하고 국내 공식행사에는 불참하거나 아예 공식행사 자체를 갖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한 영화 관계자는 홍 감독이 사실상 외국 감독과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일정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지만 국내 일정은 일절 없다. 국내에서 영화 촬영은 지속하고 있지만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홍보도 전혀 없다. 오직 개봉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한 영화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최근 홍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투자배급사 NEW에서 배급을 맡고 있다. 그런데 홍 감독의 행보에 맞춰 달라진 부분이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까지는 NEW가 배급을 맡았지만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엄밀히 말해 NEW가 아닌 콘텐츠판다가 배급사다. 새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역시 콘텐츠판다가 배급을 맡는데 이 회사가 NEW의 자회사임을 감안하면 큰 틀에선 여전히 NEW가 배급을 하는 것이긴 하다. 콘텐츠판다는 NEW에서 영화, 공연, 애니메이션 등의 2차 판권 유통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설립한 콘텐츠 유통 전문회사로 지금까지 외화 수입과 배급을 위주로 일을 해왔다. 한국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몇 편 있지만 제한적이고 아무래도 그쪽 일은 대부분 NEW에서 맡는다. 콘텐츠판다는 외화를 중심으로 극장 개봉보다는 2차 판권 유통 시장을 위주로 수익을 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배급사의 변화는 홍 감독의 영화를 한국 영화계가 ‘극장 개봉 위주의 한국 영화’가 아닌 ‘2차 판권 유통 위주의 한국 영화’로 분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개봉 과정을 보면 홍보마케팅 방식은 한국 영화가 아닌 외화다. 대부분의 외화는 언론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공개할 뿐 기자간담회 등은 없다. 한국 시장 마케팅을 위해 외국 배우와 감독 등이 내한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그런 홍보 행사가 잡힐 뿐이다. 그렇다면 요즘 한국 영화 시장이 홍 감독 영화를 ‘극장 개봉보다는 2차 판권 시장에서의 유통이 더 적절한 외화’로 취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보 스틸 컷.
홍 감독의 영화는 분명 한국 영화다. 홍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불륜설로 인해 국내 여론이 좋지 않아 배급과 홍보마케팅 과정이 다소 비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홍 감독의 영화를 외화로 볼 순 없다. 그렇지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공식 행사가 열리지 않고 그 자리에 홍 감독과 김민희가 불참한다면 일반 대중인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더욱 차갑게 변해갈 수도 있다. 자칫 한국 영화 관객들이 실제로 홍 감독의 영화를 외화로 여기게 될 수도 있는 것. 베를린 국제영화제 수상이라는 호재가 오히려 악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물론 정면돌파라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수상이라는 쾌거를 알리며 그 공식석상에서 불륜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들은 불륜설에 대해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행여 이들이 공식적으로 불륜 사실을 인정할 수도 있으며 그 이후 여론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불륜설을 공식 인정할 경우 여론은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다만 이들의 묵묵부답을 이미 일반 대중은 불륜설 공식 인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영화인들은 주목하고 있다. 묵묵부답으로 이미 공식 인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연출됐으며 그러는 사이 홍 감독의 영화가 마치 외화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뿐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