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전 총장은 귀국 기자회견을 통해 패권 청산을 통한 정치개혁을 부르짖었다. 여권 주류인 친박은 물론 현재 지지율 1위 문 전 대표를 따르는 친문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기존 정치권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하며 몸값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반 전 총장은 대표적인 ‘개헌파’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 영입에 공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유순택 여사가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 기존 정당 어디로도 안 간다!
반 전 총장은 13일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설 연휴 전까진 민생 일정에 주력할 예정이다. 반 전 총장은 고향인 충북 음성과 충주를 거쳐 진도 팽목항, 광주 5·18 민주묘지, 김해 봉하마을 등을 방문한다. 정계개편 핵으로 떠오른 반 전 총장이지만 당분간은 정치권 외부에서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아웃복싱’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반 전 총장은 범여권 후보로 분류돼왔다. 한땐 친박 후보로까지 분류되기도 했었다. 야권 일각에선 반 전 총장의 대선 승리는 박근혜 정권 재창출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반 전 총장은 여권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대신 반 전 총장은 귀국 전까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장고를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 전 총장의 한 핵심 측근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기존 정당 중에선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어차피 정계개편이 불가피한 상황 아니냐. 제3지대에서 펼쳐질 ‘빅텐트’에 합류, 경선에 참여하는 시나리오를 짜 놓고 있다. 일단은 국민들과 만나 정치인 반기문으로서의 소신과 철학을 설명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여러 계파가 참여하는 제3지대 신당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도 “반 전 총장은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세력과 손을 잡을 것이다. 본인의 희망사항은 반문 진영 전체가 결집하는 중심에 본인이 서고 싶어 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반기문 대 문재인 구도로 가는 것이다. 제3지대에서 중도 보수에 먼저 깃발을 꼽고, 중도 진보 진영을 끌어들이는 2단계 단계를 거칠 확률이 높다”고 점쳤다.
# 김종인 삼고초려 중, 개헌 히든카드 만지작
반 전 총장이 귀국하는 인천공항엔 수많은 인파가 몰려 대권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세는 대선을 치르기엔 턱없이 역부족이다. 전국 단위 조직력에 있어선 대권에 재수하는 문 전 대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반 전 총장이 제3지대 신당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본인의 세력을 구축했느냐 여부는 향후 대권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다.
최근 반 전 총장 측 캠프엔 이력서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유력 주자 캠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반 전 총장은 이들 외에 거물급 인사 영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는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다. 김 전 대표를 ‘킹메이커’로 활용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 몇몇 측근들은 “김 전 대표를 모셔오기 위해선 대선 승리 시 인사 제청권 같은 실권까지 제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김 전 대표 역시 “반기문이 보자고 하는데 한 번 볼 수 있다”며 여지를 남긴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반기문-김종인 조합’의 파괴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임기 단축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히든카드로 내세울 가능성에 주목한다. 김 전 대표는 대표적인 개헌론자이고 반 전 총장 역시 긍정적인 입장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반 전 총장이 김 전 대표와 함께 정치개혁 명분으로 임기 단축을 꺼내들면 여기에 부정적인 문 전 대표가 수세에 몰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2017년판 DJP연합 모락모락
반 전 총장 행보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반기문 빅텐트’에 현역 의원이 얼마나 합류할지 여부다. 정치 전문가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입을 모은다. 친문 의원을 제외한 의원들 대부분이 반 전 총장 측 합류를 저울질할 전망이다. 반 전 총장이 어떠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느냐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도 “본인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일단 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민주당 비문 세력까지 동요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반 전 총장의 또 다른 측근은 “지금 충청권뿐 아니라 수도권과 영남지역 의원들이 합류 의사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외에 다른 후보를 찾던 의원들이 반 전 총장에게로 쏠리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정식 캠프가 꾸려지고 정계개편이 본격화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정치권에선 호남 지역 의원들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과 반 전 총장이 손을 잡을 경우 대권 레이스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에서다. 이른바 ‘2017년판 DJP 연합’이다. 1997년 호남의 DJ와 충청의 JP는 내각제 개헌을 연결고리로 연대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바 있다. 충청 출신의 반 전 총장이 호남 의원들 구애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헌이 이슈로 떠올라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 혹독해진 검증, 조기 대선이 약?
반 전 총장에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과연 반 전 총장이 정글이나 다름없는 현실 정치의 혹독한 검증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친문 진영은 반 전 총장 귀국을 앞두고 다양한 의혹들을 추적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반 전 총장 귀국 다음 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의 주요 자질로 도덕성을 꼽고 있는데, 반 전 총장은 귀국 직전 형과 조카가 뇌물죄로 기소돼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내가 알고 있는 의혹도 몇 가지 있다”며 검증을 예고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여러 의혹들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대선이 조기에 치러지는 만큼 반 전 총장에 대한 검증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란 얘기다.
앞서 언급한 반 전 총장의 한 핵심 측근은 “반 전 총장을 고건 전 총리와 빗대곤 한다. 고 전 총리는 일 년 넘게 공격에 시달리다 중도하차했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길어야 반 년만 버티면 된다. 개헌, 탄핵 등 이슈들도 많다. 시간도 없을 뿐 아니라 네거티브 공격이 효과를 덜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반기문도 비선 논란? 중요한 결정 ‘조언자’ 따로 있다 ‘반기문 캠프’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공식 실무지원팀은 반 전 총장 사무실이 있는 마포에 꾸려졌다. 반 전 총장 최측근 김숙 전 유엔대사가 이곳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사는 반 전 총장 일정과 메시지 등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반 전 총장 보좌관을 지낸 김봉현 전 호주대사, 곽승준 고려대 교수, 새누리당 대변인을 지낸 이상일 전 의원, 최형두 전 국회 대변인도 실무팀에 합류했다. 대변인은 이도운 전 서울신문 부국장이 맡았다. 기자 출신인 ‘이도운·이상일·최형두’는 반 전 총장 재임 기간에 모두 워싱턴특파원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여러 외곽 그룹이 반 전 총장을 지원사격하고 있다. 여기엔 김숙 전 대사와 외무고시 동기인 오준 전 유엔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외교관 인맥과 충청권 인사 등이 포진해 있다. 원로 멘토 그룹에는 한승수·노신영 전 총리와 신경식 헌정회장 등이 반 전 총장을 돕고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반 전 총장 내부에서 잡음이 새어나온다. 반 전 총장 주변 외교관 출신들에 대한 비토기류가 핵심이다. 외교 라인 인사들로는 현실 정치판에서 버티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뒤를 잇는다. 반 전 총장 주변 외교관들에 대한 ‘2선 후퇴’ 요구도 적지 않다. 또 반 전 총장이 특정인 몇몇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의 ‘3철’, 안철수 전 대표의 ‘박경철’ 등 과거 대선주자들이 지적받았던 비선 논란에 휩싸일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반 전 총장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치권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반 전 총장이 중요한 의사를 결정할 때 조언을 구하는 핵심 참모가 따로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직 전면에 나서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들었다. 그런데 이제 공식 캠프가 꾸려졌으니 이런 부분은 지양돼야 할 것이다. 인재풀을 넓혀야 한다. 반 전 총장 적은 내부에 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