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 및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끝까지 당에 남아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고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친박계가 최근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혈투는 서 의원이, 당 밖 정지작업은 최경환 윤상현 의원이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고 보니 최근 최·윤 의원을 여의도 정가에서 봤다는 이가 없다. 친박계 사정에 능통한 인사의 말은 이랬다. 그는 서 의원의 지근거리에 있다.
“친박의 고민은 당이 폭파되고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2007년부터 10년 간 이어져 온, 현재 전 계파를 통틀어 가장 연속적으로 온전히 장수한 것이 바로 친박이다. 전국의 이 친박 조직…. 산악회, 청년회, 동호회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이 조직이 붕괴되는 것이 겁나는 것이다. 그간 당내의 모든 선거에서 친박이 이변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조직이었는데 만약 누구 누구가 나가면 되겠는가. 그러면 다 죽는다. 후일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이다.”
친박계는 전국의 여론이 등을 돌려도 당내 경선은 자신 있어 한다. 이는 지난해 총선 참패 직후 원조 쇄신파인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추인을 위한 전국위와 상임전국위를 무산시켰을 때, 이정현 당 대표를 당선시키고 조원진 이장우 최연혜 유창수 최고위원 등 친박계로 지도부를 재편했을 때, 그리고 최근 인명진 비대위 체제를 비토하고자 상임전국위 정족수를 미달시키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했을 때 증명됐다. 당 지도부가 전날까지, 아니 당일 오전까지 참석을 확인한 전국위원들이 정작 행사 시각에 사라지거나 연락이 닿지 않거나 사고가 나는 등 갖가지 이유로 참석불가 통보를 했을 때 드러났다.
친박계는 생각보다 끈끈하게 단결했다. 그런 까닭에 당원·책임당원·대의원이 7, 일반여론조사가 3으로 진행되는 전당대회가 펼쳐진다면 다시 해볼 만한 승부가 된다는 계산이다. 여론조사에서 뒤지더라도 당원 동원력만큼은 친박계가 경험도 자금도 인력도 자신 있어 한다.
이런 친박계의 계산은 서 의원 입을 통해 직접 거론되기도 했다. 이는 아주 노골적인 정면돌파였다. 그는 지난 1월 4일 기자회견에서 인 비대위원장은 당을 떠나달라고 촉구하면서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를 새롭게 선출하자”고 주장했다. 또 “임시방편의 거짓 리더십을 걷어내고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통성 있는 진짜 리더십을 세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의 주인들인 당원들에게 직접 당의 지도부를 뽑게 해달라는 통첩이었다. 서 의원은 앞으로도 조기 전대론을 설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 지도부 재장악을 위한 조기 전대 사전 정지작업은 착착 진행 중이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은 전국을 돌며 조직화 운동에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윤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인천에서는 아예 윤 의원이 차기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소문이 무성할 정도다.
윤 의원은 인천에 본부를 둔 그의 팬클럽성 조직인 무궁화리더스포럼을 갖고 있다. 대구에도 지부를 갖고 있고 최근에는 경남지부까지 발족했다. 이 무궁화리더스포럼은 이달 말까지 전국 17개 시도에서 모두 지부를 발족한다는 계획이 있을 정도로 성장 중이라고 한다. 최근 사임한 정명환 상임대표 후임에 윤 의원이 이 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낸 인사를 찾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윤 의원은 또 충청권의 대표적인 조직인 충청포럼의 대표이기도 하다.
윤 의원의 백업 멤버는 최경환 의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최근 “모두가 대통령 곁을 다 떠난다 하더라도 혼자만이라도 당에 남아 대통령을 지키고 인간적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신념”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계파해체를 선언하고 지역에 내려와 일체 중앙정치에 관여하지 않음으로 2선 후퇴 약속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북 경산에서 칩거하고 있다지만 조용히 움직이며 조직 정비에 나서고 있다는 일부의 얘기가 들린다.
무엇보다 사고 당협 재정비를 위한 당의 조직강화특위가 새로 구성되면서 친박계의 조기 전대 작전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집단 탈당으로 생긴 당협위원장을 임명하기 위한 조직으로 인 비대위원장이 임명했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친박 일색이다. 위원장인 박맹우 사무총장에다 이성헌 조직부총장, 김명연 박찬우 정종섭 전희경 의원 등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정치권 밖에 있었던 인 비대위원장으로선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면면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 중 정 의원은 이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진박이고, 박 총장은 박 대통령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이 부총장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친박계다. 이들이 어떤 인물을 사고 당협위원장으로 채울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 비대위원장이 11일 일산 킨텍스에서 대토론회를 열었을 당시 불참한 서청원 최경환 조원진 강석진 경대수 김광림 김상훈 김성태 김진태 윤상현 이장우 이주영 이채익 이철우 이명수 이우현 정용기 김성원 함진규 이현재 의원 등은 여전히 친박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친박계가 인 비대위원장의 인적 청산 드라이브에 강경하게 맞선다면 쇄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인 위원장이 물러나는 플랜이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인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 재건의 화룡점정이 될 박 대통령의 출당 조치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임에 따라 인적 청산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커졌다. 계파색이 옅은 한 3선 의원은 “서청원 최경환 등이 나가지 않더라도 당 개혁의 종착지는 박 대통령과의 결별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 부분에서 인 위원장이 발을 빼는 모습”이라며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박 대통령 청산까지 개혁이 이르지 못할 땐 “바른정당으로 옮겨가는 것도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면서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다”고 했다.
반대로, 인 비대위원장이 인적 청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땐 바른정당과의 막판 합당 가능성이 점쳐진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바른정당의 창당도 친박계 청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른정당 한 관계자는 “진보 진영이 공동 경선으로 한 사람을 뽑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보수 진영이 분열돼 있다면 뻔한 승부가 아니겠느냐”며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의 인적 쇄신을 그렇게 바라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고 했다.
한편, 여의도 정가에서는 최근 다소 요상한 이야기가 회자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인 비대위원장과 서 의원이 정치권 모 인사 A 씨와 강원도에서 골프 회동을 가졌다는 얘기다. 이를 당시 새누리당 모 중진 의원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직후 인 비대위원장은 비박계가 비대위원장으로 추천했고, 친박계가 극렬히 반대했다. 그러다 서 의원이 나서서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앉힌 뒤 둘의 피 튀기는 싸움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둘의 싸움으로 새누리당은 여전히 여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