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모습을 드러낸 박근혜 대통령. YTN뉴스 캡처.
이에 네티즌 수사대는 “드라마를 보느라 세월호 속보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의 TV 편성표를 구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관저에는 대통령 침실과 주방, 식당, 비서진 공간, 간이 집무실, 간이 의무실이 있다고 알려졌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과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관저 ‘간이 집무실’에는 TV가 없지만, 침실과 식당 등에는 TV가 있었으며 ‘드라마 광’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은 그 시각에도 TV 드라마는 챙겨봤을 것으로 추측된다.
네티즌들 대부분 박 대통령이 그 시각 드라마를 봤을 것이란 주장에는 뜻을 같이했으나, 어떤 드라마를 어떻게 봤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쪽은 “어차피 공중파는 전부 뉴스 속보를 하고 있었을 테니, 점심시간까지 세월호 상황을 몰랐다면 케이블 쪽”이라며 ‘케이블 드라마설’을 제기했고, 다른 이들은 “TV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뉴스 속보를 안 볼 수 없다. VOD로 드라마를 정주행했을 것”이라며 ‘VOD 드라마 정주행설’을 내세웠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그날 그녀가 시청했을 법한 드라마를 알아봤다.
# 케이블 드라마설
2016년 4월 16일을 전후로 방영했던 케이블 채널 드라마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종합편성채널 JTBC의 ‘밀회’다. 김희애, 유아인이 주연을 맡은 ‘밀회’는 비리로 점철된 명문사학 음대 안에서 벌어지는 유부녀와 총각의 파격적 로맨스를 그려냈다.
‘품격의 압박’을 받았던 마흔 살 유부녀 오혜원(김희애 분)과 가진 것 없는 피아노 천재 스무 살 청년 이선재(유아인 분)가 19세 나이 차를 뛰어넘으며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시청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특히 동창 서영우의 룸메이트 겸 시녀 역할로 유학길까지 동행하고, 그 회장 일가에 의존해 사회적 성공을 거뒀으나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오혜원의 캐릭터는 ‘누군가’를 떠올리게끔 한다. 그 누군가 또한 오혜원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상당했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그가 ‘밀회’에 빠질만한 요소는 또 있다. 차움병원 간판 등으로 최순실 게이트를 미리 예언한 ‘성지 드라마’라는 평을 받는 만큼, 그에게 익숙한 인물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밀회에는 투자전문가로 위장한 무속인 ‘백 선생’과 엄마의 위세를 등에 입고 부정 입학을 한 그의 딸 ‘정유라’가 등장한다. 두 모녀는 비위 사실이 알려지자 독일로 도피한다. 출석 호명 중에는 ‘125번 정유라’와 ‘126번 최태민’이 차례로 호명된다.
또한, 극 중 오혜원을 부리는 예술재단의 딸 서영우는 오혜원에게 호스트바 출신 남성을 소개하며 “이 친구랑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 감각이 보통이 아니다. 쇼핑하면서 보니 셀렉을 잘한다”고 말한다. 이후 서영우는 오혜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성을 사업파트너로 둔갑시켜 상위 1%를 상대로 하는 수입의류 매장을 차려준다.
드라마 ‘밀회’는 최순실 게이트를 미리 예견한 ‘성지 드라마’라는 평을 받는다.
드라마 ‘밀회’는 그날 오전 케이블 채널(종편)에서 재방송했다는 점에서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시청했을 법한 드라마 1순위로 떠올랐으나, 한 온라인커뮤니티 게시글로 인해 이러한 추측은 뒤집혔다.
한 네티즌이 2014년 5월 6일 작성한 게시글에는 “밀회 재방송을 보고 있다가 속보가 뜨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그 날의 상황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네티즌도 “오전 9시쯤 밀회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특보가 나오고 배가 서서히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 VOD 드라마설
VOD로 드라마를 다시 보느라 참사의 심각성을 늦게 파악했다는 추측은 어떨까. VOD의 경우 유료로 결제만 하면 놓친 장면을 돌려볼 수 있고, 원하는 시간에 정지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뉴스 속보 등은 전혀 뜨지 않아 온전히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고, 2011년 종영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다시 볼 수도 있다.
VOD로 다시 볼 수 있는 드라마는 무수히 많으나, 철저히 ‘드라마 광’의 시점에서 보자면 이미 종영된 드라마를 다시 볼 일은 드물다. 그 전날 놓친 드라마를 다시 보기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공식 일정이 없는 수요일, 미처 챙겨보지 못한 월화드라마를 다시 보기 했던 것은 아닐까.
2014년 4월 15일 방영된 월화 드라마는 SBS의 ‘신의 선물’과 MBC ‘기황후’다. 특히 29.2%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기황후’의 경우,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기황후가 악행을 저지른 역사적 기록을 배제하고 멋진 여성 지도자로 만들어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군다나 ‘기황후’는 박 대통령이 애청한 것으로 알려진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역을 맡은 하지원이 주연을 맡았다. 하지원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차마 완전히 ‘탈덕’하지 못하고 안티팬으로 돌아서 애증의 눈길로 그의 행보를 계속 쫓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