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KB스타즈는 부상으로 팀에서 제외됐던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시즌 중에 스물다섯 살의 팀 내 간판스타가 팀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구 팬들은 물론 여론도 프로 의식이 결여된 홍아란의 무책임한 태도에 질타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까지 나서 선수들의 책임 의식 결여에 뼈있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KB스타즈와 FA 계약을 맺고 의욕을 불살랐던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농구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배경을 살펴봤다.
KB스타즈 ‘간판스타’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요청한 것을 두고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부터 국가대표팀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며 ‘청주 아이유’로 인기몰이를 했던 홍아란은 2016~2017시즌에는 10경기에 출전하면서 8.7득점 3.5리바운드 2.5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하다 발목 부상을 당하며 3라운드서부터 재활과 휴식을 병행 중이었다.
그런데 홍아란은 이미 지난 12월 중순 이후부터 부모님이 있는 경남 사천으로 내려가 있었다. 구단에 남아 재활을 병행해야 하는 선수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KB스타즈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 지난해 여름 자유계약선수(FA) 협상을 할 때도 (홍)아란이가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었다”는 말로 홍아란이 오래 전부터 농구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FA 계약 후 연봉만 1억 2000만 원을 넘게 받는 홍아란이 구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맹(WKBL)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한 배경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전화 연결이 된 A 감독은 1년 전 얘기를 들려줬다.
“아란이가 KB스타즈와 FA 계약을 맺기 전 직접 만나 FA 협상을 벌인 적이 있었다. 99%의 선수들은 FA를 앞두고 자신의 몸값을 높이거나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려고 구단이나 감독과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는 데 반해 아란이의 태도는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다. 어려운 자리이다 보니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듯해서 더 이상 자세히 물어볼 수 없었지만 아란이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 KB와 재계약하는 걸로 FA를 마무리 짓는 걸 보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임의탈퇴를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게 돼 안타까웠다.”
B 팀의 고참급 선수 C는 홍아란의 임의탈퇴를 은퇴한 변연하와 연결 짓기도 했다.
“아란이가 변연하를 무척 잘 따랐다. 자신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하고 버팀목이 돼준 변연하의 은퇴가 홍아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란이가 직접 변연하에게 ‘부상도 아니고 더 뛸 수 있는데 꼭 은퇴를 해야겠느냐’며 만류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성격이 다소 내성적인 아란이로선 연하에게 의지하며 힘든 훈련도 잘 버텨냈는데 연하가 선수 생활을 그만두면서 심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KB스타즈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권을 획득한 이후 역대급 유망주로 손꼽히던 박지수를 지명했다. KB스타즈 안덕수 감독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을 만큼 박지수의 영입은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되기에 충분했다. 박지수를 이용한 높이에다 기존의 빠른 전술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의 유연성을 확보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KB스타즈는 현재 6승15패(승률 0.286)로 6위에 처져 있다. 5연패를 당하며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하고 학박지수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악재가 계속되었다.
앞의 C 선수는 홍아란의 임의탈퇴에 박지수의 존재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전했다.
“다른 팀 속사정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박지수가 입단하면서 홍아란과 미묘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고, 이로 인해 홍아란이 상처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덕수 감독님이 나서서 중재하려고 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홍아란을 잘 아는 농구인 중 한 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후배로 인해 홍아란이 팀을 나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합숙 생활하면서 선수들 사이에 이런저런 갈등은 있겠지만 선수 생활 여부를 가늠할 정도의 일들은 결코 아닐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홍아란의 임의탈퇴 선언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했다.
“여자 선수들은 시즌 내내 합숙 생활을 이어간다. 외출, 외박도 쉽게 허락되지 않은 생활을 반복하다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에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가 있다. 선수들마다 개성도 있고 요구사항도 다 다른데 지도자들이 여자 선수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배려해주기 어렵다. 남자보다 특히 여자선수들 중에서 임의탈퇴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부분이 이를 말해준다. 홍아란이 임의탈퇴를 요청하면서 ‘심신이 지쳤다’고 말한 데에는 많은 요인들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단순히 후배 때문에, 아니면 운동이 힘들어서, 부상 때문이 아닌, 오랫동안 쌓인 감정들이 이번에 폭발했다고 본다. 그리고 어떤 선수는 임의탈퇴를 요청해도 언론에서 관심을 갖지 않지만 홍아란은 홍아란이기 때문에 계속 이슈가 되고 논란거리로 부상하면서 이슈의 중심이 된다. 그 부분도 꽤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다.”
여자팀을 이끄는 D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자 선수들이라고 모두 강도 높은 훈련을 꺼리는 건 아니다. 아무리 힘든 훈련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걸 이겨내야지만 더 큰 걸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단, 그런 과정을 지도자가 잘 이해해주느냐, 이해 못하느냐에 따라 선수들의 동기 유발 여부가 좌우될 것이다. 모두 프로에서 성공하고 싶어 한다. 돈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내 경험으론 운동이 힘들다고 도망가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최근 임의탈퇴를 요청하는 선수들이 늘어난 데 대해 D 감독은 “표면적인 이유는 운동이 힘들어서이겠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공개 못할 부분이 많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팀 감독을 맡고 난 후 나한테 직접 찾아와서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이유는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지도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담을 할 때마다 감독이란 타이틀을 내려놓고 오빠처럼, 아빠처럼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다. 여자 선수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게 농구 한 경기 치르는 것보다 더 힘들더라.”
D 감독은 상대팀 선수지만 홍아란이 젊은 나이에 코트를 떠나려 하는 부분에 대해선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내가 아는 홍아란은 근성이 있는 선수이다. 여자 농구의 저변이 얕은 환경에서 홍아란 같은 선수가 그만둔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겠지만 코트를 떠나는 방법보다는 코트 안에서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지금은 다시 농구공을 잡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잠시만’ 쉬었다가 꼭 코트로 돌아오길 바란다. 이건 같은 농구인으로서 하는 부탁이다.”
한편 홍아란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남겼지만 홍아란은 “지금은 어떤 얘기를 해도 논란만 가중될 것 같다. 당분간 인터뷰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말로 간곡한 거절 의사를 나타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