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이재용 부회장, 신동빈 회장(왼쪽부터) 등이 지난 12월 6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삼성 등 대기업들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법 상 대기업 의혹을 수사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와 관련된 의혹 출연기업은 수사를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면 된다.”
이규철 특검보가 정례 브리핑에서 밝힌 내용인데, 이 특검보는 특히 “SK의 뇌물 혐의 관련, 특검 출범으로 기소하지 못했다”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최순실 공판 당시 주장에 대해 “수사 대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못 박았다. 특검팀은 대기업 출연금이 강요에 의한 것인지 살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특검팀이 못 박았듯, 가장 먼저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곳은 SK그룹이다. 특검팀은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5년 정부의 8·15 특별사면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거래를 한 정황을 포착했다. 김영태 당시 SK 부사장은 최 회장의 특사를 며칠 앞두고 교도소에서 만나 ‘은어’를 섞어가며 대화했는데, 특검팀은 당시 대화가 녹음된 파일을 입수했다.
이 녹취록에서 김 부회장은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했는데, 특검팀은 ‘왕 회장’은 박 대통령, ‘귀국’은 사면, ‘숙제’는 그 대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숙제를 받았다던 최 회장은 대기업 총수 중 유일하게 8·15 특사 명단에 포함돼 출소했고 SK는 미르재단에 총 68억 원을, K스포츠재단에 43억 원을 냈다. 특검팀은 또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으로부터 ‘최 회장 사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료를 SK 측에서 받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은 정황도 포착하고 최 회장 측과 박 대통령이 ‘사면’을 대가로 지원을 미리 약속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이와 같은 특검팀의 판단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 회장에게 뇌물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의 400억 원대 뇌물 혐의 적용 가능성이 높은 박 대통령에게는 적용될 뇌물죄의 액수는 더욱 커지게 된다.
롯데그룹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르·K스포츠 재단이 설립될 당시 롯데는 면세점 인허가라는 그룹 내 ‘현안’이 걸려 있었는데 롯데는 박 대통령과의 독대 이후 두 재단에 45억 원을 출연했다. SK의 최태원 회장 특사처럼, 면세점 인․허가를 약속받고 두 재단에 돈을 출연했다면 이 역시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두 기업 외에는 CJ와 KT가 수사 대상으로 후보로 거론된다. CJ는 이재현 회장의 사면을 위해 최순실 씨 측근 차은택 씨가 주도한 K컬처밸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는 의혹을, KT는 지난해 2월 황창규 회장이 박 대통령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을 막아달라”는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 내에서는 SK와 롯데 정도만 한 뒤,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삼성 등 대기업들은 총수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뇌물죄 수사에 철저히 대비를 해왔을 것이고, 증거 자료와 진술의 빈틈을 찾아, 총수들을 소환하려면 적어도 한 기업마다 2주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장하지 않으면 일단 2월 말 끝나는 특검팀 입장에서는 대기업 한두 곳만 더 들여다 본 뒤 대기업 총수와 박 대통령 간 뇌물죄 혐의 적용 수사를 일단락 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 역시 “헌법재판소가 당초 3월 초에는 결론을 내는 방향으로 증인 신문 등 심리를 진행 해오고 있다지만, 헌재가 조금이라도 결정이 늦어지면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소환 조사를 추진할 것”이라며 “현재까지 수사로 확보된 삼성의 정유라 지원금 관련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배경 등에 대해 박 대통령을 소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박 대통령이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된 뒤에는 체포가 가능하지만, 특검팀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이 대우를 받고 있을 때 소환해 특검팀 존재의 목적을 대내외에 드러내려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윤하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