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이란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한번 발생할 경우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 요인을 의미한다. 지난해에는 각종 경제분석기관에서 블랙 스완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목했던 브랙 스완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이었다.
경제분석기관은 물론 시장에서도 트럼프 당선이나 브렉시트 결정은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봤다. 두 건 모두 투표 전날까지만 해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과 브렉시트 국민 투표 부결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가 계속됐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고서야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결정이라는 예상 밖에 결과가 나왔다. 이 두 건 모두 블랙 스완이라는 사전 경고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국제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면서 세계 각국, 특히 신흥국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
한국 정치권이나 경제계도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결정 가능성을 낮게 봤다가 후폭풍에 시달렸다. 브렉시트 결정 후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세계 무역이 급감하는 바람에 한국 무역액도 8.9% 줄어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또 우리 정부나 경제계에 트럼프 측과 인맥이 닿는 인사가 없어 외교전에서 일본에 밀렸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회색 코뿔소’의 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회색 코뿔소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고음을 내면서 빠르게 다가오는 위험을 의미한다. 실제로 올해 우리 경제에 몰아닥칠 위험들은 이미 다 알려진 위험들이다.
땅을 울리면서 우리 경제를 향해 달려올 회색 코뿔소 중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 취임(20일) 이후 본격화될 보호주의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에 대해 45%의 보복관세를 물리겠다고 하는 등 강력한 무역 전쟁을 예고한 상태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게 되면 중국에 중간재를 많이 수출하는 한국 경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2017년 정초 경제계 화두는 ‘그레이 리노(Gray Rhino·회색 코뿔소)’다. 회색 코뿔소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고음을 내면서 빠르게 다가오는 위험을 의미한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가 포드와 크라이슬러,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 가했던 압력(미국 내 공장 신설 요구)가 현대·기아차에도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보호주의는 다른 나라를 자극해 세계에 보호주의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경우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으로서는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 확실하다. 한국은행이 13일 내놓은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무역규제 건수가 10% 늘어나면 우리 수출은 1% 정도 감소한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도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회색 코뿔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은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올해 기준금리가 세 차례 인상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 12월 회의록에서 연준 위원들은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국내 금리에 상승압력으로 작용해 13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위험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중국 경제 둔화 및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대중 수출 하락 역시 또 하나의 회색 코뿔소다. 중국의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자금 유출 상황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 중국이 사드를 빌미로 한국산 화장품 수입이나 한국 드라마 방영에 제동을 걸고 있다.
대중국 수출 비중이 30%에 가까운 한국에게 중국 경제 둔화나 사드보복은 치명적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 둔화도 위험 요소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낮췄다. 이대로 가면 2%대 저성장을 4년 연속 이어가는 셈이 된다. 저성장이 지속되면 청년 실업난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기 힘들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를 헤쳐 나가는데 앞장서야 할 기획재정부와 한은의 능력이 의심된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무색무취의 유일호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식물 부처’가 된 상태다. 한은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더 이상 기준금리를 낮출 여력이 없다.
경제계 관계자는 “한국 경제가 올해 맞이할 위험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위험, 즉 회색 코뿔소다. 그러나 이러한 회색 코뿔소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지휘부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설령 회색 코뿔소가 느리게 다가온다고 해도 처리할 수 있을지도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