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발생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강경 여성 우월주의 커뮤니티 ‘워마드(WOMAD)’에서 많은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개념 글’로 추대된 글이다. 이 글쓴이는 “세월호 사건이 대통령 잘못도 아니고 탄핵감도 아닌데 언론이 털어도 털어도 안 나오니까 ‘미용시술을 했다’느니 옷이나 머리 스타일을 가지고 사람을 마녀사냥 하고 있다”라며 “이게 다 근혜님이 여자고 만만해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은 박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고 언론과 국민의 공공의 적이 된 것이 ‘여혐’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경 여성우월주의 커뮤니티 워마드 게시글 캡처.
커뮤니티 내 가장 활성화된 게시판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고 직접 탄핵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시위 참여 글을 올린 글쓴이는 “대모님 변호인인 서석구 변호사를 만나서 젊은 여성들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댓글을 통해 많은 회원들이 “고생했다, 다음 시위에는 나도 나가겠다” “근혜님에게 우리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라며 옹호했다.
‘강경 여성 우월주의’와 ‘공개적인 남혐(남성 혐오)’을 표방했던 워마드가 여성 우월주의 운동을 넘어서 박근혜 대통령 옹호라는 정치적 행보에 이른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동기는 사소하면서도 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했다. 당시 워마드 소속 회원들이 거짓으로 “한남을 죽였다”고 쓴 글이 고발돼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워마드 운영자들이 경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기 때문.
워마드에 따르면 당시 경찰들은 사건의 제3자인 워마드 운영자를 불러 조사하려 했으나 응하지 않자 그의 부모님에게 연락해 “자녀분이 ‘살인 카페’를 개설한 것을 알고 있느냐”라며 다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워마드에서는 “허위로 작성한 범죄 글은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도 하루에 수십 건씩 올라오는데 신고했을 때 경찰이 조사에 착수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심지어 실제 범죄가 발생해도 일베 운영자가 참고인으로 경찰에 불려간 적이 없었다. 이번 경찰의 과잉 수사는 대상자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득세했다.
여기에 “같은 글을 올려도 일베가 수사 선상에서 빠지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일한 극우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되자 워마드 회원들이 너도나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며 경찰의 편파 수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정도로 박 대통령을 추앙하는 커뮤니티를 정부에 반해 수사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9월 경찰의 편파수사를 조롱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시물을 올렸던 워마드. 워마드 게시판 캡처.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여성부 폐지 반대 △호주제 폐지 찬성 △성범죄자 사형제 검토 등 여성의 인권을 위한 행보를 보여 왔다는 이유가 더해지면서 ‘진심으로’ 박 대통령을 지지하게 됐다는 회원들이 점차 늘어났다.
이어 “당장 차기 대권주자들은 남자밖에 없는데 임기 1년 남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불명예스럽게 퇴진시켜야겠나”는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진보 진영에서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여성 정치인에 대해서는 “남자의 입장에 서서 전체 여성들의 앞길을 막는 명예 남성”이라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철저하게 박근혜 대통령만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워마드 회원이었다가 박근혜 대통령 옹호 시기를 기점으로 탈퇴했다고 밝힌 한 20대 여성은 “장난처럼 했던 박 대통령 찬양이 이제는 ‘국정원에게 먹힌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될 정도로 워마드의 노선 전환은 충격적”이라며 “아직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지만 이 때문에 많은 회원들이 탈퇴하거나 등을 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워마드의 행보를 보고 ‘한국 페미니즘은 망했다’거나 ‘이제 남혐이나 여혐 논란은 없어질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성급하다. 수많은 페미니즘 커뮤니티 가운데 단 한 곳이 극단적으로 치닫는다고 해서 전체 페미니즘이 똑같이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워마드의 박근혜 대통령 공개 옹호 이후 많은 여성 커뮤니티들이 정치적 측면에서는 워마드와 반대 입장에 서서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