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일요신문 DB.
# 중범죄자 된 전직 부장판사
“최유정 피고인은 정운호와 송창수를 변호하면서 재판부 로비 명목으로 100억 원을 수수했다.”(검찰) “부장판사까지 지낸 최 변호사가 로비하기 위해 돈을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변호인)
지난해 8월 2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열린 최유정 변호사의 첫 공판 장면이다. 첫 번째 재판부터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검찰과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면서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전직 부장판사 출신인 최 변호사는 앞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이숨투자자문 실질적 대표인 송창수 씨로부터 재판부 로비 명목 등으로 부당 수임료 100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최 변호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법정에 들어섰다. 구속 이후 스트레스와 불안감 등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피고인석으로 이동하는 발걸음은 더디지 않았다. 다만 주소 등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재판부에 질문에는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정운호 전 대표와 최 변호사가 수임료 환불을 두고 벌이던 실랑이에서 촉발됐다. 이후 지난 2014년 연매출 100억 원이 넘는 ‘로펌’은 25곳에 불과했던 것에 비춰 변호사 ‘한 명’이 받은 수임료가 이와 비슷한 규모였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전관예우’를 빌미로 전관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한 뒤 거액을 챙기는 전문 브로커의 실체, 이 로비에 전‧현직 판‧검사가 줄줄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법조계 전체를 뒤흔든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됐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서초동 법원 앞에 유령처럼 떠돌던 전관예우와 브로커들의 실체가 공개되는 등 법조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동안 이 정도로 법조계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준 사건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앞서의 첫 공판 이후부터 줄곧 모든 혐의를 부인해 왔지만, 재판부는 지난 1월 5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6년과 추징금 45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변호사의 범행으로 법치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고 형사절차의 공정성과 사법제도를 향한 국민의 신뢰나 기대도 무너져버렸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재판부의 선고가 내려진 직후 최 변호사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목례도 없이 법정을 떠나면서 또 다시 구설에 올랐다. 한편 법원은 법조 브로커 이동찬 씨에게 징역 8년과 추징금 26억 원을, ‘몰래 변론’ 및 부정청탁, 탈세 등의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에게는 징역 3년과 벌금 5억 원을 각각 선고했다.
# 현직 검사장의 몰락
법조계 초대형 게이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해 7월, 이번엔 현직 검사장이 구속기소됐다. 68년 검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검사장 해임 1호’라는 불명예 타이틀도 뒤따랐다. 일명 ‘넥슨 공짜 주식’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진경준 전 검사장이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지난해 7월 14일 ‘주식 대박’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진 전 검사장은 서울대 86학번 동기이자 30년 지기 친구인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회장으로부터 넥슨 공짜 주식 1만 주를 받고, 제네시스 차량과 여행경비 등 9억 5000여 만 원을 받은 혐의(특가법 뇌물수수)를 받았다. 진 전 검사장은 지난 2005년 공짜로 받은 넥슨 비상장주 4억 원어치를 넥슨 재팬 주식으로 바꾼 뒤, 2015년 검사장 승진 시기 매각해 126억 원의 ‘주식 대박’을 터뜨렸다.
진 전 검사장의 첫 공판은 지난해 9월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진 전 검사장은 하늘색 미결수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했다. 머리는 잘 정돈됐고 표정은 당찼다. 복장만 아니라면 피의자라 보기 어려웠다. 재판 중간 턱을 괴거나 머리를 손질했고, 팔을 책상에 걸치는 모습도 보였다. 반면 진 전 검사장 옆자리에 앉은 김 회장은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한 표정이었다. 법정에서 두 친구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들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진 전 검사장 측 변호인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김 대표로부터 받은 금품과 재산상 이익을 보면 직무와 관련이 없고, 도움을 제공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단짝이었다. 서로 나눈 호의 등이 편향적인 시각에서 매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앞서의 김 회장이 수사 과정에서 “일종의 ‘보험’ 차원에서 주식 매입 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토대로 대가성 있는 금전 거래”라고 맞섰다. 진 전 검사장에 대한 선고는 지난해 12월 13일 내려졌다. 재판부는 이날 진 전 검사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진 전 검사장은 피고인석에 서서 선고를 받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진 전 검사장 사건은 판결 이후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재판부는 핵심 혐의인 ‘넥슨 공짜 주식’ 관련 부분은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고, 부정한 청탁을 받고 처남에게 100억 원대 청소용역 일감을 주도록 한 혐의와 다른 사람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한 부분만 유죄로 판단해 검찰 구형 13년보다 대폭 낮은 형을 선고했다. 현재 진 전 검사장과 검찰 모두 항소한 상태다.
# 논란 촉발 가습기살균제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 너의 양심은 알겠지.” 지난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재판장이 선고 결과인 ‘주문’을 낭독하자 방청석에서 들려온 외침이다. 피고인석을 향한 이 외침은 방호원과 함께 법정 밖으로 나갔다. 이후 방청석은 한동안 한숨과 눈물이 뒤섞여 침통했다.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신현우 옥시 전 대표. 일요신문 DB
수천 명의 인명피해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이 사건도 선고 직후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사망자 1112명·피해자 5341명이 나왔지만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업체 대표는 무죄를 받았고, 이 업체의 제품을 모방한 국내 대형마트 관계자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날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는 징역 7년을, 제품 개발에 참여한 전 연구소장 김 아무개 씨 등 옥시 관계자 3명에게 각각 징역 5~7년을 선고했다. 반면 존 리 전 옥시 대표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면서 흡입 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고 허위 광고를 해 피해를 확산한 혐의도 포함됐다.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존 리 전 대표에 대한 무죄 선고다. 신현우 전 대표는 옥시가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던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대표를 지냈다. 존 리 전 대표는 신 전 대표의 후임으로 2005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5년간 옥시의 한국법인 대표를 지냈다. 존 리 전 대표가 근무했던 시기는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이 판매되던 시기와 겹친다. 피해자들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던 때와도 맞물려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화제의 사건 그후] 강남역 살인범 “후회 마음 없다”…린다 김 교도소서 호신술 실력 발휘 강력 범죄로 세간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들도 각각 선고가 내려졌다. 먼저 지난해 ‘여성 혐오’ 범죄 논란을 촉발한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지난 12일 2심 선고가 내려졌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는 이날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피의자 김 아무개 씨의 항소심 선고에서 1심의 징역 30년 형을 유지했다. 김 씨는 지난해 5월 17일 새벽 1시께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 있는 한 주점 건물의 공용화장실에서 처음 본 여성 A 씨(당시 23세)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김 씨는 지난해 12월 15일 열린 2심 첫 공판에 출석해 “제 범행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 여자에 대해 면목이 없고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반성이나 후회의 마음은 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며 실소를 지으면서 공분을 샀다. 김 씨는 발언을 하는 내내 안경과 턱, 손 등을 만지작거리고 마이크를 반복해서 잡기도 했다. 표정의 큰 변화는 없었다. 초등생 아들(당시 7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에 유기한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의 피의자인 부모들도 형이 확정됐다. 지난 16일 대법원 3부는 살인 및 사체훼손·유기·은닉 등 혐의로 기소된 최 아무개 씨(피해 아동 아버지)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 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피해 아동의 어머니 한 아무개 씨는 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지 않아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최 씨와 그의 부인 한 씨는 2012년 10월 말 경기 부천에 있는 자신의 집 욕실에서 당시 16㎏가량인 초등생 아들을 때려 기아와 탈진 등의 상태에서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부는 실신한 아들이 같은 해 11월 3일 숨지자 3차례에 걸쳐 흉기와 둔기 등을 구입, 시신을 훼손한 뒤 냉장고에 3년간 보관·은닉한 혐의도 받았다. 이들은 시신 훼손 과정에서 시신 썩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트에서 청국장을 구입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필로폰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린다 김은 최근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지난해 12월 7일 대전지법 홍성지원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 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 10일 필로폰을 휴대하고 커피에 타 마신 혐의로 충남경찰청 마약수사대에 체포돼 구속됐다. 앞서 김 씨는 지난 2015년 12월 도박자금으로 5000만 원을 빌려 쓰고도 갚지 않고 오히려 채권자를 폭행한 혐의를 받아 지난해 7월 불구속 입건돼 재판에 넘기지기도 했다. 폭행 혐의 기소 건은 김 씨가 별도 판결할 것을 요청해 법원이 받아들였고,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홍성교도소에 머무는 동안 다른 재소자와 다툼을 벌여 징벌 조치를 받고 대전교도소로 이감되기도 했다. 여성 재소자와 신발을 바꿔 신은 문제로 시비를 벌였는데, 김 씨는 여기서 로비스트 시절 익힌 호신술로 상대를 제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