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다듬는 듯’ 박근혜 대통령=연합뉴스
전여옥 “朴 올드패션 마니아” 네티즌 “창포물 비해 최신식” 반응도
박 대통령 샴푸 지금은 단종돼 수집전시품···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새삼 화제
[일요신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의 어록이 새삼 화제가 됐다. 전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자서전과 소셜방송을 통해 박 대통령과 그 측근을 비판했다. 그는 “햄버거를 포크와 나이프로 먹더라” “클럽 갈 때도 왕관을 쓰고 갔다” “우비 모자도 직접 쓰지 않았다”며 촌철살인의 어록을 남겼다. 또한 그는 박 대통령의 ‘올드 패션’을 언급하며 “보좌관이 박근혜 위원장이 쓸 샴푸를 사야 하는데 단종이 돼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다. 왜 최근 나온 제품들을 안 쓰고 옛 제품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의 발언에 ‘박 대통령의 단종된 샴푸’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됐고, 포털에 ‘박근혜 샴푸’를 검색하면 해당 샴푸가 연관검색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일요신문i>는 앞으로 국정농단 관계자들의 머스트해브아이템(Must Have iteM)을 직접 소개하려 한다. 그 첫번째 시간으로 박 대통령이 사랑했다는 바로 그 ‘OOO 삼푸’를 찾아나섰다.
전여옥 전 의원은 “왜 최근 나온 제품들을 안 쓰고 옛 제품을 쓰는지 모르겠다”며 박 대통령의 샴푸 취향에 의문을 품었으나, 박 대통령 외에도 유니나 샴푸로 70년대를 추억하는 이들은 꽤 많았다. 왼쪽 사진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연합뉴스
“럭키 유니나는 새로 나온 고급 샴푸와 린스입니다. 샴푸로 감고 린스로 헹구고 그래야 윤이 나죠. 유니나 - 샴푸, 유니나 - 린스”
박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애타게 찾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샴푸는 국내 최초 범용샴푸인 ‘유니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도 이름을 ‘기억만’ 할 정도로 오래된 제품이다. 1976년 출시됐으며 현 LG생활건강의 전신인 ‘럭키’ 사의 제품이다.
한국 샴푸 시장의 현황을 분석한 리포트에서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 화장품 회사가 샴푸 시장에 뛰어들어 시장 선점에 경쟁적으로 돌입하며 본격적인 샴푸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과거를 설명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범용샴푸인 ‘유니나 샴푸’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됐다. LG생활건강 관계자도 “아, 이름을 들어본 기억은 나네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1976년 출시됐으며, 정확한 단종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2010년 리패키지 제품이 출시됐으나, 2014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는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
한 블로거는 “당시만 하더라도 비누를 이용해 머리를 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참 TV에서 유니나 광고가 활개를 치던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샴푸를 사오시더니 머리를 감으시겠다고 하셨다. 샴푸를 구경하기 위해 모든 식구가 아버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샴푸 거품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며 당시를 추억했다.
다른 블로거 또한 “검정 비누로 머리를 감던 시절, 하루에도 수십 번 라디오를 통해 유니나 샴푸 광고를 접했다. 오렌지색 플라스틱병에 다이아몬드 무늬가 새겨진 유니나 샴푸. 그 유명한 샴푸를 쓰게 되던 날 향기는 잊을 수 없다. 숲속의 싱그러운 향기랄까 과일밭의 달콤한 향기랄까. 머리를 한 번 감게 되면 온 집안이 향기로웠고 머리를 쓸어 넘길 때마다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유니나 샴푸를 추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7080세대였다. 그들은 샴푸라는 신문물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즐거움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유니나 샴푸를 기억하시느냐” 묻거나 “유니나 샴푸와 허벌샴푸를 섞어 쓰면 허벌나게 윤이 난다”며 70년대 유머를 전하기도 했다.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유니나 샴푸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기사에 ‘<일요신문>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적어 넣을 때처럼 마음이 아려왔다. 단종된 샴푸를 구하려고 전국을 돌았다던 당시 보좌관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유니나 샴푸의 명성을 접하기는 쉬웠으나, 직접 제품을 대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수 검색 엔진을 통해 겨우 ‘홈*러*’에서 리패키지 제품을 만나볼 수 있었으나 이마저도 ‘현재 판매되지 않는 상품’이라는 문구로 끝이 났다. 지난 2010년 꽃문양이 그려진 붉은 플라스틱 통, 세련미와 복고풍을 융합해 돌아온 ‘드봉 유니나’ 샴푸 또한 2014년 판매를 종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추억의 민속품과 물품을 대여 및 판매한다는 한 풍물쇼핑몰에서도 “유니나 샴푸는 수집용, 전시용일 뿐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소량이라도 구할 수 없느냐는 질문에 쇼핑몰 측은 “꼭 이 샴푸를 구하셔야만 하느냐.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 샴푸는 76년도 산이라 쓸 수도 없다. 오래돼도 너무 오래된 것인데, 쓰다가 피부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시나. 요즘에 좋은 게 많은데…”라고 덧붙였다.
청계천 판잡집 테마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유니나’에 ‘유레카’를 외쳤다. 실물로 영접한 유니나는 과연 성스러웠다. 형광등 백 개를 켜놓은 듯 아우라가 느껴졌다. 주황색 플라스틱병 속에 노란 제형이 그대로 굳어있었지만, 향기가 나는 듯했다.
유니나 샴푸는 현재 사용을 목적으로 구할 수는 없으나,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다. 테마존은 과거 청계천 일대 판잣집의 옛 모습을 재현한 건물 안에는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유니나 샴푸는 아카시아 샴푸, 레몬 샴푸, 이뿐이 비누 등과 함께 전시돼 있다. 테마존 관계자는 “대략 8년 전 테마존이 문을 열었다. 유니나 샴푸는 아마 그 이전부터 구해뒀을 것”이라며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쳐다보는 전여옥 전 의원=연합뉴스
한편, 청계천 판짓집 테마존 시설안내문에는 ‘장년들에게 어릴 적 옛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의 장소제공’이라고 설치목적이 설명돼 있었다. 건물 앞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1960~1970년대 옛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왜 최근 나온 제품들을 안 쓰고 옛 제품을 쓰는지 모르겠다”던 전 전 의원의 일침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