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에 에이전트 제도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일요신문 DB
올 시즌이 끝난 뒤에는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에이전트 제도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수년 전부터 한국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인 프로야구에도 에이전트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고, 프로스포츠 실무자들과의 회의를 통해 제반 준비를 해왔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역시 “하루 빨리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 입장이던 각 구단들도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스포츠 에이전트는 어떻게 생겼나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192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찰스 파일이라는 인물이 역대 최초로 선수의 대리인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1960년대에는 윌리엄 헤이즈라는 영화제작자가 샌디 쿠팩스와 돈 드라이스데일 대신 소속팀 LA 다저스와의 몸값 분쟁에 나서 주목을 받았다.
현재와 같은 에이전트의 역할을 정착시킨 인물은 밥 울프로 꼽힌다. 울프는 농구 특기생으로 보스턴 대학교에 진학한 뒤 졸업 후 변호사가 됐다. 1964년 자동차 사고 관련 법률 자문을 받으러 찾아온 보스턴 투수 얼 윌스와 대화를 하다 스포츠 비즈니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후 선수들의 연봉 계약을 대신해주는 일을 에이전트의 업무로 정착시켰다.
또 마크 맥코맥은 스포츠 에이전트를 개인이 아닌 기업 차원으로 발전시킨 인물로 인정받는다. 예일대 출신 변호사였던 그는 1960년 에이전시를 설립해 글로벌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의 초석을 놓았다. 이외에도 마틴 블랙맨은 에이전트의 영역을 방송과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 계약까지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야구에서 처음으로 에이전트라는 개념이 화제가 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1994년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인 다저스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에이전트 스티브 김의 존재가 부각됐다. 이어 박찬호가 2000년 텍사스와 5년 6500만 달러라는 대박 계약을 맺으면서 메이저리그의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까지 국내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에이전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에이전트의 일은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계약과 마케팅이다. 계약은 에이전트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선수의 대리인 자격으로 연봉이나 이적 관련 협상에 나선다. 구단과의 금액 조율을 통해 선수가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 사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케팅은 선수들의 스폰서십이나 각종 광고, TV 방송, 이벤트 출연 등을 관리하는 일이다. 유명 선수들은 항공사, 호텔, 스포츠 관련 기업 등과의 홍보 스폰서십 계약을 종종 맺는다. 비시즌에는 광고에 출연하거나 팬 사인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초대되기도 한다. 이 스케줄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역할도 에이전트가 한다. 이외에도 선수를 위한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이나 서비스 개발, 훈련 과정 설계, 선수에 대한 의료 혜택과 법률 서비스 같은 행정적 지원도 에이전트의 역할이다.
유명한 해외파 선수들의 경우, 계약과 마케팅 업무를 서로 다른 에이전트사에 분리해 맡기기도 한다. 메이저리거인 추신수와 류현진의 계약 대리인은 보라스 코퍼레이션이지만, 국내에서의 마케팅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매니지먼트사는 각각 따로 있다.
#에이전트 제도 도입 왜 미뤄졌나
국내 구단들은 지금까지 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아직 국내 야구 시장이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였다. 그 이면에는 구단들의 실리 문제도 깔려 있었다. 그동안 일부 특급 선수를 제외하면 연봉 협상의 주도권은 구단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대리인이 나서게 되면 협상 테이블에 큰 변화가 생긴다. 안 그래도 선수 연봉이 급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이 구단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미 야구계에는 실질적으로 에이전트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늘어났다는 게 정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엄청난 금액의 FA 계약을 이끌어낸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리인이 계약 구단과의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미 선수들의 야구 외적인 일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에이전시들이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선수 한 명을 영입한 뒤 그 선수와 친분이 있는 다른 선수들과도 인연을 맺어 매니지먼트를 맡아주는 식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상품성과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연예 기획사들도 야구선수 매니지먼트에 관심을 보일 정도다.
실제로 에이전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에이전트는 협상 능력이나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대신해 여러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전문적인 교섭에 나설 수 있는 인물이다. 오히려 선수와 구단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 선수는 에이전트의 존재 덕분에 경기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더 이상 구단이 선수 한 명의 가치를 높이는 종합적 매니지먼트를 하기에는 역부족인 시대다. 구단이 선수의 대외 활동이나 사생활 관리에 들여야 하는 노력을 줄일 수 있다. 선수에 대한 가치 평가가 객관화되고 시장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도 장점이다. 시대의 흐름이 불러온 변화다.
#에이전트 수수료는 어떻게 책정되나
에이전트의 수수료는 통상 3%에서 10% 사이에서 책정된다. 에이전트가 총액 100억 원의 계약을 성사시키면 최소 3억 원은 받게 된다는 얘기다. 선수 몸값이 높으면 에이전트도 돈방석에 앉는다. 추신수가 텍사스와 7년 총액 1억 300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에이전트인 보라스는 그 가운데 5%에 해당하는 650만 달러를 챙겨 갔다.
수수료 정산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특정 계약 하나를 성사시킬 때마다 선수가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 그리고 선수의 총 수입 가운데 에이전트가 일정 부분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든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나뉜다. 전자는 적정 수수료를 어떻게 책정하느냐, 후자는 선수의 총 수입을 어느 범주까지로 정하느냐에 따라 양측의 희비가 엇갈린다.
에이전트 제도 도입의 목적은 연봉 협상 과정에서 선수들이 겪어야 할 불리함을 없애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오히려 선수와 에이전트 사이에 수수료로 인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는 수수료 상한선을 뒀다. 최저 연봉 선수는 최고 2000달러로 제한했고, 최저 연봉을 초과해 받는 선수는 최고 4%까지 수수료를 지불할 수 있다. KBO는 연봉 1억 원 이하의 선수는 수수료를 면제하거나 500만 원 상한을 두고, 연봉 1억 원 이상의 경우에도 1000만 원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선수의 연봉이 5% 인상된다고 해도, 에이전트 수수료를 떼고 나면 사실상 동결이다. 선수가 실제로 5% 늘어난 연봉을 받으려면, 계약은 10% 인상된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그 부담은 돈을 지불하는 구단의 몫이다. 동시에 연봉 상승폭이 적은 다른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 야구계 일각에서 “에이전트 제도는 결국 A급 선수들에게만 좋은 일”이라는 우려를 내놓는 이유다.
#에이전트의 자격이 중요하다
KBO와 각 구단, 선수협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에이전트의 ‘자격’ 문제다. 함량 미달의 무자격 에이전트들이 난립하는 부작용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해서다. 실제로 과거에 해외에 진출하거나 도전장을 내밀었던 선수들이 ‘친형’ 같았던 에이전트에게 사기를 당한 사례도 종종 나왔다. 선수들을 위해 마련한 제도 탓에 선수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에이전트 관리와 감독을 통합하고 있다. 2년 전에는 필수로 통과해야 하는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신설하면서 진입 장벽을 더 높였다. 일본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자격시험에서 합격하거나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있다.
KBO와 선수협도 이 문제를 놓고 합의점을 찾을 계획이다. 현재 규약에는 ‘변호사에 한해 선수를 대리할 수 있고, 그 변호사가 2인 이상의 선수를 대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지만, 정식 에이전트의 자격 요건을 변호사로만 한정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또 에이전트들의 과도한 경쟁이나 부정행위에 대한 제재 장치도 마련할 계획이다. 에이전트 제도 도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공적인 ‘정착’이기 때문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보라스는 누구? ‘볼게임’선 부상·좌절 ‘머니게임’으로 최정상에… 스캇 보라스. 사진제공=홍순국 메이저리그 전문기자 보라스는 야구선수 출신이다. 1974년부터 5년간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2루수와 외야수로 뛰었다. 그러나 더블A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무릎 부상 탓에 은퇴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해 약사 자격증을 땄고, 맥조지 로스쿨에 진학해 법학석사 자격까지 얻었다. 한동안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선수 시절의 경험과 인맥을 모두 살려 1980년부터 야구선수 에이전트를 시작했다. 1983년 시애틀 소속 마무리 투수 빌 코딜에게 750만 달러짜리 계약을 안기면서 본격적으로 에이전트로서 이름을 알렸다. 보라스의 별명은 ‘악마의 에이전트’다. 그와 협상해야 하는 구단들 입장에서 봤을 때 악마다. 최대한 협상 시간을 오래 끌며 버티고, 결국은 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선수에게 엄청난 돈을 안겨준다.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꾸는 최고액 계약 기록을 연이어 경신해왔다. 1997년 그렉 매덕스의 5년간 5750만 달러 계약으로 처음 신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케빈 브라운이 LA 다저스로 옮길 때 8년간 1억 500만 달러를 받아내 역대 최초로 총액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2000년 텍사스로 옮기면서 10년간 2억 5200만 달러를 받아낼 때, 그리고 프린스 필더가 2012년 디트로이트와 계약하면서 9년간 2억 1400만 달러라는 금액에 사인할 때도 역시 보라스의 손을 거쳤다. 특히 로드리게스의 계약은 당시 메이저리그는 물론 미국 프로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최고액 계약이었다. 2004년에는 카를로스 벨트란, 매글리오 오도네스, 애드리언 벨트레, J. D. 드류, 제이슨 배리텍, 데릭 로까지 고객 6명에게 도합 3억 9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안겨주는 기염을 토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메이저리그 톱스타들이 보라스와 손을 잡고 천문학적인 몸값을 가져갔다. 에이전트가 계약액의 5% 이상을 수수료로 받는 점을 고려하면, 보라스 자신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도 셀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 보라스는 괴물급 신인들을 미리 낚아채 구단을 압박하기로 유명하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에는 수십 명의 전직 메이저리거가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다. 경제학자들과 공학자들이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들을 평가한다. 이렇게 축적된 정보력을 바탕으로 주요 신인 선수들과 미리 에이전트 계약을 한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이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과 신인 최고 연봉까지 수시로 갈아치우는 비결이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도 보라스가 미리 잡아낸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스트라스버그는 입단하면서 4년 1510만 달러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구단과 보라스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졌다. 스몰 마켓 구단들은 아예 보라스의 고객인 선수들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겼다. 보라스 코퍼레이션 소속 선수들 가운데서도 몸값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선수가 푸대접을 받는 부작용도 있다. 그래도 특급 선수들은 늘 보라스에게 몰린다. 최대한 많은 몸값을 받아주는 에이전트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보라스는 구단들에게 ‘악마’지만, 선수들에게는 ‘천사’나 다름없는 존재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