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중에서도 광고비 지출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곳은 잇몸질환 치료제 ‘이가탄’을 생산·판매하는 명인제약이다. 명인제약은 국내 제약업계에서 중소업체로 분류되면서도 연간 수백억 원의 광고비를 집행한다. 약 1000억 원대로 추정되는 국내 잇몸질환 치료제 시장은 이가탄과 동국제약 인사돌이 양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명인제약은 수백억 원대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수백억 원대 광고비를 지출하는, 이해하기 힘든 광고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행명 명인제약 회장은 한국제약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제약사 중 광고비 집행을 많이 하는 명인제약의 인하우스 광고대행사를 두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명인제약의 이 같은 전략은 국내 상위 제약사들과 비교해도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한 예로, 2015년 1조 1201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유한양행의 광고비가 365억 원인 데 비해 같은 기간 1408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명인제약의 광고비는 265억 원이다. 명인제약보다 매출액이 9배나 많은 유한양행의 광고비가 명인제약의 1.37배에 불과하다. 매출액 대비 광고비로 볼 때 명인제약의 광고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제약사에 비해 명인제약의 광고비 지출이 많은 까닭은 이행명 명인제약 회장의 경영 전략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근당 영업사원 출신인 이행명 회장은 평소 제품과 기업을 알리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광고비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인제약에 따르면 이 회장은 광고 전략과 집행을 직접 챙기고 있다.
명인제약이 광고비를 아끼지 않는 데는 이가탄이 소비자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일반의약품인 영향도 있다. 그러나 유한양행도 일반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강기능식품과 생활용품을 많이 생산·판매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명인제약의 광고비 지출은 과하다고 볼 수 있다.
제약업계와 광고업계 일부에서는 명인제약의 광고비 지출 이면에는 계열 광고회사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명인제약은 자사 광고와 관련한 일을 2005년 설립한 광고 계열사 ‘메디커뮤니케이션’에 맡기고 있다. 명인제약은 이 회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메디커뮤니케이션에 광고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광고와 계열사 성장, 매출 증가를 한꺼번에 노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메디커뮤니케이션이 이행명 회장 일가의 가족회사라는 점. 메디커뮤니케이션 지분은 이 회장의 자녀 선영·자영 씨가 각각 52%와 48%를 나눠 갖고 있다. 즉 이 회장 두 딸의 회사인 것이다. 대부분 매출이 명인제약의 광고 물량에서 나오는 메디커뮤니케이션 전체 매출은 2012년 26억 원 상당에서 2015년 37억 원으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36%에서 58%로 훌쩍 높아졌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광고주 산업군별로 다르긴 하지만 영업이익률이 10% 이상 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메디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광고대행사는 대부분 비용이 인건비 정도”라며 “이 정도 영업이익률은 업계 보통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이라면 당연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을 일이지만 비상장 중소기업인 명인제약은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명인제약 관계자는 메디커뮤니케이션과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메디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명인제약의 광고만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완구업체를 비롯해 다른 회사 광고도 대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명인제약은 기업 규모에 비해 광고비 집행이 유난히 많다”며 “비상장사에다 대기업이 아니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일은 비단 명인제약뿐 아니다. 광고비를 많이 지출하는 회사의 경우 대부분 계열 광고회사를 두고 일감을 몰아준다. 제약사만 해도 일동제약과 유니기획, 동아제약과 선연커뮤니케이션즈의 관계가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제약사들이 주로 계열 광고회사를 통해 광고를 집행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다. 제약업과 약품은 광고 집행에 규제가 많아 회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광고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열 광고사를 두고 있는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인하우스 광고사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제약업체 관계자는 “아직도 여전한 리베이트나 접대비를 차라리 광고비에 녹여내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비상장사에 대한 금융당국 감시가 심하지는 않기 때문에 자녀에게 부를 세습하기 쉬운 구조가 형성돼 있다”며 “비상장 중소기업이라도 일감 몰아주기 같은 상속 수단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메디커뮤니케이션은 이행명 회장의 증여세 회피와 부의 이전 문제에도 연루돼 있다. 명인제약은 2015년 8월 메디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초사옥을 938억 원에 매입했다. 자산 규모 461억 원에 단기차입금이 323억 원에 달했던 메디커뮤니케이션이 갑작스레 자산의 2배가 넘는 건물을 매입한 것이다.
앞서의 사정당국 관계자는 “총수 일가 소유의 법인을 별도로 세우고, 그 회사를 통해 건물을 구입하거나 매출을 올려주는 것은 통상 기업들이 세금을 덜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메디커뮤니케이션의 경우를 생각하면, 명인제약이 건물을 매입해 딸들에게 상속·증여하기보다 딸들 소유의 메디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건물을 매입하면 상속·증여세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절세 효과도 볼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녀에게 건물이나 주식을 물려줄 경우 상속·증여세를 내야 하는데 자녀가 지분을 소유한 법인 명의로 건물을 매입하고 임대 소득을 얻을 경우 상속·증여세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임대소득세 대신 법인세를 내면 돼 절세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디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옥을 구입한 것은 명인제약과 무관한 일”이라며 “추후 명인제약 입주 여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또 메디커뮤니케이션과 명인제약은 두 회사 간 관계는 계열사·자회사가 아니라 엄연히 무관한 기업이라고 선을 그었다. 메디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순수한 광고대행사라고 봐야 한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