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냉동고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수입업자들은 종종 보험사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통해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한다. 수입한 고기를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리는 ‘육류담보대출’이 이들의 자금운영 창구인데, 통상 고기가 유통되는 기간인 2~3개월이 만기인 단기대출이다.
서울 종로구 동양생명 본사. 육류담보대출 사기사건에 연루된 동양생명이 위험도가 높은 기타담보대출을 거액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훈 기자
금융사 입장에서 본다면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기도 한 육류담보대출은 결국 지난 연말 대형 사고가 터지며 위험성의 실체를 드러냈다. 금융권에 따르면 동양생명을 비롯한 보험사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6000억 원대에 육박하는 육류담보대출 사기에 휘말렸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들 금융사는 육류담보대출을 중개하는 전문 브로커의 농간에 놀아난 것으로 전해진다. 대출중개사들은 금융사들이 담보 물건들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여러 금융사에서 중복대출을 받았다. 이들은 고기 유통업체의 담보가치를 평가하고 대출 포트폴리오를 짜 주겠다며 각 금융사와 접촉했고, 동양생명을 비롯해 저축은행, 캐피털사들은 브로커 말만 믿고 수백~수천억 원을 빌려줬다.
대출 피해액은 동양생명이 3803억 원으로 가장 많고 HK저축은행 354억 원, 효성캐피탈 268억 원, 한화저축은행 179억 원, 신한캐피탈 170억 원, 한국캐피탈 113억 원, 조은저축은행 61억 원, 새마을금고 28억 원, 세람저축은행 22억 원 등의 순으로 파악된다.
이번 사기대출 사건은 동양생명이 육류담보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이를 수상히 여겨 자체 조사에 나섰고, 금감원에 중복대출 정황을 자진신고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서는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육류담보대출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2금융권에 따르면 동양생명은 육류담보대출 외에도 수산물담보대출 등 유사한 구조의 대출을 1조 원 이상 갖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동양생명이 갖고 있는 대출채권 중 기타대출은 총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25개 생보사 기타대출 총액인 10조 원의 20%에 달한다. 게다가 삼성과 한화, 교보 빅3 생보사의 총합인 1조 3700억 원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이 2조 원 가운데 육류담보대출 금액인 3800억 원을 제외하면 1조 4000억 원가량의 기타대출이 더 있는 셈이다.
기타대출에는 육류담보대출과 수산물담보대출 외에도 동산담보대출,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수산물대출 등의 금액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금융권은 동양생명이 이처럼 위험도가 높은 기타대출을 대규모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2%대인 국공채 수익률과 비교하면 6~8%의 금리를 적용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수익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액수가 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금융권에서는 동양생명의 기타대출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육류담보대출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동양생명의 행보는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중개업체인 A 사는 지난해 초 동양생명의 최대주주가 안방보험그룹으로 바뀌자 육류담보대출 채무를 유통회사에 넘겼다. 당시 육류유통회사들은 이미 A 사가 채무를 넘기기 직전인 2015년 말까지 동양생명과 맺은 약정한도까지 대출을 끌어다 쓴 상태였다. 그런데도 A 사는 별다른 문제없이 채무를 유통회사에 넘길 수 있었다. 금융권은 A 사가 채무를 넘길 수 있도록 동양생명이 편의를 봐줬거나 최소한 묵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동양생명의 금감원 보고도 의문투성이라는 지적이 있다. 동양생명이 중복대출을 확인한 뒤 다른 금융회사와 공조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금감원 보고가 즉시 이뤄지지 않은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는 동양생명이 지난해 12월 초 육류담보대출 사기 사건으로 문제가 된 냉동창고에서 수입육 일부를 다른 냉동창고로 옮겼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특히 동양생명 직원이 직접 육류를 옮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는 동양생명이 담보물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뜻이며 그때 이미 중복대출을 인지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된다.
또 다른 소문도 돌고 있다. 사기에 휘말린 냉동창고업체가 채권단 회의를 요청했는데 동양생명이 이를 막았다는 것이다. 냉동창고업체가 채권단에 중복대출 문제를 알리려 하자 동양생명이 이를 늦추기 위해 행동을 취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만약 동양생명이 의도적으로 채권단 회의를 늦췄다면 피해 사실을 축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금융권의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피해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동양생명이 냉동창고업체에 채권단 소집을 늦춰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들었다”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동양생명이 무언가 다른 의도를 가졌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동양생명 관계자는 “육류담보대출의 경우 동양생명은 명백한 피해자이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전부 근거 없다”며 “기타대출의 경우 워낙 대출 형태가 다양한 데다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이 모두 포함돼 있는 등 각각의 대출에 대해서는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