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지난해 11월 11일 서해 최전방 서부전선에 위치한 마합도방어대를 찾아 포격훈련 참관했을 당시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시기는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 때다. 하지만 김정은이 실제 후계자로 점지된 시기에 대해선 여전히 이견이 있다. 필자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비공식 내정된 시기로 2006년 12월 30일을 꼽는다. 이날 아버지 김정일은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총참모장, 이용철 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 이제강 당 조직지도부 본부당 담당 제1부부장,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책임부부장 등 최고위급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김정일은 이 자리에서 “우리 ‘젊은 대장’을 잘 받들어 달라”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후계자 김정은을 지목했다. 이 시기 김정은은 일반 사병생활을 마무리하고 특별대우 속에서 대좌계급장(한국의 대령급)을 달게 된다. 당 내부 자료를 통해 유포된 ‘발걸음’이란 노래가 나온 것도 이 시기다. 발걸음의 가사 속 ‘김대장’은 후계자 김정은을 지칭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안이다.
대좌계급을 달게 된 김정은은 2007년 초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한다. 그것도 일반 학부과정을 뛰어넘은 연구반 과정(한국의 대학원 성격)이었다. 김정은의 대학(김정은은 사실상 학부과정을 건너뛰고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지만 이번 연재에선 편의상 대학으로 표기한다) 수료 시기는 아주 중요하다. 김정은의 대학 수료 과정은 사실상 ‘후계자 수업’ 마지막 단계의 성격이 매우 짙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대학 수업을 통해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단순한 교양 차원을 넘어 꼭 필요한 군사적 지식도 함께 체득했다. 그것도 정상적인 학부 과정이 아닌 후계자 김정은을 위한 맞춤형 특별수업을 통해서 말이다.
우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 직후 설립된 평양학원을 전신으로 하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은 한국으로 따지면 군관 양성 심화대학인 합동군사대학과 비슷하다. 과정은 크게 세 분류다. 일반 학부과정이라 할 수 있는 4년제 각 병종 대학반은 초급군관학교를 거친 소좌급(한국의 소령급) 이하 군관을 대상으로 한다. 졸업생들은 연대장(한국의 중령급 이상) 혹은 사·여단 참모장(한국의 대령급)으로 투입된다.
2년제 특설반은 주로 중·대위에 해당하는 여성 군관을 대상으로 하며 졸업 직후 대대장 및 연대 참모장급으로 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학원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2년제 연구반이다. 이 과정은 주로 연대장 및 사·여단 참모장급 군관(한국의 대령급 이상)들이 입학하며 졸업 뒤에는 사·여단장(한국의 준장급 이상)으로 임관한다. 그밖에 군관들의 단기 재교육 과정이 있긴 하지만 여기선 논외로 한다.
대좌에 해당하는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한다면, 연구반에서 수학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일반사병 근무만 했을 뿐 군사 중진급 지휘관으로서 경험은 물론 전문학부에 해당하는 초급군관학교도 거치지 않았다.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은 김정은이 입학한 2007년경 아예 김정은만을 위한 3년짜리 속성 연구반 과정을 신설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꼭 필요한 군사·교양 지식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이수할 수 있도록 당과 대학 차원에서 철저하게 준비한 셈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의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재학 시기는 그의 후계자 수업 과정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초급군관으로서 경험과 지식이 없었던 김정은은 입학한 속성 연구반 과정과 별개로 농번기인 2007년 5월에서 6월까지 일종의 선수학습(대학원생들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듣는 학부과정)을 받는다. 북한의 대학생들은 농번기에 학업과정과 관계없이 농촌 일손으로 투입된다. 학교 여타 학생들이 모두 농촌지원에 투입되어 교원들이 한가한 이 시기에 김정은이 집중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캠퍼스생활은 다른 대학·대학원생과는 많이 달랐다. 애초 다른 대학생들과는 수학의 목적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캠퍼스 생활의 낭만도 없었다. 대학생 김정은의 신분은 공식적으로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 수업 자체가 김정은만을 위한 철저한 일대일 방식이었기 때문에 교우생활 자체가 없었다.
김정은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곤 빡빡한 수업과정을 이수했다. 휴일은 일요일 단 하루에 불과했다. 김정은은 호위총국(한국의 청와대 경호실) 산하 특수차량 편으로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 관저에서 만경대구역 금성동에 위치한 학교까지 등·하교를 반복했다. 속성 과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상당히 고된 과정이었다는 평가다. 또한 김정은은 대좌신분이었기에 수업 출석 시 다른 학생들처럼 군복을 착용했다.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김정은의 전용 강의실은 대학 본관 2층에 있는 정치위원 전용 사무실 옆 응접실을 개조해 마련됐다. 강의실에는 김정은이 앉았던 팔걸이 소파가 있었고, 교원 사이에 원탁이 놓여있었다고 한다. 앞서 밝혔듯 수업은 철저한 일대일 방식이었는데 토론과 질문을 주고받는 심화 수업이 주를 이뤘다. 강의에 참여한 교원들은 당연히 각 과목의 유능한 강좌장급(군 계급은 한국의 대령에 해당하는 상좌급 이상의 교육 군관들) 인재들이었다. 담당 교원들은 김정은의 신분을 어렴풋이 인지했기 때문에 수업 자체가 상당히 딱딱했다는 후문이다.
리영호 전 총참모장
이러한 정규 수업이 다가 아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은 정규 수업 이외에도 별도의 보충 수업도 받았다. 주변 군부대와 병참기지들을 직접 현지 시찰하며 실습 활동을 병행했다. 이는 후계자 신분으로 실질적인 군사적 안목을 키우기 위해 진행된 현장수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김정은은 졸업반인 2009년 일련의 특강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필자가 입수한 특강 강연자 명단과 과목이다. 직함은 2009년 기준이다. ▲리영호 91훈련소 소장(포 전공) ▲김격식 총참모장(작전 및 행정) ▲김명국 작전국장(현대전법) ▲현철해 후방총국장(군수 후방 및 물자 지원) ▲김원홍 총정치국 조직부국장(군 내 당 조직 및 안보) ▲김영철 정찰총국장(군사 정보) ▲윤정린 호위총국 참모장(경호 및 반 게릴라).
특강 교원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군 각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다. (일부는 훗날 숙청 혹은 처형됐지만) 인사들 대부분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두각을 나타내며 공개적으로 부각됐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훗날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승진했지만 숙청되는 리영호는 김정은의 논문지도 교수로 확인된다. 논문 주제는 ‘GPS를 이용한 현대전 포사격 작전의 효율성’이었다.
필자가 앞서 밝혔듯 김정은은 후계자 신분을 감춘 상황에서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김정은의 신분은 그를 직접 교육한 교원들의 입을 통해 대학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후에는 고위급 간부들과 교원들 사이에서 ‘누구나 다 아는 비밀’로 통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정은 대학시절 보좌’ 미모의 여성군관들 정체는? 윗선의 배려…그중 한 명과 데이트도 이 여성군관들은 20대 미인으로 김정은과 수시로 미팅과 개별적 만남도 이어갔다. 특히 이 중 L○○ 상위는 운동과 노래에 소질이 있어 김정은이 퍽 맘에 들어 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팍팍했던 대학시기 이 여성군관과 탁구를 함께 쳤고 평양체육관, 은덕원, 창광원 등의 고급식당에서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두 여성군관은 2010년 9월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직후 당 간부사업을 통해 현재까지도 김정은 주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북한의 일부 인사들은 당시 김정은에게 젊은 여성군관을 붙인 이유는 ‘윗선의 배려’로 보고 있다. 즉 후계자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고강도의 대학생활 속에서 김정은을 위한 최소한의 안식처로서 이 여성군관들을 투입했다는 설명이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