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목표는 ‘7공화국 건설’. 서로를 묶는 방법은 개헌과 정치교체에 대한 논의, 시기는 가장 극적 효과를 담보하고자 논의 중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결정되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로부터 2개월(60일) 뒤에 대선을 치르게 된다. 반 캠프에서는 4월 대선은 문 전 대표가, 6월 대선은 반 전 총장이 유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8월 대선은 제3의 후보의 당선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반 전 총장은 설 전에 손학규 전 대표 등을 만나 정치권 빅뱅의 시동을 건다.
이로써 반 전 총장이 지난 12일 귀국 직후부터 전국을 말 그대로 종횡무진 광폭행보한 이유가 드러났다. 반 전 총장은 짧은 기간 최대한 압축적인 동선으로 자신만의 대민접촉에 나섰던 것이다.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짧아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내달렸다. 그를 수행했던 한 인사의 이야기는 이랬다.
“우리가 죽을 지경이다. 일정을 누가 짜는지 몰라도 이건 혹사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런 동서남북 행보를 반 전 총장 자신이 원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몇 천 킬로미터를 내달렸는데 이 정도 일정쯤은 문제도 없다며 되도록이면 전국을 다 돌아보자고 했다고 한다.” 74세 고령의 우려를 체력으로 불식시키려는 함의도 녹아 있었다.
이 수행 인사는 “12시쯤 취침에 들어가 보통 새벽 4~5시에 일어났고, 그때부터 동선 체크와 메시지 등을 가다듬고 연습을 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집약적 행보를 보였던 반 전 총장은 지난 주말은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런 저런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 전 총장은 설 전에 손 전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만난다. 2월로 예정된 정치권 빅뱅의 시동이다. 문 전 대표와 그 세력을 뺀 모든 진영을 한곳으로 모으는 시도다. 손 전 대표를 비롯한 이들 3지대 합류 가능 세력은 제각각 전국 조직을 구축하면서 기반을 다지고 새판 짜기의 속도를 내고 있다.
개헌에 대해서는 정 전 의장과 늘푸른한국당의 이재오 대표(전 의원)가 초안을 잡아놓았다. 김무성 의원의 바른정당도 24일 공식 창당한다. 제각각의 움직임으로 보여 언론의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공동 목표를 위한 퍼스널 트레이닝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 반 캠프의 설명이다. 한 캠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반 전 총장이 정당에 들어가겠다고 한 것은 특정 정당, 이미 만들어진 정당으로 간다는 뜻이 아니다. 모 매체는 입당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전혀 아니다. 정말 (정치부) 기자들이 상상력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니냐. 손 전 대표의 행보도 같이 보며 분석해 달라. 그 부탁만 하고 싶다.” 반 전 총장이 최종적으로 대선 후보로 출정식을 가질 때에는 정당의 후보가 돼 있겠지만 그건 기존 정당이 아닐 것이란 뜻이다. 그는 “무소속 후보는 아닙니다. 무소속으로 대선에서 당선된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 전 의장과 이 대표는 과거 친이계의 핵심 멤버다. 이 대표가 늘푸른한국당 창당대회를 가졌을 때 정 전 의장이 직접 축사했다. 정운찬 전 총리도 참석했다. 정 전 총리가 내세우고 있는 동반성장은 늘푸른한국당의 4대 핵심 목표 중 하나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 전 의장과 전화하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있다”며 “무엇을 예상하든 그보다 더 가깝다”고 귀띔했다.
손 전 대표 측도 “22일 국민주권개혁회의 창립대회를 시발점으로 해서 정치권 재편이 급물살을 타고 곧 빅뱅설이 회자할 것”이라며 “회자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아직 전국적 진용이 짜이지 않은 손 전 대표는 국민주권개혁회의를 통해 국민의당과 당 대 당 형식의 통합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전해진다.
이 그림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의 의중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주권개혁회의 창립대회에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를 비롯해 안 전 대표, 천정배 전 대표 등과 정동영 의원 등 다수가 참석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역시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의중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대리인이 물밑에서 여러 가능성을 두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대리인으로는 진영 의원이 거론된다. 새누리당 출신인 진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지만 통치행위에 반기를 들고 문을 박차고 나온 인물이다. 경제민주화의 주창자지만 보수 색채가 강한 김 전 대표와 정치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인사 중 하나다. 게다가 진 의원은 원조친박으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도 교감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도 개헌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후보가 많은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흥행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문 전 대표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대권 여론조사의 상위권에 리스트업된 주자들이 슈퍼스타K 방식으로 경선을 할 경우 반문재인 진영은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반 전 총장의 지난 일주일간 전국 행보가 많은 구설을 낳으면서 내공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예상보다 체력이 좋고, 유머러스하며, 권력의지도 강했지만 어설픈 행보로 정치 지도자로선 아마추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은 정당 입당을 희망했던 의중이 언론 보도로 드러난 지난 경남 김해 방문에서 “자갈치 시장에서 밥 먹고 간 사람들은 다 대통령 됐고 그냥 왔다 간 사람은 떨어졌다”며 “이회창은 안 먹었고,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다 먹었는데 나는 오늘 먹었으니까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상인들이 말해주더라”라고 말했다.
또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선출직 공직자의 출마 연령을 65세로 제한하자고 공세한 것에 대해선 “그러면 개헌해야겠네”라고 웃기도 했고, 최근 캠프 운영비로 속속 지출하는 경비를 두고 “왜 국회의원 두 번 하면 집안이 거덜 나는지 알겠더라”라고도 해 좌중의 폭소를 이끌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전담 기자들과의 치맥(치킨+맥주) 회동을 마친 뒤 김영란법 때문에 1만 원씩 갹출해야 한다고 하자 주머니에서 5000원 1장과 1000원 4장을 꺼내 대변인에게 주기도 했다. 꼬깃꼬깃한 지폐였다고 전해진다. 정치권 한 인사는 “일주일간 바닥을 찍었다고 본다. 더 내려갈 곳이 없다”며 “이를 한계로 보는 이들이 있고 지금부터가 가능성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는데 후자는 새누리당”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3지대에는 새누리당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