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첫 번째 프레임은 ‘대세론’이다. 이 프레임은 둘 중 하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세론이 ‘철옹성을 구축하느냐, 유리성으로 전락하느냐’다. 전망은 확연히 갈린다. 대세론 허상의 논거는 현실화된 적이 없는 지속 불가능성이다. 대표적인 예는 지난 2002년 대선 때 ‘노풍’(노무현 바람)에 무너진 ‘이회창 대세론’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비주류 의원은 “다이내믹한 대선에서 대세론이 이어지는 것을 봤느냐”고 반문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도 “대세론은 곧장 내부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마치 정권을 다 잡았다는 분위기가 팽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주류 인사는 “다른 선거는 몰라도, 대선은 대세론의 게임”이라며 “‘이회창 대세론’이 무너진 것만 봐서 그렇지, 대선 땐 대세론을 업은 후보가 대부분 이겼다”라고 밝혔다. 여야의 선거통과 정치전문가들이 보는 87년 체제 이후 대세론은 ▲김영삼(YS) 대세론 ▲이회창 대세론 ▲박근혜 대세론 등이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DJ) 대통령은 호남과 충청을 묶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이인제 탈당에 따른 여권 분열로 승리했고, 2007년 대선에서 550만 표 차로 이겼던 이명박 대통령은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대세론’과 각축전을 벌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대선의 선거변수와 대세론의 상관관계다. 선거 분석가들은 통상적인 대선의 3대 변수로 ‘40대·수도권·화이트칼라’를 꼽는다. 고령화에 따른 선거 연령별 인구구성비 변화로 지난 대선에서는 50대가 당락을 갈랐다. 한 분석가는 “2012년 당시 50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와 87년 6·10 민주항쟁을 동시에 겪은 세대였다”고 말했다. 현재 50대 중반이 이 세대다. 집토끼를 잡은 후보가 ‘50대·수도권·화이트칼라’로 외연 확장을 꾀해야만 대세론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넘지 못하면 대세론을 타지 못한 채 ‘우세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대세론을 탄 문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야권의 두 축인 친노(친노무현) 운동권과 호남 등 범야권 지지층에 깃발을 꽂고 중도·무당층을 잡아야만 대세론에 날개를 탈 수 있다.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민주당 중진 의원은 “문 전 대표 측에 “최대한 몸을 낮추라고 조언하는데, 보고가 잘 안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대세론은 여야의 ‘동네북’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라며 “문 전 대표를 이를 돌파하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킬지, 잇단 악재로 지지층이 이완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정권교체 vs 정치교체’다. 전자는 문 전 대표, 후자는 반 전 총장의 프레임이다. 반 전 총장이 지난 1월12일 귀국길에서 ‘정치교체’를 역설하자, 문 전 대표가 “정권교체 없는 정치교체는 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반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치교체라는 말을 했다”며 “정치교체가 더 상위 개념”이라고 재반격에 나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유순택 여사가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반 전 총장의 정치교체 프레임에는 두 가지 전략이 깔렸다. 하나는 국정농단 게이트로 정권을 운명을 다한 박근혜 정부와 선 긋기다. 최근 반 전 총장은 1차 선택지로 바른정당 입당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하나는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 등의 정치세력에 구체제 덫을 씌운 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새판 짜기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문 전 대표의 정권교체는 반 전 총장의 프레임 전략을 무력화하고 범야권 지지층의 최대 숙원인 정권교체 명분을 전면에 내걸겠다는 의지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정권교체의 전제조건으로 ▲박근혜 정부와 관련이 없을 것 ▲기득권 세력 척결 의지 ▲개혁적인 사람들과 함께할 것 등 세 가지를 내걸고 독자 완주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세 번째는 ‘양자 vs 3자 vs 다자’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제3지대 정계개편과 맞물려있다. 또한 야권연대를 비롯해 ‘문재인 vs 반기문’의 양자구도 허물기, 친박·친문 패권주의 프레임, 중간지대 플랫폼 등으로 이어진다. 사실상 이 지점이 대선 발 정계개편의 백미가 될 전망이다.
의견은 분분하다. 양자구도의 경우 한 축은 문 전 대표다. 다른 한 축은 반 전 총장과 안 전 대표의 싸움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기문 중도포기설’, ‘안철수 낙마설’ 등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한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호남 측 인사들은 ‘문재인 vs 안철수’ 대결 가능성에 한 표를 던진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반 전 총장이 검증 과정에서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 드롭(중도포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이든 국민의당이든 기성 정당의 경선 과정도 뚫지 못할 것”이라며 “새누리당과 지지층이 겹치는 반 전 총장이 입당하는 순간, 지지층이 이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전 대표도 연일 “문 전 대표와의 양자대결에서 누가 이길 수 있겠느냐”며 양자대결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도 반 전 총장의 중도 포기에 한 표를 던졌다.
3자 구도는 ‘문재인 vs 반기문 vs 안철수’ 구도다. 애초 추 대표도 ‘3자 필승론’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주류 관계자는 “3자구도든 다자구도든 문 전 대표가 이기는 판”이라며 “당내 경선과 본선 등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범주류 관계자도 “3자 구도로 치러질 경우 문 전 대표가 40∼45%의 득표율만 얻어도 승산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1월 둘째 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3자 구도에서 문 전 대표는 44%, 반 전 총장은 30%, 안 전 대표는 14%를 각각 기록했다. 통상적인 득표율은 여론조사 대비 3∼5%포인트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 전 대표의 득표율이 50%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번 조사는 1월10일~12일 사흘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임의걸기(RDD) 표본 프레임 무작위 추출(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이며, 응답률은 19%(총통화 5361명 중 1007명 응답 완료)였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4자 구도는 ‘새누리당 후보 vs 문재인 vs 반기문 vs 안철수’ 구도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참여한 한 보좌관은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하는 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새누리당이 이인제 전 의원이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든 옹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경우에도 문재인 대세론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의원은 “문 전 대표 등 주류 측이 옷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격”이라며 “정권 잡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대선 이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는 개헌 vs 반개헌 프레임이다. 반 전 총장의 개헌 행보는 오락가락이다. 귀국 전 임기단축 개헌 가능성을 시사했던 반 전 총장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한 1월 16일 기자들과 만나 “대선 전 개헌은 어렵다”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반 전 총장은 경기도 평택의 제2함대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자체 캠프 내에서 정제된 발언인지 충분한 검토 후에 나온 말씀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반 전 총장에게 문을 닫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안철수 옹립’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에 따라 중간지대 세력의 대권 방정식 플랫폼인 개헌을 매개로 한 반문연대 시나리오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개헌파인 문 전 대표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 참여하는 민주당 비주류 의원은 “문 전 대표는 이제라도 개헌을 고리로 연립정부 구성에 대한 플랫폼을 내놔야 한다”며 “친문 세력이 독식한다는 비판을 언제까지 받을 것이냐”라고 힐난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