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한화 감독(왼쪽)과 박종훈 한화 단장.
# 한화 박종훈 단장이 새 바람의 진원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단장을 교체한 구단은 총 6개 팀. 신임 단장 6인 가운데 네 명이 선수 출신이라는 의미가 된다. 동시에 선수 출신 단장의 지분율이 20%에서 50%로 급격하게 늘었다. 프런트 내부에서 올라오거나 모기업에서 내려온 단장 5인과의 은근한 대결 구도도 벌써부터 형성됐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팀 한화가 새 바람의 진원지였다. 지난해 11월 전임 박종규 단장이 사업총괄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대신 LG 감독 출신인 박종훈 신임 단장을 선임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성근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박 단장의 영입도 깜짝 공개한 것이다. 새 단장을 ‘모셔오는’ 이유도 자세히 설명했다. “김 감독은 ‘1군 감독’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고, 박 단장에게 선수단 운영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겨 내부 유망주를 발굴하고 선수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천명했다.
박 신임 단장은 1983년 두산의 전신 OB에서 데뷔한 뒤 그해 신인왕과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스타 선수 출신이다. SK와 두산 2군 감독을 거쳤고, 2010년부터 2년간 LG 지휘봉을 잡았다. 한화 단장이 되기 전까지는 NC에서 육성본부장을 맡아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야구계에서는 한화의 단장 교체를 놓고 “김 감독 운신의 폭을 좁히기 위한 인사”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역할 구분을 확실히 하겠다”는 말은 곧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 이외에는 감독의 권한을 축소시키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어서다. 실제로 박 단장이 취임 이후 코칭스태프 재구성과 외부 선수 영입에 대한 김 감독의 요구를 대부분 단칼에 거절했다는 뒷얘기가 들려왔다. 단장과 감독 모두 불화설을 부인했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두 야구인의 팽팽한 신경전은 이미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 LG와 넥센, 그리고 SK
한 달 뒤에는 LG가 부채질을 했다. 6년간 팀을 이끈 백순길 단장이 물러나면서 송구홍 운영총괄에게 새로 단장 역할을 맡겼다. 송 단장은 1991년 LG에 입단한 뒤 ‘허슬 플레이’의 대명사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던 내야수 출신이다. 해태(1998년)와 쌍방울(1999년)을 1년씩 거친 뒤 2000년 LG로 돌아와 은퇴했다. 이후 LG에서 코치, 운영팀장, 운영총괄을 역임했다. 선수 시절 몸담았던 팀에서 단장 자리까지 오른 첫 번째 케이스. 그 어떤 인물보다 선수단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새해에는 넥센이 고형욱 스카우트 팀장을 새 단장으로 임명했다.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남궁종환 전임 단장이 물러나면서 선수 출신인 고 팀장이 단장 자리로 올라섰다. 고 단장은 1994년 쌍방울에 입단해 1999년까지 통산 98경기에 등판했던 투수 출신이다. 은퇴 후 아마추어 지도자 생활을 하다 2009년 넥센 스카우트팀에 입사했다. 한현희, 조상우, 김하성처럼 넥센의 기둥이 된 유망주들을 직접 뽑아왔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넥센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자체 육성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SK가 선수 출신인 민 전임 단장의 후임으로 염경엽 전 감독을 영입하면서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태평양과 현대에서 내야수로 뛴 염 감독은 현대와 LG에서 프런트 생활을 오래 했다. LG에서는 운영팀장까지 역임했다. 2012년 넥센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2013시즌부터 감독으로 발탁돼 지휘봉을 잡았다. 넥센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기도 했다.
염 감독은 넥센이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뒤 패장 기자회견에서 자진 사퇴했다. 이후 시즌 내내 파다했던 SK 감독 이적설을 전면 부인하고 해외에서 야구 관련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다시 야구단으로 돌아왔다. 소문의 팀이었던 SK로 옮겼지만, 이번엔 감독이 아닌 단장이 그의 임무다.
# 김태룡과 민경삼이 닦아놓은 길
선수 출신 단장들의 연이은 등장은 확실한 성공 사례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앞서 언급했던 두산 김태룡 단장과 SK 민경삼 전 단장이다. 두 사람이 오랜 기간 닦아 놓은 길 위로 다른 선수 출신 단장들이 걸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단들이 과감하게 선수 출신 인사를 선택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김 단장은 학창 시절 촉망 받던 야구선수였다. 부산 동성중 시절 김경문 NC 감독, 양상문 LG 감독과 함께 야구를 했다. 부산고 3학년 때인 1978년에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왕에도 올랐다. 그러나 동아대 2학년 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어깨를 크게 다쳐 야구를 그만뒀다. 1983년부터 7년간 롯데 스카우트로 일했고, 1991년부터 OB에서 선수단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운영팀에서 차근차근 일을 배우고 역량을 쌓았다.
지금 김 단장의 직위는 전무이사.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구단 임원 자리까지 올라왔다. 2011년 단장 선임 이후 현장 경험과 소통 능력을 앞세워 팀 운영의 큰 그림을 그려왔다. 두산을 상징하는 ‘화수분 야구’의 기틀을 확실히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독학으로 공부한 일본어 덕분에 내로라하는 ‘일본 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2016년 통합 우승은 그간의 노력을 총망라한 결과물. 야구계에 김 단장의 존재감을 더 확실하게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됐다.
민 전 단장은 선수 출신 최장수 단장이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1986년 MBC 청룡에 입단한 뒤 8년 만에 프로 선수 생활을 접었지만, 프런트로 시작한 새 인생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운영팀장, 경영지원팀장, 운영본부장을 비롯한 요직을 거쳤고, 2010년 1월 단장 자리에 올랐다. 그 후 지난해 12월 말 팀 성적 하락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할 때까지 7시즌 동안 단장 자리를 지키면서 SK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민 단장은 공격적인 트레이드로 팀 전력의 근간을 만들었다. 외국인 선수가 포함되거나 선수 여럿이 오가는 대형 트레이드를 과감하게 단행했다. 박재홍, 전병두, 정의윤, 전유수 같은 선수들이 모두 민 단장이 주도한 트레이드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다. 단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민 단장이 그 어느 스타 선수의 은퇴 못지않은 조명을 받은 이유다.
# 선수 출신 단장들의 전망은?
사실 김태룡 단장과 민경삼 전 단장은 유독 팬들의 손가락질을 많이 받은 단장이기도 했다. 선수 출신이라는 특성 탓에 지명도 자체가 다른 단장들보다 높았던 게 첫 번째, 그리고 그만큼 구단 운영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부분이 많았던 게 두 번째 이유다. 특히 감독 교체와 트레이드 결과에 따른 평가는 단장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김 단장은 두산의 전임 감독들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악성 댓글 세례에 시달려 편두통을 달고 살았고, 민 전 단장은 김성근 감독이 SK 지휘봉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김 감독의 사퇴를 반대하는 팬들의 극렬한 반대 시위에 부딪혀 곤욕을 치렀다.
이런 어려움은 앞으로 선수 출신 단장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될 과정이다. 일부 ‘낙하산 단장’들이 하지 못했던 진짜 단장의 임무를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그만큼 책임질 부분도 많아진다. 선수 출신들이 현장 경험을 통해 쌓은 능력이 ‘직업적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온 대신, 팀 성적에 대한 모든 책임이 감독 한 사람에게만 몰리는 풍토도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권리가 늘어나면 책임도 비례해 같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SK가 염 신임 단장과의 계약기간을 이례적으로 ‘3년’이라 명시한 점도 이런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그 기간 동안의 성과에 대해 단장에게도 확실한 공과를 묻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결과가 좋으면 더 많은 권한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더 높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올해 선수 출신 단장들이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탄생할 새 단장들의 얼굴도 달라질 수 있다. 만만치 않은 시험대, 그러나 도전할 가치가 있는 숙제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빅리그 단장 스토리] 엡스타인, 밤비노·염소의 저주 모두 깼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단장들 가운데 프로야구 선수 출신은 단 다섯 명뿐이다. 현역 시절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인물로 범위를 좁히면 시애틀의 제리 디포토 단장이 유일하다. 지난해에는 애리조나도 빅리그 통산 168승 투수인 데이브 스튜어트가 단장을 맡았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보스턴 단장이었던 마이크 헤이즌을 영입해 단장을 교체했다. 동시에 빅리그 통산 27승을 올린 디포토가 유일한 ‘전직 메이저리거 단장’으로 남게 됐다. 반대로 야구 선수 경험이 아예 없는 단장은 12명이나 된다. 그 외의 단장들은 대학 때까지 야구를 했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해 꿈을 접은 아마추어 선수였다. 뉴욕 양키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이 바로 마지막 사례다. 카톨릭 유니버시티 오브 아메리카 대학에서 내야수로 맹활약하고도 프로 진출에는 실패했다. 대신 그라운드가 아닌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캐시먼 단장은 현역 단장들 가운데 가장 오래 단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가 31세에 불과했던 1998년 파격적으로 양키스 단장 자리에 오른 뒤 무려 20년째 구단 운영을 도맡고 있다. 다른 팀 단장들이 대부분 10년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나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경력이다. 위기도 있었다. 양키스는 2013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뒤 무려 3800만 달러를 투자해 전력을 보강했다. 일본의 슈퍼스타 다나카 마사히로를 필두로 자코비 엘스베리, 브라이언 매캔, 카를로스 벨트란 같은 특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물론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2014년에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볼티모어에게 넘겨줬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가을무대를 밟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캐시먼 단장의 해임설도 나돌았다. 양키스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캐시먼 단장과 계약을 3년 연장했다. 팀에 그의 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캐시먼 단장은 취임 직후 월드시리즈 3연패를 시작으로 팀이 숱한 위기를 넘어서고 최강 구단의 명성을 이어가는 데 힘을 보태왔다. 최근에는 데릭 지터의 은퇴 공백을 잘 메웠고,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은퇴 문제도 매끄럽게 처리했다. 노련한 단장 한 명이 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어 가는지 보여줬다. 시카고 컵스의 테오 엡스타인 사장도 메이저리그 단장의 사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002년 11월 28세라는 아주 젊은 나이로 전통의 명문팀 구단 보스턴의 단장직을 맡았다. 당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20대 단장으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브루클린고등학교 재학 시절 잠시 야구를 했던 게 선수 경력의 전부. 그러나 명문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샌디에이고 구단 홍보팀에서 일하면서 야구단 경력을 쌓아갔다. 샌디에이고에서 그의 능력을 높이 샀던 상관 래리 루치노는 보스턴 최고 경영자로 부임하면서 엡스타인을 단장으로 선임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그리고 엡스타인 단장 취임 2년째인 2004년에 보스턴은 그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919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트레이드시킨 뒤 86년간 이어져온 불운을 끝내 끊어냈다. 보스턴은 2005년 엡스타인이 단장직에서 사퇴하자 이듬해 1월 수석 부사장이라는 직함까지 안겨주면서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2007년에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엡스타인은 ‘저주를 이겨낸 남자’로 불리며 주가를 높였다. 컵스는 2011년 바로 그 엡스타인 단장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컵스에는 잘 알려진 대로 보스턴보다 더 오래된 미신 하나가 존재했다. 1945년 월드시리즈 4차전 당시 염소와 함께 야구장에 왔다가 쫓겨난 한 관중이 악담을 퍼부은 데서 비롯된 ‘염소의 저주’였다. 컵스가 엡스타인 신임 사장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리고 엡스타인 사장이 팀을 움직인 컵스는 지난해 끝내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08년 이후 108년 만에 찾아온 감격이었다. 이렇게 엡스타인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하고 끈질겼던 저주 두 개를 모두 풀었다. 하나는 단장으로서, 다른 하나는 사장으로서였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