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교수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권력의 속살은 잿빛이라며 그 무게감을 표현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199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운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소장을 맡게 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 후 김 교수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책자문단장을 맡았고,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턴 대통령정책특별보좌관 겸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거쳤다.
참여정부 이후 학교로 돌아온 김 교수는 지난해 다시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았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위한 국무총리후보로 지명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협의 절차가 생략됐음을 문제 삼았고, 결국 ‘김병준 카드’는 불발됐다.
총리 지명 철회 후 책 출간에 집중해온 김 교수는 인간 욕망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권력이 실제로는 고통과 갈등 속에서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권력을 ‘잿빛’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책 서문에서 “권력은 잿빛이다. 재력, 경영권, 행정권, 가부장권 등 크게 보면 세상의 모든 힘이 그렇다. 겉으로 화려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속살은 잿빛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쫓지만 정작 그 잿빛의 무거움을 보지 못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김 교수는 “권력의 겉과 속을 제대로 알아나가고 비슷하게 반복되는 참담한 실패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책무를 느끼고 있다. 그것이 정치발전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참여정부의 비화다. ‘노무현의 영원한 후원자’로 불리었던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얘기도 그 중 하나다. 김 교수는 강 회장을 ‘마지막 비서실장’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움직이는 모든 곳에 그가 있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다. 대통령 앞에서의 그의 모습은 언제나 경건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언제나 정장에 넥타이를 매었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고 회상했다.
강 회장이 김 교수에게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권유한 일화도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열린우리당 해체와 신당창당 등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지만 당시 강 회장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 또한 김 교수에게 정치를 권유했다고 알려졌다. 김 교수는 당시를 “2007년 초까지만 해도 정치를 권했다. TK 출신이라 지역 구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당을 정책정당으로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정책실장 시절에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종용했다”고 기억했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얘기도 시선을 모은다. 김 교수는 성 회장에 대해 불행한 과거를 딛고 돈을 벌었고, 잘나가던 시절에도 자신을 위해선 돈 한 푼 함부로 쓰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뿌리고 싶어 뿌렸겠나. 성공하기 위해 뿌리고, 살기 위해서 뿌리고, 버티기 위해서 뿌리지 않았겠나”고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2002년 대선 때 일화도 담겨 있다. “(노무현) 후보의 정책자문단장을 맡고 있었는데 돈 들어가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많이 들어가는 밥값, 싼 것을 골라 먹는데도 모임이 워낙 많다 보니 지출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사무실 운영비와 지지선언 대회 등의 행사비도 적지 않았다. 매일 같이 돈 걱정이었다. 이리저리 당겨쓰고, 돌아가며 밥값 내고, 나머지는 모두 단장의 몫이었다. 솔직히 불법이건 합법이건 누가 봐주기만 하면 우선 받아쓰고 싶은 기분이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당시 친지의 신세까지 지게 됐는데 이를 알게 된 노 전 대통령이 “내 앞으로 나온 돈 조금씩 가져다 쓰라”며 도와줬다고 했다.
김 교수는 책을 통해 ‘노무현 마케팅’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정치상품화가 진행되면서 노무현의 꿈과 이상, 그리고 회환과 좌절은 망각되거나 왜곡된다. 그가 일생을 통해서 물었던 질문, 즉 ‘어떻게 하면 깨어 있을 것인가’도 뒤로 밀려나 버린다. 그 대신 ‘모이자’ ‘이기자’ 구호가 세상을 뒤덮는다”고 했다.
또 김 교수는 지난해 총리 발탁과 관련해서는 “총리가 자신의 철학과 가치에 따라 일상적 국정을 운영하는, 말 그대로 책임총리는 쉽지 않다”면서 “새 총리를 추천하면 그 총리가 대통령을 2선으로 밀면 되는 일이었다. 대통령이 그러한 선언을 했으면 야당은 과연 총리를 추천할 수 있었을까. 답은 독자 여러분이 내려주길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 권력>은 권력의 본모습을 통해 대한민국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선거라는 것이 이기고 지는 것에 매몰되는 전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권력을 쟁취하는 누구든 그들이 이긴 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국민에게 먼저 보여주고, 이것을 평가받는 선순환의 권력경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은 <대통령 권력> 마지막 문단이다. “혁명을 꿈꾼다. 대통령을 탄핵하는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이 모든 것을 바꾸는 날을 꿈꾼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