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이 신한금융 차기 회장 후보에서 자진사퇴했다. 연합뉴스
금융권에서는 일단 위 사장이 차기 신한은행장 자리를 염두에 두고 1보 후퇴를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이 이사회 장악에 성공하면서 위 사장이 판세가 기울었음을 감지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한금융 최대 인맥인 고려대 출신들의 위계질서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이 신한지주에서는 맏이 역할을 해왔고 또 조용병 신한은행장이 잘 해왔다. 당연히 그런 역할을 잘 한 분이 지주 회장이 되는 게 순리다.”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은 지난 19일 서울 태평로 신한금융 본사에서 열린 제3차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가 열리기 직전 갑자기 언론에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회추위 면접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하며 스스로 회장 후보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회추위원장인 이상경 변호사에 따르면 위 사장은 “신한의 미래를 위해 조 행장이 회장이 되는 게 순리”라며 “차기 회장을 도와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사퇴 사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회추위는 이날 조용병 신한은행장을 신한은행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택했다. 조 내정자는 강력한 라이벌인 위 사장이 자진 사퇴하면서 만장일치로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위 사장이 스스로 물러선 이유를 파악해 보려면 일단 그가 말한 ‘순리’와 ‘기여’의 속뜻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순리’는 조용병 행장과 위성호 사장의 그룹 내 서열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고려대 1년 선후배이자 신한은행 입행 1년 선후배이기도 하다. 1957년 생인 조 행장은 대전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1958년에 태어난 위 사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신한은행에 들어갔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신한금융 본사에서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 확정된 조용병 신한은행장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맡고 있는 계열사의 중요도 역시 서열 순으로 본다면 조 행장이 1순위, 위 사장이 2순위라고 할 수 있다. 신한금융그룹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계열사는 신한은행이며, 신한카드가 두 번째다. 이상경 위원장 역시 그룹 내 서열을 언급하면서 “신한금융에서 회장 다음은 행장, 카드, 생명 순”이라고 정리했다.
회추위가 원했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차기 회장을 은행장이 맡고, 은행장은 그 다음 서열인 카드 사장이 맡는 것이 곧 ‘순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초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한동우 회장이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 대해 “물 흐르듯 조용히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위 사장이 밝힌 사퇴의 변 중 두 번째 키워드인 ‘조직에 대한 기여’의 뜻도 자연스럽게 해석이 가능하다. ‘순리’와 ‘순서’를 지키고, ‘물 흐르듯’ 진행된다면 조 행장의 회장 취임으로 공석이 될 신한은행장 자리의 주인공 역시 같은 방식으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 사장의 자진 사퇴가 차기 신한은행장 직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위 사장이 조 행장에게 힘을 실어주며 ‘순리’를 따른 것은 다음 ‘순서’가 자신임을 알고 있어서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신한금융 안팎에서는 흥미로운 관측이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위 사장이 사퇴한 것은 이사회 멤버들이 주축인 7명의 회추위 내부 분위기상 이미 전세가 기울었음을 감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신한금융은 ‘신한사태’ 이후 한동우 회장이 취임할 때까지만 해도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의 인맥이 장악한 상태였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이 라 전 회장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된 신한사태는 라 회장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고, 신한금융 내부에서 ‘라응찬 계열’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이후 사태 수습 차원에서 중립형 인사로 선택된 인물이 한동우 회장이며, 한 회장은 역시 중립으로 분류되는 조용병 행장에게 신한은행을 맡기면서 탕평책을 썼다. 다만 신한금융 내외부에서는 한 회장이 라 전 회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구성된 이사회는 신한금융 내부의 권력지도가 달라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라 전 회장 계열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자취를 감췄고, 친 라응찬으로 평가되는 재일교포 주주들이 ‘소수 집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12명의 이사회 멤버 중 4명을 교체했다. 사외이사 3명과 기타비상무이사 1명을 선임했는데, 이 과정에서 권력의 무게추가 급격히 한동우 회장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12명의 신한금융 이사회 멤버 중 7명이 한동우 회장의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올해 선임된 남궁훈 기타상무이사는 한 회장의 서울대 선배이며, 박철 사외이사는 한 회장과 동문이다. 여기에 이만우 교수와 이상경 교수는 남궁훈 이사가 추천해 사외이사로 합류한 인물들이며, 이성량 사외이사는 박철 이사가 추천했다. 나머지 두 명은 조용병 신한은행장과 한동우 회장 자신이다.
반면 재일교포 주주들은 고부인, 이정일, 이흔야, 히라카와 유키, 필립 에이브릴 5명이다. 이 가운데 필립 에이브릴 BNP파리바증권 일본 대표는 이만우 교수가 추천한 인물이어서 그가 어떤 속내를 가졌을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결국 신한금융의 심장부인 이사회 12명 중 7~8명이 한동우 회장 측근인 셈인데, 이들 가운데 이번 회추위 7인에 한 회장을 필두로 이상경, 박철, 남궁훈 4명의 확실한 ‘아군’이 포진했다. 여기에 필립 에이브릴까지 포함시킬 경우 5명이 된다.
이렇듯 이사회와 회추위 권력 구도를 감안할 때 위성호 사장에게는 처음부터 가망 없는 싸움이었다는 것이 금융권 일각의 해석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위 사장이 자진 사퇴라는 카드를 던짐으로써 명예로운 퇴로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신한금융 전체 임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고려대 출신들의 ‘서열정리’가 한몫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한금융 내부의 고려대 출신 고위 인사는 조용병 행장과 위성호 사장을 비롯해 유동욱·허영택 신한은행 부행장, 김봉수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임영진·임보혁 신한금지주 부사장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조 행장이 가장 선배며, 위 사장이 두 번째로 학번이 높다. 따라서 선후배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유명한 고려대 출신 후배들이 위 사장에게 무언의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2인자인 위 사장이 ‘하극상’을 실행하기에는 이를 지켜보는 후배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