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판이 서서히 바뀔 조짐이다. ‘1일 1사고’ 희화화에 휩싸인 반 전 총장 비토론이 연일 확산하면서 ‘어게인 2012’ 구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문재인 vs 안철수’ 양자구도다. 18대 대선 땐 야권 단일후보를 놓고 경쟁했다면, 이제는 본선 양자구도다.
안철수 전 상임대표가 1월 20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의 설 이후 반전 카드는 ‘제3지대 빅텐트’다. 이른바 ‘2월 빅뱅을 위한 판 키우기’ 전략이다. 첫 번째 카드는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이다. 손 의장은 1월 22일 자신의 마지막 대권 승부수를 위해 정치결사체인 ‘국민주권개혁회의’를 띄웠다. 직후 양측은 연대 세력화를 위한 접점 모색에 돌입했다. 손 의장은 1월 24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당과의 연대, 연합도 곧 협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겠다’며 구애를 펼쳤던 국민의당은 손 의장의 화답으로 ‘원조 제3지대’의 위상을 고착할 수 있게 됐다.
한때 안 전 대표 측 내부에선 제3지대 연대보다는 ‘안철수 옹립’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때부터 최상의 조합으로 평가받은 손 의장과의 연대·연합을 통해 대선 판의 역동성을 키우는 게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세론’을 깨기 위해 판 흔들기가 불가피하다면, 제3지대의 주도권을 잡고 공격적인 정계개편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손 전 대표 측도 마찬가지다. ‘당 대 당’ 통합 후 경선이든, ‘연대 후 단일화’든 안 전 대표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내부 기저에 깔렸다.
이 판을 만든 것은 박지원 대표다. 당내 호남파가 자강론보다는 연대론에 힘을 실으면서 안 전 대표 측에 ‘패권주의’ 낙인을 찍을 때도 박 대표는 “안 전 대표는 우리 당의 자산”이라며 보호막을 쳤다. 박 대표 특유의 용병술로 당내 친안(친안철수)파도, 호남파도 끌어안았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차기 대선을 준비하던 호남 중진 의원이 출마의 뜻을 접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 한 보좌관은 “지지율 반 토막에 처한 안 전 대표가 믿을 것은 전략가인 박 대표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박 대표는 설 전후로 손 전 대표 측과의 연대 협상 전면에 나설 예정이다. ‘손 의장의 입당’과 ‘당 대 당 통합’, ‘선 연대-후 단일화’ 등을 놓고 양측의 고도의 수 싸움이 예상된다.
최근에는 안 전 대표와 호남파 의원들 간 전략적 제휴 정황도 엿보인다. 이들은 안 전 대표의 호남 공략 첫날인 1월 22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소맥(소주+맥주) 폭탄주’를 돌리면서 앙금을 씻었다. 안 전 대표가 폭탄주를 마신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박 대표와 안 전 대표를 비롯해 주승용 원내대표, 조배숙 정책위의장, 장병완 의원 등 5명이 함께했다. 안 전 대표는 12월 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측근인 김성식 의원이 주 원내대표에게 큰 차이로 패한 뒤 칩거에 돌입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자강론을 외친 안 전 대표가 연대론의 호남파에 포위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외부 위기론이 내부 결속으로 이어졌다. 반 전 총장의 정치 내공 부족으로 컨벤션효과는커녕 지지도가 더 하락한 데다 외교관 그룹(김숙·오준 전 유엔 대사) 내 불화설과 친이(친이명박계)계 그룹과의 갈등설이 끊이지 않자, ‘반기문 중도 포기설’이 확산됐다. 이는 ‘문재인 vs 안철수’ 양자구도 만들기를 위한 국민의당의 ‘전술적 지지대’지만, 반 전 총장의 잇따른 자책골로 ‘대망론’에 경고등이 켜진 것만은 분명했다. 친이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선거도 잘 모르는 이들이 앉아서 일을 망친다”고 비판할 정도다.
한때 반 전 총장에게 러브콜을 했던 박 대표도 반 전 총장을 향해 “반기문의 빅텐트는 빅텐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1월 21일 회동한 김종인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정치는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안 전 대표의 자강론 및 ‘안철수 대안론’이 제3지대의 변수로 재부상한 까닭이다.
일각에선 박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역할 분담’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표가 제3지대 정계개편 전면에 나서고 안 전 대표는 대선후보 행보에 집중하는 투 트랙이다. 안 전 대표는 설 전까지 대선 출정식을 열지 않았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서울 대학로 소극장 굿씨어터와 성남 오리엔트시계공장 등에서 각각 출마 선언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측근은 “안 전 대표는 대선 후보들이 출마 선언 등 이벤트에 집중할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다만 안 전 대표는 대선캠프의 얼개는 그렸다. 핵심은 ‘초선 정책라인-핵심 측근 중책-호남 중진 합류’로 요약된다. 캠프 대변인에는 이용주 의원, 비서실장에는 송기석 의원, 정책분야 실무 책임자급에는 채이배 의원을 각각 내정했다. 이들은 최근 서울 여의도 산정빌딩 캠프 사무실에서 정책 메시지 등을 논의해왔다.
2012년 대선 당시 ‘진심캠프’에서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박선숙·김성식 의원 등은 캠프 좌장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법률 전문가인 이상돈 의원을 비롯해 정기남 홍보위원장, 박왕규 ‘정책 네트워크 내일’ 부소장 등도 전진 배치된다. 호남파 중 안 전 대표와 가까운 박주선 의원 등 일부 호남파도 캠프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안 전 대표 측근인 오세정 의원은 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장’을 맡은 탓에 캠프 합류는 불가능하지만, 측면에서 정책 등을 지원 사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벌 개혁 등 이슈 선점에 승부를 건 셈이다.
남은 것은 인재영입이다. “유권자들은 세부적인 정책에는 큰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인물이다. 인물을 통해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게 정치에서 필요한 능력이다.” 야권 선거전략가의 말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영입이 문 전 대표와의 양자구도를 위한 ‘2차 퍼즐’로 꼽히는 이유다. 이른바 ‘안철수-손학규-정운찬’으로 이어지는 야권 발 제3지대 정계개편이다. 이 과정에서 안 전 대표가 정 이사장 영입을 ‘십고초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이사장에 대한 안 전 대표의 구애는 2013년 새정치연합 신당 창당, 2016년 국민의당 창당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13년 악연 탓에 양측의 결합은 불발됐다. 안 전 대표는 2013년 신당 창당 당시 측근을 보내 정 이사장 입당을 타진한 뒤 언론에 이를 흘리면서 정 이사장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치권 안팎에선 정 이사장 제자들이 안 전 대표와의 연대 등을 만류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안 전 대표의 삼세번 승부가 성공한다면, 중도층은 극대화되는 한편 ‘수도권(손학규)-충청(정운찬)-부산과 호남(안철수)’로 이어지는 트로이카 삼각편대를 형성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도 정 이사장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국민의당 승부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반 전 총장 귀국 전에는 ‘반기문 대망론’이 상수였다면, 이제는 2월 빅뱅설이 대선 구도의 상수”라고 밝혔다. ‘4말 5초’가 유력한 조기 대선의 최대 분수령인 2월 빅뱅설의 판도라 상자는 곧 개봉된다.
윤지상 언론인
‘캐스팅보트’ 민평련, 튀는 행동 주의보 발령 왜? 밀었던 주자마다 뒷심이 영~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계의 정신을 계승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내부 단속’에 나섰다. 애초 차기 대선 과정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통해 존재감 과시에 나설 것이란 예상을 깨고,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표명을 금기하는 일명 ‘튀는 행보 주의령’을 발동한 모양새다. 민평련 전신은 1999년 3월 발족한 국민정치연구회다. 민평련은 지난 대선 땐 당내 대선후보 토론회를 개최한 뒤 표결을 통해 손학규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현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를 공개 지지했다. 손 전 후보 측은 당시 ‘민평련 지지’ 선언 이후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가 멀지 않았다”며 한껏 고무됐다. 다수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그의 대선 슬로건 ‘저녁 있는 삶’과 함께 민평련 지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 ‘문재인 대세론’을 깨트릴 주자로 손 전 후보를 꼽은 바 있다. 민평련은 20대 총선 개원 직후인 지난해 6월에도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만찬을 시작으로 대선 주자들과 접촉면을 늘렸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평련이 ‘박원순 지지’의 플랜A와 ‘대선주자 감별사’ 플랜B 중 하나를 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조기 대선 정국에선 ‘철저한 중립’을 외치고 있다. 민평련 한 의원은 “정권교체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안 한다”며 “당의 후보로 선출되는 후보를 위해서 모두가 뛸 것”이라고 밝혔다. 표면적 이유는 ‘정권교체의 당위성’이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절대 명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국정농단 게이트 정국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이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의 후원회 밤에 참석한 민평련 소속 A 의원이 참석하자, 내부에서 적잖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훈 의원이 의장인 민평련의 현역 의원은 19명 정도다. 일각에선 ‘보수정권 10년 종식’에 힘을 집중하겠다는 전략 이외에도 민평련과 색깔이 비슷한 박 시장의 지지도가 하락한 것도 ‘철저한 중립’으로 선회한 요인으로 꼽는다. 민평련 일부는 범주류와 가깝지만, 친문(친문재인)계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간 민평련이 정치적 국면에서 주류 측과 협력과 긴장 상태를 오가는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지 않는 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박원순 시장은 1월 26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