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춘 k스포츠재단 전 이사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 전 이사장 임기는 지난 1월 12일로 끝났다. 하지만 상임이사 임기는 남아 있고 후임 이사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이사들 중 최고 연장자가 권한대행을 맡는다는 정관을 이유로 이사장 권한대행을 자처하고 나섰다.
정 전 이사장은 직원들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하고 권한대행직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달라며 소송도 제기했다.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전 이사장들이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자진사퇴했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정 전 이사장이 법정 싸움까지 불사하면서 이사장직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재단 직원들 사이에선 정 전 이사장이 재단에 계속 남아 증거인멸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닌지, 재단 돈을 빼돌리려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돈다. 한때 최 씨를 도왔던 재단 직원들은 현재 대부분 내부고발자로 변신했지만 정 전 이사장은 여전히 최 씨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정 전 이사장은 최순실 게이트 후 전경련 요구로 이사장직에서 사퇴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최 씨의 반대로 사의를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 전 이사장은 특검수사를 앞두고 대응방침 문건을 만드는가 하면 국회 청문회에서는 여당 의원들과 말을 맞췄다는 의혹을 받았다.
임기 만료를 하루 앞두고는 내부 고발에 나섰던 일부 직원에게 대기발령 등 징계조치를 내리려다 직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날 정 전 이사장은 자신이 데려온 박 아무개 씨와 정 아무개 씨를 각각 사업기획본부장과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임명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결국 정 전 이사장 측 일행과 내부 직원들 간 다툼이 벌어졌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이 있었다.
정 전 이사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재단 인감을 가져가 200억가량의 재단 예산을 개인 통장으로 옮겨놓기도 했다. 한 재단 직원은 “어느 날 갑자기 필요경비 등을 지급하던 통장이 해지됐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정 전 이사장이 재단 돈을 자신의 통장으로 옮긴 것”이었다며 “정 전 이사장이 그 돈을 어떻게 써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은행 측에 곧바로 상황을 설명하고 지급정지를 해놨지만 일시적이다. 은행에서는 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든지 이와 관련한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 못하면 지급정지를 풀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이사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모든 사업이 중지된 상황에서 쿠바에 태권도장 설립을 추진하려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다른 재단 직원은 “재단 설립 목적이 인재양성, 소외계층 체육활동 참여 확대 등인데 쿠바에 태권도장을 설립하는 것은 재단 목적과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항의하자 ‘너희는 시키는 대로 하라’며 강압적으로 말했다”면서 “문체부에서도 모든 사업을 축소하라고 공문이 내려온 상태에서 왜 갑자기 쿠바에 태권도장을 설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재단 직원은 “정 전 이사장은 아침마다 자기는 출근했다. 우리가 불법점거를 하고 있다. 이런 식이다. 법적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의 문자도 직원들에게 매일 보내고 있다”며 “법인 차량 차키도 안주고 통장 새로 만들면서 법인 카드도 새로 만들어 달라고 신청을 해놨더라. 정 전 이사장을 방치한다면 재단 돈으로 무슨 일을 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동춘 전 이사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문자.
재단 직원은 본인에 대한 해임 안건 표결에 본인이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사장 선임 과정이나 재단 운영 내용을 볼 때 정 전 이사장이 재단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정 전 이사장은 재단 예산을 개인 통장으로 옮긴 것에 대해서는 “제가 판단할 때는 현재 직원들이 불순한 세력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이 든다. 재단 직원들이 일부 야당의원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서 “얼마 전에 문체부에서 구조조정을 하라고 공문이 왔는데 재단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노승일 부장을 중심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이사장 물러나라는 이야기만 하고 모든 업무는 정지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 사람들에게 재단 운영을 맡길 수 없어 일단 자금을 동결하기 위해 돈을 옮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쿠바에 태권도장을 세우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외부에서는 재단이 놀면서 돈만 가져간다고 난리다. 재단이 해산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만약 정상화가 되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닌가”라며 “구조조정은 싫다고 하고, 자기들 월급은 한 푼도 깎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상임이사 임기가 끝나면 재단에서 손을 뗄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사는 연임이 가능하다. 그때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정 전 이사장은 “아직도 최 씨가 저를 통해 재단을 좌지우지하려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된다. 지금 감옥에 있는데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저는 그냥 불순 세력에게 재단을 넘겨 줄 수 없기 때문에 버티는 거다. 불순 세력이 재단을 잠식해가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