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하는 법률가 시국농성단’은 지난 20일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 중이다. 여다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21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13차 촛불집회에서는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요구와 함께 이 부회장과 사법부에 대한 규탄이 이어졌다. 이어 23일에는 법원 앞까지 촛불민심이 번졌다. 법률가 노숙농성단과 시민들은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규탄 및 영장재청구 촉구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국강연에서 “내가 이러려고 법을 공부하고 가르치나 자괴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법률가들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분노해 행동에 나선 이유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앞서 ‘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하는 법률가 시국농성단’은 지난 20일 오후 1시 서초동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으로 포장한 거짓을 발가벗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률전문가들인 법률가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법원의 결정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얼마나 거짓으로 위장돼 있는지 낱낱이 고발함으로써 공분을 모아야 한다”며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장 옆 게시판에는 한 시민이 싸인펜으로 조의연 판사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여다정 기자
이들이 ‘노숙농성’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한 이유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류하경 변호사는 “오죽 화가 났으면 거리로 나왔겠나. 저희는 판결에 원칙적으로 복종한다. 변호사들만큼 판결에 복종하는 직업군은 없다. 그러나 의사표시를 확실히 해야 한다. 너무나 기가 막힌 상황이다. 법리적으로 왜 잘못됐는지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삼성이 430억이나 되는 액수를 대통령 최측근(최순실)에게 전달한 이유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도 법원이 대가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될 수 없는 판결이다. 헌정 이래로 이렇게 참혹한 재판은 없다. 그래서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가 있는 권력자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임기도 없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다. 그런데 이에 법원 판사가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사법부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변호사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농성장 옆 텐트에 세워져 있는 손팻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와 발부를 촉구하고 있다. 여다정 기자
이번 노숙농성 제안에는 200여 명의 법률가가 참여했다. 지방에 있거나 강의나 재판이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순번을 짜서 돌아가며 천막을 지킨다. 변호사, 법학 교수들 위주로 구성된 법률전문가들인 만큼 매 저녁 릴레이 거리강연 등을 통해 법원의 잘못된 결정의 대중에게 법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법률가들이 법원 앞에서 이 부회장의 영장기각에 반발해 노숙농성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반 시민들이 방한용품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농성장을 찾은 시민들은 격려와 함께 핫팩부터 발전기까지 다양한 물품을 전달했다. 천막 텐트 옆에는 ‘행동하는 양심에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화환도 놓여 있었다.
자신을 ‘촛불’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빵이 가득 담긴 봉투를 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천막 안으로 들어온 여성은 “추운데 고생하신다”며 빵 봉투를 건넸다. 그는 어려운 결정을 한 법률가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전했다.
한편, ‘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하는 법률가 시국농성단’은 25일까지 농성과 강연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류하경 변호사는 “25일 농성을 끝낸 뒤 가족들과 함께 설 연휴를 보낼 예정이다. 현재 설 이후의 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