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에 태어난 폴 루벤스는 어릴 적부터 코미디에 관심을 가졌고, 지방 무대를 거쳐 1981년에 자신이 창조한 ‘피위 허먼’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운 <피위 허먼 쇼>를 HBO 방송에서 시작했다. ‘미스터 빈’을 연상시키는 ‘피위 허먼’은 이곳저곳을 누비며 대형 사고를 치는 인물로 독특한 분장과 악취미적인 행동 등으로 유명했다. 1984년까지 이어진 <피위 허먼 쇼>는 큰 인기를 끌었고, 팀 버튼 감독은 그를 주인공으로 <피위의 대모험>(1985)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 <피위의 플레이하우스>라는 TV쇼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80년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미디언 중 하나였다.
공공장소 자위행위로 ‘주홍글씨’를 새긴 루벤스. 그는 몇 년 후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또 한번의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일어난다. 1991년 7월, 루벤스는 친척을 만나러 플로리다의 사라토가로 간다. 이곳은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같은 도시였다. 이때 그는 다운타운의 성인영화 전용관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다가 적발되었다. 이 지역 경찰들은 종종 극장 순찰을 돌며 경범죄자를 잡곤 했는데, 폴 루벤스가 걸린 것이다. 루벤스는 몰래 도망치려다 극장 뒷문에서 잡혀 체포되었다. 루벤스 외에 세 명이 더 있었다.
보안관 사무소에 운전면허증을 제출한 루벤스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경찰에게 “난 피위 허먼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자 루벤스는 사무실 경찰들과 직원들을 위한 자녀생활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하면서 곤경을 벗어나려 했다. 다음 날 지역 신문인 <사라토가 헤럴드 트리뷴>의 기자가 루벤스의 체포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러자 루벤스의 변호사는 기자에게 루벤스와 같은 방법을 썼다. 신문사에 자녀생활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 그러나 빠져나가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과거의 일도 들춰졌다. 루벤스는 미성년자 시절 성인 영화관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체포된 적이 있었지만 구속되진 않았다. 1983년엔 마리화나 소지로 체포되어 2년 동안 보호 관찰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경미한 사안들이었는데, 공공장소에서의 자위행위는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고, 루벤스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즉각적인 조치도 잇따랐다. 디즈니 스튜디오 투어에 등장하던 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대표적인 토이 숍인 ‘토이즈 R 어스’에선 피위 허먼 캐릭터 인형을 치워 창고에 처박았다. 안 그래도 위기를 겪던 <피위의 플레이하우스>는 폐지되었다.
처음에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던 루벤스는 결국 모든 걸 인정했다. 법원은 75시간의 사회봉사와 함께, 약물 반대 공익 광고를 직접 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디 로퍼, 아네트 퍼니셀로, 자 자 가보, 발레리아 골리노 등의 동료 연예인들이 지지 선언을 했고, 이후 ‘성폭력의 황제’임이 밝혀지지만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빌 코스비는 “사실 루벤스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루벤스를 감쌌다. 대중들도 그를 옹호했다. CBS에서 루벤스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취소하자 루벤스의 팬들이 몰려가 항의했다. LA와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피켓 시위가 이어졌다. 급기야 TV 뉴스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90퍼센트가 루벤스를 지지했다.
기현상이 일어났다. 루벤스는 추잡한 행동을 통해 다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토크쇼에 나갔고, 1991년엔 MTV 뮤직 어워즈에 시상자로 나타나 “최근에 재밌는 조크를 들은 적 있으셨나요?”라며,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누가 웃기냐는 식의 이야기로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곧 컴백했고 <배트맨 2>(1992)에선 펭귄들의 아버지로 나왔고 TV 쇼에도 등장했다. 2001년엔 게임 쇼 진행자가 되었고, 꾸준히 영화에 개성적인 캐릭터로 등장했다.
그런데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왔다. 2001년 11월이었다. 당시 그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엘튼 존의 ‘This Train Don‘t Stop There Anymore’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었다. 이때 경찰은 수색영장을 들고 루벤스의 집에 들어왔다. 그의 집엔 7만 점에 달하는 온갖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 속에서 경찰은 낡은 비디오테이프 두 개와 10여 장의 사진을 압수했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그것은 아동 포르노그래피였고, 사진도 미성년자들의 성행위를 담은 것이었다. 루벤스의 대변인인 켈리 부시는 로브 로우의 몰카 포르노와 오래된 빈티지 포토라고 반박했다.
루벤스는 다시 법정에 섰다. 중요한 건 검사든 피고든, 그날 압수한 물품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밝히진 않았다는 사실. 2004년 3월에 아동 포르노 소지에 대한 혐의를 벗긴 했지만, 폴 루벤스는 이후 3년 동안 거주지를 옮길 경우 지역 보안관에게 반드시 거처를 알려야 했고, 부모들의 동의가 없으면 아이들이 있는 곳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후 어느 토크쇼에서 자신에겐 호모섹슈얼 이미지나 헬스 매거진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며 당시 일이 해프닝이었다고 밝혔던 폴 루벤스. 어떻게 보면 그에 대한 공권력의 다소 과한 의심은, ‘이상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연예인에 대한 편견은 아니었나 싶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