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왕십리 한국기원 4층에 있는 연맹 사무실에서 신임회장을 만나 보았다. “얼떨결에 중책을 맡게 되었어요. 걱정입니다. 할 일이 많을 텐데 과연 능력이 따라줄지….”
김말순 회장은 앞서 회장을 역임했던 아마추어 여류바둑계의 전설 김혜순 여류국수와 자매지간. 두 사람은 여성바둑연맹 탄생 시부터 고락을 함께했고 이번에 언니에 이어 또 한 번 여자 바둑계의 중책을 맡은 셈이 됐다.
김말순 여성바둑연맹 신임 회장은 “여성 바둑이 살아야 바둑계가 흥한다”고 말했다.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널리 바둑을 보급하고 있다. 1974년에 창설됐으니 4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단체다. 최근에는 여성 바둑강사를 양성하고 건전한 바둑문화 조성에 이바지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회원들은 여성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바둑을 통해서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로가 아니면서도 오랫동안 바둑과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둑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대부분의 바둑계 사람들이 바둑 연구에 매진하다 업으로 삼은 것과는 달리 나는 친언니가 여류국수 8회 우승한 김혜순 7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기원, 바둑협회 등과 인연을 맺었다.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바둑과 계속 가까이했고 나중에는 초등학교 바둑강사로 일하면서 여성바둑연맹과의 인연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특히 10년 전부터 유럽 각지에서 열리는 바둑콩그레스에 많이 참여했는데 바둑과 함께하는 여행이 참 멋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바둑과 함께하는 인생을 주위 분들에게 권하게 됐고 여기까지 이르게 됐다.”
―한국여성바둑연맹 회장으로서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최근의 문화, 스포츠, 게임 등의 트렌드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많은 부분을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쉽게 말하면 여성들의 관심을 끌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으로 남성들의 관심도 따라가기 마련인데 바둑은 지금까지 그런 흐름에서 동떨어진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이제 여성바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하긴 <미생>이나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를 통해 여성들의 바둑 진입 장벽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바로 그렇다. 사실 바둑은 일반 스포츠처럼 힘이 많이 필요한 종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여성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여성의 바둑에 대한 관심도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알파고의 출현도 따지고 보면 여성의 바둑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얼마 전 열렸던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사회자가 ‘최근 방과 후 학교 바둑부에 학생들이 줄을 설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 그렇다. 지난 20여 년간 현장을 지켜왔지만 학교 바둑부가 이렇게 성황을 이룬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말순 회장은 임기 내에 여성바둑 대축제를 개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방과 후 학교’는 얼마 전까지 ‘특기 적성’ 교육이라고도 불렸던 것인데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선택을 반영하여 수익자 부담 또는 재정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정규수업 이외의 교육 활동이다. 여기에는 바둑 외에도 많은 종목이 들어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바둑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여성의 비율이 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학생이 스무 명에 한 명꼴로 숫자가 적었지만, 지금은 5명 이상이 될 정도로 수가 늘었다.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와서도 바둑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성바둑연맹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회장으로서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임기 내에 반드시 이뤄야 할 일로 ‘여성바둑 대축제’를 여는 것이다. 유치원생부터 할머니까지 취미로든 치매 예방 차원이든 상관없이 바둑을 아는 모든 여성이 참여해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 또 하나는 세계여자바둑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과거 일본에서 한 차례 열린 후 중단된 것으로 아는데 프로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닌 여성 아마추어도 많고 큰 대회가 생기면 아무래도 동기부여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바둑축제가 임기 내 이루겠다는 목표라면 세계여자아마바둑대회는 이루고 싶은 꿈이다.”
―여성 바둑인과 바둑계에 한마디를 한다면.
“이제 문화 트렌드의 중심은 여성이다. 바둑 실력은 남성이 리드하더라도 바둑문화 보급은 여성을 잡아야 한다. 남자 10명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보다 여자 한 명에게 가르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여성바둑연맹은 전 세계에 하나뿐인 단체로 전국 26개 지부가 1년 365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후원처가 부족해 자생력을 갖추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 여성들을 위한 각종 대회나 해외 교류를 위해 바둑계와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 바둑에 대한 여러 호재로 제2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는 이 시기에 여성 바둑보급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