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서 연구원이 페인트에서 납성분이 기준치보다 160.56배 초과 검출된 킥보드를 보여주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안전한 제품을 널리 쓰이게 한다는 정부의 도입 취지에는 대다수 국민들도 공감한다. 그러나 속옷·양말·벽지 등 일상적으로 쓰이는 967개 품목이 규제 대상이라는 점은 도를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이미 수입 국가의 안전기준을 통과한 제품에 대한 KC인증 의무 부과는 이중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직구(직접구매) 대행 등 영세소상공인에게 타격이 불가피할 거란 원성이 들끓고 있다.
전안법은 KC인증의 소관기관인 국가기술표준원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아이디어다. 소상공인들의 집단 반발과 국회의 문제제기가 있자 일부 품목은 1년간 유예하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일단은 전안법을 밀어붙인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2014년 세월호 사태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별다른 안전 규제가 없었던 의류·잡화 등 제품에도 전안법을 도입한다고 입법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발생할 규제 영향 평가도 없이 이 법이 추진되면서 인증기관의 먹거리 창출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실제 이 법이 시행되면 빨래집게나 메모지 등 간단한 생활용품을 수입할 때도 제품마다, 품목마다 KC인증을 받아야 한다. 예컨대 와이셔츠 3종류와 넥타이 5종류를 수입하는 경우 총 8종의 물품 각각에 대한 KC인증이 필요하다. 의류의 KC인증 비용은 건당 20만∼30만 원 든다. 30개 품목을 취급한다면 KC인증 비용만 600만~900만 원에 달한다.
이를 어기고 판매할 경우 최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나이키’나 ‘폴로’ 의류의 병행 수입이 까다로워진다는 뜻이다. 여러 품목을 소량 들여와 판매하는 수입 소상공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수입 물품은 물론 동대문 등지에서 옷감을 떼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나 오픈마켓 등 온라인쇼핑몰도 규제 대상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의류·이불·신발 등 섬유제품은 이미 KC인증 대상인 경우가 많다. KC인증 품목을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KC인증서를 보유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업계의 실상을 헤아리지 않은 ‘규제 편의주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영세 병행수입상은 “의류나 생활용품이 신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만큼 위험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만약 안전상 문제가 있는 제품의 경우 이미 현지에서 안전 검사를 끝난 제품이라 결과적으로 정부의 이중규제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인 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거센 반발 속에 정부는 생활용품은 1년간 유예기간을 뒀지만, 의류는 원안대로 추진한다.
전안법 시행은 결과적으로 온라인 오픈마켓과 영세소상공인에게는 피해를, 백화점·마트에는 반사이익을 주는 결과로 이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인터넷 쇼핑 사이트는 대부분 규제 대상이라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에 비해 국내 대형 백화점과 면세점·마트 등은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만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의 이런 강경한 태도가 결국 면세점 등 대기업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낳고 있다. KC인증 비용 부담은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온라인 마켓의 가격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오픈마켓 관계자는 “직구와 직구대행, 온라인의 유통채널이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것을 정부와 대기업이 불편해 했다”며 “특히 일부 소셜커머스 업체가 물류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위기감을 느낀 기존 대형 유통업체가 조직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트위터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전안법은 정부의 시행령·시행규칙으로, 앞으로 국회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밝혀 개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서광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