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 다공대학교에서 ‘한국어 캠프’를 이끄는 진기선 교수. 미얀마 시를 학생들과 공동으로 한국어로 번역중이다.
오늘 수업은 좀 특별하게 진행합니다. 이 시인의 시를 칠판에 적고 진 교수와 학생들이 같이 영어와 한국어로 각각 번역하는 일입니다. 시인이 직접 해설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시를 모국어로 직접 써보는 시간도 있습니다. 저도 참여하여 미얀마의 좋아하는 시를 한국어로 소개합니다. 이제 수업이 시작됩니다. 시인이 시집을 건네주고 한 학생이 칠판에 시를 씁니다. 먼저 영어 번역작업이 다른 칠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한국어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시의 리듬을 잘 잡아서 간결하게 끝이 납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 시에 쓰인 존칭어 때문입니다. 쉽고 간결한 시인데 할아버지, 아버지와 자신의 3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어는 존칭이 없어 쉽게 넘어갑니다. 다음은 시의 전문입니다. 제목은 ‘3대’입니다.
국문과 교수인 민진뇨 시인이 학생들이 자신의 시를 번역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농부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농장에서 돌아가셨다/ 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그래도 사원에서 공부해서 이름 정도는 쓰셨다
아버지도 농부였다/ 할아버지 농장에서 돌아가셨다/ 초등학교까진 다니셨다/ 머리를 짧게 기르셨고 술을 조금 드셨다
나도 농부다/ 긴 머리에 청바지를 입는다/ 술집도 다니고 비디오도 본다/ 대학시험에 2번 낙방했지만 아직 농장에서 죽진 않았다
작년에 우리 농장에 고속도로가 들어왔다/ 그래도 나는 실망하진 않는다/ 지금 나는 인력거를 몰지만.
인력거를 탄 시인과 인력거를 끄는 한 청년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시인은 이 시를 12년 전에 썼다고 합니다. 평범한 이웃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인은 대학에서 미얀마 문학을 강의합니다. 시의 음악 같은 리듬감은 학생들이 충분히 느낀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미얀마 시를 설명하는데 메타포(Metaphor) 즉 은유가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예를 듭니다.
‘하늘이 울고 있어요’ 하면 무슨 뜻이죠?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비가 온다는 거죠”(이것은 영화 <일포스티노>에서 시인 네루다가 우편배달부에게 은유를 가르치는 대목). 그럼 ‘들판의 모든 나무들이 손뼉을 칩니다’ 하면 무슨 뜻이죠? 학생들이 주저하며 대답합니다. “바람이 분다는 건가요?”(이 귀절은 성경 이사야서 55장 12절로 ‘기쁨’을 표현하는 대목). 네, 맞아요. 바로 그게 메타포입니다.
편지 74번에 소개된 디디. 그룹 ‘엑소’의 사인이 담긴 최근 앨범을 받고 울고 말았다. 카이의 앨범도 따로 들어 있었다. 오랜 꿈을 이룬 디디가 한국 독자가 선물한 생활한복을 입고 ‘찰칵’.
공동번역, 시인의 낭독, 미얀마 시 소개 등 진 교수의 진행으로 수업이 끝났습니다. 진 교수가 시를 모국어로 직접 써보는 숙제를 냅니다. 하지만 오늘은 숙제도 있지만 선물도 있습니다. 새해 아침 제가 편지 74번에 소개한 ‘스무 살 디디’에게 아주 기쁜 일이 생겼습니다. 가수그룹 ‘엑소’의 멤버들의 사인을 담은 최근 앨범과 선물들이 미얀마로 왔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디디에겐 엑소의 카이가 직접 사인을 한 앨범도 들어 있습니다. 디디의 소박하고 절실한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거짓말처럼. 만달레이 저희 교육센터에서 보조교사로 근무하는 디디는 주저앉아 울고말았습니다. 머나먼 이국의 시골소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 그룹 ‘엑소’에 지면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아주 바쁜 해외일정이라는 얘기도 전해들었기에 더욱.
한국에서 온 새해 선물은 지금 수업을 받는 대학생들도 받고 싶은 선물입니다. 선물을 양곤의 대학생들에게도 나누고 이제 제가 일하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고속버스에 오르며 문득 오늘이 새해라는 걸 깨닫습니다. 서울은 설 연휴라는 걸. 서울은 저에겐 이제 ‘메타포’ 같은 곳입니다. 비처럼 바람처럼, 신기루처럼 제 삶의 ‘그리운 메타포’로 거기 있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