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의민주당의 권역별 순회경선 1순위인 호남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세론을 이어갈지 다른 후보의 부상으로 이변이 일어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신문] ‘탄핵·특검’ 정국으로 19대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각 당의 대선 일정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권역별 순회경선이 1순위로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에서 치러진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첫 관문인 호남 경선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호남 경선은 15년 전, 2002년 대선에서 불과 ‘5%’ 지지가 견고한 대세론을 꺾는 파란의 시발점인 이른바 ‘노풍(盧風)’의 진원지였다. 조기대선 정국에서 호남 민심은 야권의 대권 구도에 ‘태풍의 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결정적 순간에 폭발, 거대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 정치지형의 흐름을 단숨에 바꿀 만한 ‘제2의 노풍’이 이번 민주당 호남경선에서 재연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후보 경선 룰을 확정하고 지난달 31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경선 국면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대선 후보 경선을 호남·영남·충청, 수도권+강원+제주 등 4개 권역에서 실시한다. 권역별 경선의 첫 관문이 호남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호남이 야권의 심장이라는 점에서 호남 민심의 향배는 전체 경선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호남 권역의 경선 시기는 헌재 탄핵 결정 시기와 연동된다. 2월말 인용 결정이 나면 3월 초순에, 3월 초순에 결정이 이뤄진다면 3월 중순에 경선이 치러진다. 호남 경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지속될 것인지 여부가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경선구도에서 문 전 대표의 독주체제 속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벌이는 2위 싸움이다. 이들은 결선투표제가 실시되는 만큼 일단 결선에 오르면 비문재인표를 흡수해 막판 역전극을 펼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세를 상당 부분 가져간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점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 호남경선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민주당은 문 전 대표의 상대적 취약지역인 호남을 순회경선 1순위로 선정했다. 이재명 시장, 혹은 안희정 지사가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을 위협할 정도로 선전을 한다면 호남민심은 또 한 번 요동을 칠 수 있다. 호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노풍’을 이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현도 가능하다. 호남경선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인 이유다.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극적인 선거는 2002년 대선이었다. 무명의 노무현 후보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 대세론이 도도한 가운데 경선 돌입 전 민주당 노무현 고문의 지지율은 고작 5~7%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해 3월 16일 ‘광주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노무현 후보가 1위를 차지한 뒤 여론은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풍(노무현 바람)’이 급속히 힘을 얻어가면서, 4월 1일 동아일보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노무현 고문이 이회창 총재와 양자대결에서 45.3% 대 34.6%로 10.7%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선, 그것도 광주 경선 하나로 이인제 대세론은 물론, 이회창 대세론까지 한꺼번에 깨는 ‘1타 2피’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그때 이후 흔히 ‘노풍’이란 대세론 붕괴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그렇다면 이런 경선 기적이 이번 호남 경선에서도 일어날까. 이를 놓고는 견해가 엇갈린다.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문 전 대표의 ‘내공’이 드러나면서 바람이 꺼질 것이란 전망과 신진에 대한 ‘갈망’이 경선 열기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이변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양립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 측은 이번 호남 경선에서 노풍 재연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경선 방법은 완전국민경선제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은 지지자들을 선거인단에 참여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호남에서는 조직이 가장 큰 문재인 전 대표가 유리하다. 지지율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호남 지역 경선에서 문 전 대표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호남 지역위원장들도 문재인 전 대표 지지 성향을 보이고 있다. 대세론에 편승한 분위기도 있지만 정치적 현실이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느냐가 관건”이라며 “호남에서의 과반 이상의 지지를 실현시켜 문재인 바람을 공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한 광주시의원도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국민적 관심사와 큰 현안이 있어 경선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토 정서도 여전하다는 점에서 이변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야권의 대선 판도는 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가 앞서가고는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인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호남 민심 저변에 아직 ‘반문’(반 문재인) 정서가 남아있어 민주당의 호남지역 경선에서 과거 ‘노풍’과 같은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해석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진보 외에도 보수층 지지세를 얻으며 최근 약진하는 모양새다.
적어도 문 전 대표가 압도적으로 승리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시선이 나온다. 이 시장과 안 지사, 양측 모두 문 전 대표를 50% 아래로 묶고 2위를 차지한다면 일발 역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가 과반을 넘지 못하고 2·3위 후보의 지지율 합계가 50%를 넘을 경우, 결선투표제 변수로 인해 경선 판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어느 후보가 2위를 차지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득표력을 보일 것인지도 변수다.
대세론 붕괴를 원하는 민심도 엿보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역민은 전면적인 국가 대개조 또는 대수술을 갈망한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인물보다 기득권을 타파할 인물을 원한다. 당연히 새로운 인물에 대한 욕구도 강할 것이다. 치열한 경선 과정에서 이미 형성된 ‘문재인 대세론’이 깨지는 이변 또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반문 정서도 이 같은 전망에 한몫하고 있다. ‘문재인은 싫고 안철수는 못미더운’ 호남인들은 새로운 주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안희정, 이재명 후보를 바라보는 호남 민심의 흐름이 만만치 않다. 촛불정국에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떠오른 이재명 성남시장은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세를 상당부분 가져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들어 호남 민심은 최근 하강 추세인 이 시장보다 약진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에 더 주목하는 모양새다. 만약 안 지사가 이 시장의 지지율을 추월할 경우 문 전 대표와의 결선투표 시 제2의 노풍도 예상되고 호남민심은 이를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크다.
안 지사는 전통적 야권 지지층인 진보층 외에도 보수층에서 지지세를 얻고 있다는 점, 사퇴한 반 전 총장을 이어 충청대망론을 이뤄줄 수 있는 야권의 대안이라는 점 등도 주목을 받는 대목이다. 실제로 문 전 대표 캠프 내에서는 이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안정된 이미지의 안 지사가 경선에서 2위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호남에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경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의 비문 정서가 강해지거나 타 후보가 치고 나온다면 과거 노풍(노무현 바람)과 같은 이변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사위는 다 굴러가지 않았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번에도 2002년처럼 ‘문재인 대세론’을 단번에 깨는 인물이 야권의 심장부에서 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