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 멤버가 본업인 가수로서의 활동보다 예능, 드라마, 영화 등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에는 개인 팬덤이 “내 새끼는 아이돌 그룹에 갇혀있어야 할 그릇이 아닌데 다른 비인기 멤버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오히려 같은 그룹에 소속된 다른 멤버들을 공격하는 촌극까지 벌이기도 한다. 라이벌 그룹과 맞서기 위해 ‘올 멤버(All Member) 팬덤’을 앞세우던 초창기 아이돌 그룹 팬덤과 요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이 정의한 악성 개인팬의 유형.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에 맞선 다른 멤버들의 개인 팬덤은 “오히려 팬덤 내에서 ‘악개’라고 불리는 것은 지금 나서서 형사 고소를 운운하고 있는 쪽”이라며 “회원수를 무기로 다른 비인기 멤버들을 비난하고 소수 팬덤을 찍어 눌렀으면서도 자신들이 한 짓은 입을 닫고 또 다시 절대 다수의 강제력을 동원해 팬덤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NS 댓글 테러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다른 멤버들에게 한 인신공격이나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묵인하면서도 그 반대 입장이 되자 이를 그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보고 문제 삼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인기 멤버와 비인기 멤버 개인 팬덤 간의 알력 다툼으로 인해 갈등이 깊어져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90년대~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1~2세대 아이돌 그룹의 팬덤은 ‘올 멤버’를 지지하는 것을 기조로 삼아왔다. 자신이 애정을 쏟는 개인 멤버가 있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하나의 완성된 그룹을 더 우선해 왔다는 것이다. 어느 한 멤버가 계약상 또는 일신상의 문제로 탈퇴한다는 풍문이 퍼질 때에는 팬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나 ‘(아이돌 그룹 멤버의 숫자)-1=0’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연예기획사 앞에서 데모를 열기도 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것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 3세대 이상의 아이돌 그룹의 팬덤은 이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팬덤의 온라인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개인 멤버를 지지하는 팬들의 커뮤니티가 그룹 전체를 지지하는 커뮤니티보다 압도적인 숫자로 늘어났다. 이런 개인 팬들은 트위터 등 SNS를 이용해 자신과 같은 멤버를 좋아하는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면서 더 큰 숫자로 불어났다.
이들이 사랑하는 개인 멤버 역시 자신을 지지하는 커뮤니티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SNS를 통해 이들과 직접 소통을 하는 일도 늘어났다. 개인 멤버에게 애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만큼 상대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리액션도 커지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개인 팬들로서는 그룹 전체에 대한 애정보다는 ‘내 새끼’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처럼 철저하게 ‘내 새끼’에 애정을 쏟다보니 이들에게 다른 멤버들은 ‘계약 상 어쩔 수 없이 같은 그룹에 묶였을 뿐인 철저한 남’이 돼 버렸다. 여기에 더해 유통기한이 짧은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활동은 ‘내 새끼’에게 있어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새끼’라면 그룹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인기를 얻고 활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과 비인기 멤버들로 인해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한다. 일부 개인 팬덤이 비인기 멤버들에게 실제로 욕설을 퍼붓거나 루머를 유포하는 등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가 이런 피해 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개인 멤버 팬이 같은 그룹의 다른 멤버에 대해 비난 글을 올렸다. 네이버 블로그 캡처.
200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서울의 한 중소 연예기획사에서 근무했던 정 아무개 씨(여·39)는 최근 아이돌 개인 팬덤의 기조에 대해 “아이돌 가수로서의 인생이 끝나더라도 인기 멤버라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분야가 얼마든지 널려있기 때문에 굳이 그룹 전체를 지지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씨는 “과거의 아이돌 그룹은 그룹이 해체되고 나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나마 인기 멤버들도 솔로 가수나 새로운 분야로 활동하더라도 아이돌로 활동했을 때만큼의 인기를 되찾긴 어렵고 아예 잊히기 일쑤”라며 “그런데 최근 아이돌 그룹은 인기 멤버들을 ‘만능 엔터테이너’로 키우고 있기 때문에 개인 팬덤으로서는 굳이 비인기 멤버들과 계약이 끝날 때까지 아이돌로 있는 것보다 먼저 탈퇴하고 노선을 바꾸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재는 해체한 한 인기 아이돌의 팬페이지를 운영해 온 김 아무개 씨(여·32) 역시 같은 의견을 보였다. 김 씨는 “실제로 아이돌로서의 실력도 떨어지고 딱히 다른 분야로 나갈 만큼 능력도 되지 않는 비인기 멤버의 팬들이 ‘인기 멤버의 발목을 잡는다’라며 팬덤 내에서 받는 박해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옛날에는 라이벌 그룹의 팬덤과 치고받고 싸웠다면 지금은 팬덤 내부에서 같은 그룹 팬과 싸워야 하는 판이다. 오히려 비인기 멤버들의 개인 팬덤에 가장 큰 적은 인기 멤버의 팬덤이라고 말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