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든, 19대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거대한 공백이 불가피하게 생겨났다. 반 전 총장을 지지했던 중도보수파는 갈팡질팡하며 이곳저곳으로 분산되고 있다. 일부는 무당파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그를 두고 여권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짚어본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당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두 자릿수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언론은 그의 출마 의지를 묻는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를 고수하며 소이부답(笑而不答·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음)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청취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2일 하루만 해도 그랬다. 그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단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모든 질문에 웃었다. 그리고 그는 이날 공식행사만 5가지 이상을 수행했다. 제12차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서울청사)→국회 본회의 참석→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오찬(삼청동 총리공관)→스마트공장 방문(경기도 안산 반월시화 산업단지)→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 장관 접견까지.
트럼프 미 행정부는 국방 장관의 첫 국외 방문지로 대한민국을 택했다. 대북관계, 사드배치. 한미동맹 등 광범위한 대화가 오간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렇게 황 권한대행은 민생과 국방·안보를 오간 광폭행보를 이어갔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그 권한을 최소한도 속에서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이어가고 있다.
야권은 경계하기 시작했다. TV를 틀면 나오고 신문을 들면 등장한다. 그렇다면 황 권한대행은 대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로부터 최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해 일이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임되고 황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누군가 ‘혹시 모르니 황 총리도 (대선 출마)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기각결정을 예상보다 빨리 하게 되면 새누리당은 후보가 없으니 황 총리를 내세울 수도 있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그런데 황 총리가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라고 하는데 아이고 그 표정이나 눈빛이 아주 뭐랄까 환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다들 돌아오는 길에 ‘아, 황 총리가 (출마) 생각이 아예 없진 않구나’ 했지.”
박근혜 대통령이 소속된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 탄핵 인용을 전제로 한 대선 준비가 어렵다. 모시는 상사가 다음 인사에서 잘못될 것을 염두에 두고 다른 데 줄 대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래서 새누리당 어느 누구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고 있지 못하다. 정우택 원내대표, 원유철 전 원내대표에서부터 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등등까지 대망론자들이 숨죽이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최근 인 비대위원장이 말한 “우리도 옥동자가 있다”고 한 주인공이 황 권한대행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인 비대위원장과 황 권한대행이 독대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설 연휴 마지막 날 인 비대위원장과 황 권한대행은 실제로 만났을까.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인 비대위원장과 접견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공식적으로는 “만날 시간이 없었다”다. 하지만 “만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대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한 고위 당직자는 “뉘앙스는 뭘 그런 걸 그리 직접 묻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 하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황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려면 대선 전 30일 전에만 그만두면 된다는 법률 검토도 끝냈다. 한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의 반사이익이 황 권한대행의 몸집을 키우면 우리도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며 “바른정당과도 보수 후보 단일화까지 염두에 둔 경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 전 총장 낙마가 황 권한대행에게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 즉, 야권 지지층이 손쉬운 상대로 황 권한대행을 뽑고 있다는 ‘역선택’의 발로라는 얘기다. 황 권한대행이 ‘담마진’이라는 피부병으로 군 면제 됐다는 점(지난해 군 부대 방문 당시 황 권한대행은 식판을 들고 밥과 국 놓는 곳을 헷갈려 잘못 놓았다)은 군통수권자로선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또 그의 법무부 장관 발탁이 최순실과 연관돼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청와대와 여의도 주변에서 파다하게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그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야권이 상대할 여권 후보로 황 권한대행이 꼽힌다는 것이다. ‘포스트 박근혜’로 황 권한대행이 꼽힌다는 점은 적잖은 아이러니다.
황 권한대행 행보가 심상치 않자 바른정당 장제원 대변인이 “민생 현안에나 집중하라”는 논평을 냈는데 황 권한대행은 직접 장 대변인에게 전화해 “바른정당의 의견인가 장 대변인 개인 생각인가. 바른정당이 나에 대해 이렇게 대응할 것인가. 논평을 장 의원이 직접 쓴 것인가”라고 항의한 것도 심상찮은 대목이다. 출마할 마음이 없다면 대수롭잖게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논평이었다는 얘기다.
친박계에서 홍문종 의원은 말이 앞서는 예언가로 회자한다.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국무총리’설을 최초로 흘리며 친박계로부터 질타를 받은 이도 그이고, 친박계 중 유일하게 반 전 총장과 물밑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이도 홍 의원이다. 그런 그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황 권한대행께서 후보 선언을 하지도 않았고 출마 여부에 대해서도 말씀을 안 했는데도 저 정도의 지지가 나온다는 것은 충분히 단일후보로서, 또 보수 후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국민이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핵심이자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대놓고 ‘황교안 애드벌룬’을 띄운 것이다. 인 비대위원장이 “10% 가까이 지지율이 나오는 것은 국민도 새누리당이 후보를 내도 된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벚꽃대선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여의도. 국정농단의 책임 속에서 대선 후보를 내놓지 못할 수도 있는 불임정당 새누리당에서 가장 인지도와 대중성을 갖춘 인물. 반듯한 외모와 중저음의 목소리. 숱한 대정부질문 속에서도 절제하며 할 말은 하는 모습. 새누리당 의원들과 만나며 들을 수 있었던 황 권한대행의 장점들이었다.
이제는 그의 권력의지에 달렸다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칩거하고 있는 청와대 의중이 우호적이라고도 한다. 헌재가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후일에 탈이 없으려면 우호적인 인물이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