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수출이 403억 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11.2% 증가했다. 우리나라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2013년 1월 이후 4년 만이다. 지난 1월 27일 부산항 신항 부두에 접안한 컨테이너선에서 분주하게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올 1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2% 늘어난 403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13년 1월 이후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수출품 중 주력제품인 석유제품의 수출이 67.4% 급증하고, 반도체와 석유화학 수출도 각각 41.6%와 34.9%나 늘었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안한 상태이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보호주의 우려가 커가는 와중에 수출이 급증하면서 정부와 산업계에는 웃음꽃이 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수출 목표액(5900억 달러)을 더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1일 중국과 일본, 독일이 자국 통화를 고의로 저평가해 수출에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며 선전포고를 한 상황에 한국의 수출 급증은 트럼프 행정부의 눈을 한국에 돌리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에 대한 수출이 올 1월에 크게 늘어난 상황이어서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올 1월(1~20일) 미국에 대한 수출액은 32억 1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9%나 늘어났다. 전체 수출액 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11.6%로 단일 국가로는 중국(28.1%) 다음으로 높다.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664억7300만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3.4%를 차지했다.
문제는 한국이 이처럼 미국에 대규모 수출을 하면서 미국이 요주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①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②대미 경상수지 흑자 GDP(국내총생산) 대비 3% 초과 ③외환 시장 개입 규모 GDP 대비 2% 초과, 세 가지 기준 중 두 가지에 해당할 경우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미국이 정한 6개 관찰 대상국에 포함되어 있다. 6개국에는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중국과 일본, 독일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올 1월 대미 수출 중 크게 늘어난 품목은 석유제품과 자동차, 자동차 부품 등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일자리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업종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자릿수 수출 증가가 마냥 좋은 수치만은 아닌 셈이다.
‘다음엔 당신이야…’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사진=UPI/연합뉴스
실제로 PIIE는 3일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전쟁 다음 타깃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한국 원화의 경우 실제 가치보다 6.0%나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통화가치가 저평가되면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PIIE는 한국의 원화 가치가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중국이나 일본, 독일보다 저평가됐다고 지적했다. 중국 위안화는 0.7% 고평가되어 있고, 유로화는 독일 기준으로 0.8% 고평가된 상태다. 일본 엔화는 3.3% 저평가됐다. 다소 고평가된 위안화와 유로화를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것은 달러화가 7.9%나 고평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주요국 중 가장 통화가치가 저평가된 한국은 트럼프의 압박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미국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반덤핑 관세나 상계관세 부과 조치에 필요한 무역구제 조사를 실시한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우려를 키운다. 미국의 대 한국 무역구제 조사개시 건수는 2014년 2건에서 2015년 4건, 2015년(1~9월) 5건으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규제 강화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이러한 무역구제 조사도 올해 더욱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1월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반기기만은 어려운 일이다”며 “또 올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정한 올해 수출 목표 5900억 달러는 달성이 어려울 수 있고, 자칫 목표치를 무리하게 추구하다가는 미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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