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사진공동취재단.
[일요신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내부고발자인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일요신문>과 그동안의 소회를 정리하는 마지막 인터뷰를 가졌다. 특검 조사와 지난 2월 7일 헌재 출석까지 마친 정 전 총장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나설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전 총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최순실 씨 측은 여전히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볼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당시 K스포츠재단에 저하고 김필승 이사가 임원으로 있었는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승일 부장과 박헌영 과장이 늘 재단 비워놓고 더블루K(최순실 실소유 의혹 회사)에 가 있었다. 두 사람이 거기서 들고 와서 ‘회장님(최순실)이 이거 하라고 하십니다’ 하면 그때야 일을 진행했다. 최 씨가 직접 전화해서 두 사람(노승일, 박헌영)이 가지고 가는 것을 추진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최 씨는 K스포츠재단이 추진한 가이드러너 사업에 대해 ‘가이드러너가 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가이드러너 사업 아이디어는 박헌영 과장이 냈다. 하지만 박 과장 혼자 그 일을 어떻게 추진하나. 박 과장 아이디어를 듣고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며칠 뒤에 최 씨가 추진해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추진하게 됐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박근혜 대통령도 재단과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재단 일을 하면서 대통령과 만나거나 직접 지시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재단 일을 시작한 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수시로 연락했고 안 전 수석이 (재단이) ‘VIP 관심사항’이라고 수차례 말했다. 박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대통령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최 씨와는 어떻게 알게 됐나.
“은행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퇴직 후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그 이력서가 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던 최 씨에게 흘러들어갔더라. 처음에는 재단 감사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여하게 됐다. 면접을 최 씨가 직접 봤는데 당시에는 최 씨가 누군지도 몰랐다.”
- 특검에서 조사 받을 때 어떤 것들을 질문하던가.
“별로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누구랑 언제 통화를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이런 질문들을 했다. 그런데 나도 기억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오래전에 통화한 내용까지 어떻게 기억하겠나? 그런 게 좀 어려웠다.”
- 최 씨는 재단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려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최 씨가 더블루K에 재단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무작정 맡기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우리가 비영리 공익법인인데 연구용역이 필요하다고 하면 정식으로 공고를 내서 선정해야지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신문에 공고 내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홈페이지에라도 공고를 하고 형식을 갖춘 다음에 해야 나중에 문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도 강행하려 했다. 또 국제 가이드러너 컨퍼런스를 열면서 당시 행사 진행을 최 씨 조카 장시호 씨 회사에 맡겼다. 사익추구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 근무하시면서 최 씨가 태블릿 PC를 사용하거나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나.
“최 씨가 재단에 직접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보통 전화로 지시하거나 논현동 최 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런데 저는 최 씨가 태블릿 PC를 사용하거나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다.”
- 최 씨는 K스포츠재단은 고영태 씨가 관리했다고 주장한다.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도 고 씨가 재단 일에 깊숙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는데.
“정 전 이사장이 내게 고 씨 이야기를 하더라. 내가 고 씨가 뭔데 재단 일에 관여하냐고 버럭 화를 냈다. 고 씨는 재단에서 아무런 직책도 없었고 직원도 아니었다. 내 성격을 알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고 씨가 내게 연락해 뭔가 지시하지는 않았다. 서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국회 청문회에서 만났더니 먼저 와서 인사하고 가더라.”
- 재단 창립초기 대기업들로부터 출연금을 모금하는 일을 했다. 정말 강압은 없었나.
“대기업 쫓아다니면서 돈 받아오라고 할 때 이 재단에 오래 있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제가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롯데, SK, 부영을 만났다. 롯데와 SK는 대처하는 것이 굉장히 노련하달까. 그런 것을 느꼈다. 그런데 부영에서 그런 이야기(세무조사 무마)를 할 때 깜짝 놀랐다. 어떻게 만나자마자 그런 이야기를 하나 큰일 나겠다 싶었다.”
- 내부고발을 결심한 계기는.
“제가 은행원 월급쟁이 하다 그만둔 사람인데 평생 남의 재산을 관리하다 나왔다. 나 같은 사람은 거짓말 하면 안 된다. 아직 살아있는 권력인데 이런 것들을 말하기 전에 고민도 하고 두려웠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또 다른 내부고발자인 노승일 부장은 미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친구가 그런 말 하니까 불안하더라. 그래서 밤늦게 잘 안다니고 출발할 때 사주경계를 한다. 신경이 쓰이긴 하는데 아직까진 아무 일도 없었다.”
- 그동안의 소회는.
“지난 2월 7일 헌재 출석을 끝으로 더 이상 일정이 없다. 이제 앞으로는 이 사건에 내가 등장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국면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우리 집 아파트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사생활이 없어진 지 몇 달 됐다. 국정농단 같은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